XR 헤드셋 동맹 맺은 LG와 메타가 주고 받는 것

결국 LG와 메타가 XR 분야에서 협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을 찾은 메타 CEO 마크 주커버그와 LG 그룹 COO 및 LG전자 CEO는 LG 본사가 있는 여의도 LG 트윈 타워에서 XR 분야 협력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가졌다고 2024년 2월 28일 공식 발표했다.

LG전자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만남으로 LG와 메타는 차세대 XR 헤드셋 개발과 관련된 사업 전략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는 LG가 메타의 차세대 헤드셋으로 알려진 메타 퀘스트 프로 2의 후속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것이라는 지난 소문들과 일치한다. LG가 지난 CES에서 2025년 XR 헤드셋을 내놓을 것이라고 이미 공개한 터여서 아주 새로운 소식은 아니지만, 공식화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는 있다.

그런데 LG전자와 메타는 왜 XR 분야에서 동맹을 맺고, 협업을 하려는지 좀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의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는 게 아니라, 두 회사가 어떤 관점에서 서로 협력하려는지 추정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메타 관점에서.

메타는 소비자용 XR 생태계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많은 투자를 해왔고,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이다. 물론 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XR 관련 기술 연구 및 AR/VR 제품 개발, 제품 생산과 마케팅 등 많은 돈을 쏟은 탓에 지금까지 적지 않은 손실도 봤다. 2023 회계년도 상 XR 사업을 관장하는 메타 리얼리티 랩스(MRL)의 손실 비용만 무려 160억 달러다. 지금 환율(1천330원 기준)로 환산하면 무려 21조 원이 넘는 액수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손실을 보면서 지난 2023년 4분기 MRL에서 낸 매출은 10억 달러, 1조3천300억 원에 불과하지만, 메타는 손실보다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억 달러 돌파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적어도 메타가 꿈꾸는 메타버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긴 여정 속에서 얻어야만 하는 성과를 얻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에도 메타가 웃지 못하는 문제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프로슈머 분야로 확장하는 것이다. XR 헤드셋을 게임처럼 가볍게 즐기는 용도로만 쓰임새를 강화할수록 메타 헤드셋의 활용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메타는 일상적인 업무에서도 쓸 수 있는 퀘스트 프로를 통해 프로슈머 XR 분야에 처음 도전했다.

흥미롭게도 메타 퀘스트 프로는 아주 확실하게 실패했다. 첫 혼합 현실 헤드셋이라는 이상을 담았지만, 성능 및 기능 부족과 비싼 판매가 등으로 철저하게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아직 정확한 판매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해 상반기 역추산된 퀘스트 프로의 판매량은 고작 2만5천 여 대. 앱 자생력 생태계를 위해서 퀘스트 헤드셋을 값싸게 보급한 덕분에 2년 전 최소 1천만대 헤드셋 보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던 메타에게 퀘스트 프로의 판매 성적은 절대 드러내어서는 안될 치부가 된 것이다. 이후 메타는 퀘스트 프로 가격을 인하하고, 초도 생산된 물량을 제외하고 추가 생산을 하지 않기로 한데다, 로블록스 개발자 행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등 일찌감치 관련 사업을 정리하는 모양새를 갖추어 왔다.

처절한 실패를 맛본 퀘스트 프로

그렇다면 퀘스트 프로를 통한 프로슈머 시장에서 첫 실패를 맛본 메타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그들이 얻었을 교훈은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제품력을 갖추지 못하고선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은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더불어 다시 이 실패를 감당해선 안된다는 신중론도 커졌을 것이다. 다양한 XR 헤드셋 설계에 엄청난 돈을 써온 메타라도 고가 XR 헤드셋을 쓰는 프로슈머 시장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우쳤을 거라는 점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메타가 프로슈머 시장에 대한 전략을 이렇게 수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프로슈머 시장에 맞는 성능을 제공하면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려면 설계부터 부품 수급, 제조, 판매에 이르는 전 단계를 검토했을 테고, 이 과정에서 이 일을 분담할 파트너를 찾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메타가 LG를 퀘스트 프로2(가칭)의 파트너로 삼은 것은 설계를 제외하고, 부품과 제조, 판매에 이르는 나머지 과정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제조사라는 점이다. 특히 프로슈머 XR 헤드셋에 필요한 고품질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수 있다는 계열사가 있다는 점은 포기할 수 없는 점으로 보인다.

