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OS에 건 메타의 승부수

메타가 2024년 4월 23일(한국 시간 기준), 어쩌면 XR 생태계에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오큘러스 퀘스트를 비롯해 독립형 퀘스트 헤드셋에 적용해 온 운영체제의 이름을 호라이즌 OS(Horizon OS)로 바꿔서다. 그런데 앞서 ‘퀘스트 소프트웨어’로 불렀고 내부적으로 ‘VROS 빌드’라 부르던 메타의 XR 헤드셋용 운영체제에 고작 정식 명칭을 붙인 것이 정말 대수로운 일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운영체제의 이름을 바꾼 이후의 일을 모른다면 충분히 그렇게 여길 만하다.

메타가 XROS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개발하려고 한 사실은 몇 년 전에 알려졌다. (지금도 진행 중이나 한 때 뜨거운 관심사였던) 메타버스의 핵심적 기술인 가상 현실 및 증강 현실, 혼합 현실에 최적화된 자체 운영체제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정이었다. 이 결정이 나온 것은 2021년이었지만, 실제 개발은 2017년부터 시작되었고 300명 안팎의 개발자가 모인 팀도 구축했다. XROS 개발을 공식화했던 2021년, 주커버그는 하드웨어의 모든 계층을 철저히 제어할 수 있는 ‘마이크로커널 기반 운영체제’를 만드는 데 상당히 진척되어 있고 머지 않은 미래에 그 존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자체 개발 운영체제에 대한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

하지만, 메타는 XROS의 존재를 알린 이듬 해인 2022년, 운영체제 개발을 사실상 중단했다. 물론 XROS 개발을 포기하거나 취소와 관련된 공식 발표는 없었고, 메타의 홍보 부서는 더 버지와 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체 XR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 투입됐던 대다수 개발자들이 메타를 떠나거나 다른 부서에 재배치한 것은 분명했다. 완전 독자적인 운영체제의 완성도를 진척시키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없는 조치가 이미 취해진 뒤여서다.

프로젝트 나자레와 함께 자체 운영체제 개발 소식을 알렸던 메타

메타가 XROS를 중단 또는 다른 하드웨어용으로 축소한 배경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 가운데 XROS는 메타의 하드웨어에 이식하기 전에 제거해야 할 너무 큰 걸림돌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헤드셋의 운영체제에서 실행할 수 있는 앱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운영체제에서 쉽게 앱을 개발할 수 있는 생태계적인 걸림돌이다. 정책적인 문제는 메타에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지만, 추격자들의 등장이 예고된 상태에서 기존 생태계 및 유산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흥미롭게도 퀘스트 앱 생태계의 근간은 안드로이드다. 그 흔적을 따라가 보면 모바일용 오큘러스 플랫폼을 처음 내장한 갤럭시 노트4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메타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독립형 헤드셋 이후만 봐도 안드로이드와 떨어지지 않는다. 외부에선 퀘스트 소프트웨어라고 부르나 퀘스트 헤드셋용으로 내부에서 개발해 온 VROS는 안드로이드 오픈 소스 프로젝트(AOSP) 기반의 빌드라서다. VROS에서 VR 애플리케이션은 본질적으로 일반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지만, 메타가 퀘스트 장치에 맞게 변형한 것이다. 펌웨어, 커널 수정, 장치 드라이버, 시스템 서비스, SELinux 정책 및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해 퀘스트 하드웨어에서 VR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AOSP 위에 맞춤형으로 설계해서 쓰고 있다. 비록 안드로이드를 뼈대로 쓰긴 했어도 존재하지 않았던 XR용 운영체제로 수년 동안 다듬고 헤드셋을 판매한 덕분에 메타는 줄곧 가장 강력한 XR OS 빌드와 더불어 앱 개발 및 소비 생태계, 서비스 구성 요소까지 가장 강력한 생태계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메타의 XR 생태계가 지금 시점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긴 해도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복잡한 사정이 보인다. 가상 현실 대중화 시기에 만난 상대적으로 약한 경쟁자들과 달리 애플, 구글 등 강력한 컴퓨팅 기업들을 경쟁자로 맞이해야 하는 혼합 현실 시장에선 메타를 선두주자로 인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다. 메타가 VR 기반 생태계를 잘 갖추고 있는 장점은 있지만, 혼합 현실 분야는 메타를 추격할 수 없는 수준까진 아니기 때문이다. 가상 현실에서 구축한 기술들이 혼합 현실에서 전혀 쓸모 없는 것은 아니긴 하나 가상 객체를 실제 현실에서 활용하는 앱이나 이용자, 관련 이용 사례를 고려할 때 메타도 새롭게 내놓아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혼합 현실 시장에서 그 패권을 쥘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흥미롭게도 메타는 가상 현실 시장의 패권을 쥘 때 같은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챈 모양이다. 가상 현실 분야에서 얻어 낸 수많은 독점 자산들을 오로지 메타 만의 혼합 현실을 위해서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서다. 그 결정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호라이즌 OS인 것이다.