사실 메타에겐 고품질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에 관한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이 구글과 연합해 자체 XR 헤드셋을 개발하는 중이고, 연간 100만 개 규모의 4K 마이크로 OLED를 생산하는 소니 물량은 거의 모두 애플이 독점하는 상황이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를 제외하면 LG 외에 선택지가 없다.

물론 디스플레이만 공급 받는 연합 형식을 왜 취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프로슈머 시장에 대한 손실 최소화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메타 입장에선 퀘스트2와 퀘스트3라는 중저가 헤드셋으로 매우 안정적인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터라 이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프로슈머 시장 성숙 때까지 양보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했을 수 있어서다.

그런 관점에서 협업 대상인 LG는 메타의 조건에 모두 들어 맞는다. 당장 이득을 얻기 힘든 프로슈머 시장에서 운영체제 및 앱 플랫폼을 제외한 부품, 생산, 판매, 사후관리에 이르는 조건에 가장 부합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LG 역시 XR 헤드셋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던 터라 메타에게 있어 서로의 이해를 찾는 것이 좀더 쉬웠을 가능성이 높다.

LG 관점에서.

일단 나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부서를 포기한 LG에 강한 비판을 하는 사람 중 하나임을 밝혀둔다. 모바일 사업부는 LG에게 있어 유일한 컨슈머 컴퓨팅 부서였기 때문이다. PC 사업부도 있고 요즘은 가전 제품도 컴퓨팅 제품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모바일 사업부는 오로지 컴퓨팅 작업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함으로써 LG에 없던 컴퓨팅 장치 제조사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모바일 사업부 폐쇄는 그런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손실, 수익성이 없다는 모바일 사업부를 폐쇄한 LG가 메타의 차세대 XR 헤드셋인 퀘스트 프로2를 개발할 것이라는 소식은 아주 달갑다 할 순 없다.

이제 사설은 접고, LG 관점에서 이번 협업에 나선 이유를 추정해 보자. LG가 이번 협업을 공식화하기 전에 XR 헤드셋을 판매할 인력을 충원한다는 소식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상대적으로 개발 인력을 늘린다는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물론 LG가 지난 몇 년 동안 비밀리에 XR 헤드셋 관련 개발 및 연구를 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듣기는 했다. 그러나 메타처럼 엄청난 투자를 한 적은 없고, 실제 출시한 제품도 없었다. 스팀의 라이트하우스 기반 PC용 VR 헤드셋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곧바로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LG가 메타의 차세대 XR 헤드셋을 내놓겠다는 것은, 사실 LG 기술력 만으로 가능한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XR 하드웨어는 스마트폰보다 기술 공력이 더 들어간다. 특히 광학 및 센서 융합 부문에서 더 오랜 기술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앱을 개발하고 배포할 소프트웨어 플랫폼도 없다. 스마트폰 사업부 싸그리 해체한 이후 이제서야 XR 사업부서를 공식화한 LG가 단시간에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2025년에 곧바로 자체 하드웨어를 내놓는 것은 정말 신비한 마법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설계 작업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에 맞는 부품과 생산을 준비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플랫폼 역시 스마트폰 때처럼 공유 가능한 플랫폼을 받아들이면 된다. 즉, 하드웨어 및 앱 플랫폼에 대한 자체 설계 시간을 빼고 오로지 생산만 초점을 맞추면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란 것이다.

왼쪽부터 LG전자 조주완 사장, 메타 CEO 마크 주커버그, LG 권봉석 부회장

LG가 오로지 생산에 초점을 맞춘다고 볼 때 그 앞쪽의 선행 조건에 가장 들어 맞는 XR 기업은 메타가 유일하다. 퀄컴 같은 칩 제조사로부터 여러 하드웨어 설계 레퍼런스를 받아 시제품을 만들어 보기도 했겠지만, 결국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 상용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LG가 해마다 10조 원 이상을 XR 부문에 투자하는 메타 만큼 투자할 여력 없이는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메타의 XR 헤드셋 설계도를 받는 것은 LG에게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또한 그 이후 헤드셋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이날 LG 그룹 권봉석 최고 운영자가 LG전자 CEO와 함께 마크 주커버그를 만난 것 역시 XR 헤드셋 생산에 참여가 불가피한 계열사 간 의견 조율에 대한 메시지인 셈이다)

문제는 메타의 차세대 헤드셋은 호락호락한 제품이 아니란 점이다. 프로슈머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만큼 값비쌀 테고, 그만큼 판매량은 보장되지 않는다. 더구나 주요 설계와 플랫폼은 메타에 종속되기 때문에 LG가 얻을 이득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LG는 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수 있는 메타 퀘스트 프로2를 만들겠다 한 것일까? 이는 단지 성장 가능성 높은 신사업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여기서 LG전자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있는 이 한 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V 사업을 통해 축적하고 있는 콘텐츠/서비스, 플랫폼 역량에 메타의 플랫폼/생태계가 결합되면 XR 신사업의 차별화된 통합 생태계 조성이 가능할 것”

이 문장에서 LG가 메타 퀘스트 프로에서 무엇을 하려는 지 그 목적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LG가 TV 사업을 통해 축적한 것은 LG 스마트 TV에서 서비스하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인 LG 채널을 의미한다. LG 채널은 광고를 결합한 무료 채널로 IPTV나 케이블 TV 가입 없이 더 많은 TV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LG는 직접 퀘스트 앱 플랫폼을 운영할 수 없지만, LG 채널을 메타 퀘스트 플랫폼 생태계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 LG가 만드는 차기 메타 XR 헤드셋에 웹OS를 운영체제로 쓸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추정 기사로 인해 혼돈을 일으켰으나, LG가 하려는 것은 운영체제가 아니라 LG 스마트TV의 LG 채널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LG TV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LG채널 서비스

LG 채널이 퀘스트 시리즈에서 미디어 유통 플랫폼이 된다면 제법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 비록 메타 퀘스트 플랫폼에 수많은 앱이 있다고 해도 볼만한 고품질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은 거의 없다. 퀘스트용 넷플릭스는 몇 년 동안 거의 업데이트를 안하는 상태고, 디즈니 플러스나 파라마운트 플러스 등 OTT 및 영화 서비스는 비전 프로 외에 다른 헤드셋 지원을 하지 않고 있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LG 채널이 퀘스트 플랫폼에 도입되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가상 또는 물리 공간에서 TV 없이 퀘스트 프로2 같은 XR 헤드셋을 쓴 채 실시간 채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물리적인 TV가 없더라도 TV를 대체하는 가상의 스크린에서 LG 채널을 볼 수 있으면 LG는 그만큼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활용한 수익을 넓힐 수 있다.

LG가 LG 채널을 XR 헤드셋으로 확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LG 채널과 유사한 삼성 TV 플러스는 스마트TV에서 자사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로 확장하면서 이미 1조 원의 매출을 올린 상태다. 이에 비해 자체 모바일 제품군이 사라진 LG에겐 이 서비스를 확장할 하드웨어가 없다. 앱을 무료로 풀긴 했지만, 자체 모바일 하드웨어 없이 배포하기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25년까지 LG 채널과 리모컨 핫키를 통해 얻는 예상 매출을 1조로 예상하고 있지만, TV 사업에 기반한 매출의 한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LG가 이 플랫폼의 확장을 두고 메타와 교감을 나눴을 것이란 추정을 해볼 수 있다. 콘텐츠 플랫폼 및 관련 사업 능력이 없는 메타 퀘스트 플랫폼의 약점을 LG 채널로 보완할 수 있다면, 기존 퀘스트 플랫폼에서 LG 채널 플랫폼을 운영할 수 있는 길을 터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두 회사가 수익 공유를 어떻게 할진 모른다. 다만 이번 협업의 내막을 추정해 보면 LG가 무작정 메타의 XR 헤드셋을 하청 제조하거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대에 구글 지배력만 넓혀준 것처럼 메타 퀘스트 플랫폼만 확장하고 끝내진 않을 것 같다. 물론 LG가 만드는 메타의 XR 헤드셋은 LG의 컴퓨팅 제품이라 보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가전 업체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수익을 올릴 새로운 경로를 만들 것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으로 봐야 할 듯 싶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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