호라이즌 OS를 내놓은 메타는 이 운영체제가 더 이상 메타 독점이 아니라는 선언부터 했다. 즉, 다른 제조사도 호라이즌 OS를 이용하는 혼합 현실 하드웨어를 내놓을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는 것이다. 운영체제 뿐 아니라 헤드셋 관련 앱 장터와 갖가지 신원 인증 서비스 등 이전 가상 현실 시절에 구축했던 모든 기술 자산들에 혼합 현실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까지 하드웨어 제조사에 열어 헤드셋 개발 및 판매에 집중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메타는 첫 호라이즌 OS 파트너 제조사로 레노버, 에이수스, 마이크로소프트를 소개했다. 레노버는 생산성 헤드셋을, 에이수스는 ROG 브랜드의 게이밍 헤드셋을,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게임 패스 번들을 포함한 퀘스트 한정판을 기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발표에선 제외됐지만, 앞서 부품 및 제조에 관한 전방위적인 상호 파트너십을 맺은 LG도 머지 않아 이 그룹에 포함될 가능성도 열어 둘 필요가 있다. 다만, 메타가 이 운영체제를 어떤 방식으로 개방할 것인지 지 정확한 설명은 아직 없는데, 호라이즌 OS라는 브랜드 및 서비스를 라이선스하는 방식이면 안드로이드와 조금 다른 방식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어쨌거나 호라이즌 OS라는 이름 자체가 갖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먼저 혼합 현실 OS 이름에 차용한 ‘호라이즌’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메타는 퀘스트 OS라고 할 수도 있었을 운영체제 이름에 굳이 호라이즌을 썼다. 아마도 메타 관련 서비스를 잘 아는 이들은 이 단어에 매우 익숙할 것이다. 호라이즌은 메타에서 구축해 온 호라이즌 월드나 호라이즌 워크룸, 퀘스트의 기본 가상 홈인 호라이즌 홈 등 메타버스 서비스를 대표하는 단어라는 것을. 수많은 이들이 함께 모이고 일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 서비스에서 차용한 호라이즌 OS는 메타버스 전략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다른 혼합 현실 하드웨어 제조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명칭인가 따져 봐야 했을 것이다.  만약 메타가 퀘스트 OS로 밀었다면 혼합 현실이 아닌 가상 현실 OS라는 기존 이미지도 강할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메타 퀘스트 헤드셋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탓이다. 메타가 혼합 현실 시장에서 전략을 수정하는 신호를 보내면서 다른 혼합 현실 헤드셋 제조사가 유연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럴 듯한 명칭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다.

결국 호라이즌 OS는 메타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혼합 현실 시장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종합적인 의미와 의지를 담고 있다. 모든 기술적 자산을 독점했던 가상 현실 시대를 뒤로 하고, 더욱 경쟁이 치열해 질 혼합 현실 시장에서 더 넓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연합군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심지어 호라이즌 OS를 발표한 글의 제목이 ‘혼합 현실의 새로운 시대'(New Era of Mixed Reality)라는 점도 혼합 현실 사업의 방향을 바꿨다는 것을 확실히 밝힌 셈이다.

호라이즌 OS를 제조사에 개방한 것 때문에 안드로이드 전략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지만, 모든 면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먼저 호라이즌 OS를 쓸 수 있는 조건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터라 모든 제조사에게 열려 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더불어 레노버와 에이수스 등 다른 하드웨어 제조사가 호라이즌 OS용 하드웨어를 언제 내놓을 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들은 앞서 마이크로소프트 혼합 현실 플랫폼용 PC 헤드셋을 만든 경험은 있긴 하나, 그 경험 만으로 호라이즌 OS용 하드웨어를 당장 출시할 수는 없다. 때문에 당분간 메타만 호라이즌 OS 하드웨어를 지속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제조사(파트너십을 맺은 LG 포함)일 가능성이 높다.

레노버가 만든 PC용 혼합 현실 헤드셋. 레노버는 그 이후에도 여러 혼합 현실 및 가상 현실 헤드셋을 개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표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여러 글 가운데 역시 안드로이드 기반 XR 운영체제를 준비하고 있던 구글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이번 결정은 스마트폰 시대의 ‘구글 안드로이드’처럼, XR 헤드셋 계의 ‘메타 안드로이드’라는 이야기까지 이어지고 있어서다. 더구나 구글은 삼성의 하드웨어에서 작동하는 안드로이드 XR을 1년 넘게 개발 중이나, 아직 이렇다 할 모습도 보여준 적이 없다. 어쩌면 2024년 5월 열리는 구글 I/O에서 그 비밀을 살짝 공개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메타와 애플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 획기적인 것일지 장담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삼성과 파트너십을 통한 실험 이후 안드로이드 XR 생태계 확장을 위한 제조사 확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지만, 레노버와 에이수스처럼 XR 헤드셋 제조 경험을 가진 제조사의 이탈은 구글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경쟁 상대인 구글을 괴롭게 만들 호라이즌 OS와 함께 공개된 변경된 혼합 현실 전략은 지금까지 메타와 메타 CEO 마크 주커버그가 해왔던 바람을 이루려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모양새다. 마크 주커버그가 휴대폰 분야에서 애플과 구글의 독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VR과 AR에 주목해 온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메타는 XR 헤드셋 전쟁에서 구글의 규칙을 따르길 원하지 않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얼마 전 퀘스트 헤드셋에 플레이 스토어 유치를 위해 협의를 요청했으나, 안드로이드 XR에 기여하라는 구글의 조건에 두손을 들어버린 메타 입장에선 제법 강한 역습을 한 셈이니 말이다.

물론 결론은 어떻게 날지 모른다. 더 많은 제조사가 참여할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참여를 약속한 제조사가 이탈할 지 아무도 모른다. 메타가 얼마나 투명한 정책을 쓸지 아직 알려진 것도 없다. 하지만 호라이즌 OS로 대변되는 이번 결정이 잠잠하던 호수에 던져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돌이 된 것은 분명하다. 오큘러스 창업자 팔머 러키도 메타의 전신인 페이스북에 매각하기 전에 꿈꿨던 10억 대의 XR 헤드셋 보급을 위해 다른 제조사도 이용하는 플랫폼 기업으로써 이번 전략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남긴 것 역시 예사롭지 않다. 적어도 이번 결정은 바람직하다는 쪽에 무게를 좀더 싣고 싶을 뿐. 때문에 당장 이 결정이 옳았는가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지만, 메타가 던진 이번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앞으로 한참을 지켜보는 재미는 충분할 듯하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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