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_초이의 IT 휴게실


글쓴 이 - 칫솔(CHiTSOL, PHILSIK CHOI) | 인사이드 디지털/가상현실(Virtual Reality) l 2016/08/09 18:29



밸브(VALVE)를 설명하기 가장 쉬운 것은 스팀(Steam)일 것이다. 스팀은 PC 게임을 구매하고 설치하는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임 유통 플랫폼으로 잘 알려진 때문이다. 물론 밸브는 하프라이프 시리즈나 도타(DOTA) 시리즈를 만든 게임 개발사로도 유명하지만, 그래도 게임 개발사보다 '연쇄 할인마'의 별명을 가진 스팀이라는 게임 유통 플랫폼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게임 개발사 또는 유통 플랫폼 '스팀' 때문에 잘 알려진 밸브지만, 가상 현실 부문의 숨은 실력자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일찌감치 가상 현실 컨텐츠를 배포하는 스팀VR을 운영하면서 가상 현실 컨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확장하고 있는 듯 보이나 가상 현실과 관련된 핵심 기술을 연구한 끝에 몇 가지 중요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밸브가 연구했던 가상 현실 기술들은 현재 상업화된 PC기반 가상 현실 HMD의 힌트를 주었거나 그 기술에 기반한 제품으로 이미 나왔는데, 오큘러스 리프트를 만드는 오큘러스도 밸브의 연구 프로그램을 참조해 차기 제품의 설계를 바꿨다는 숨은 주장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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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밸브의 연구로 완성된 가장 의미 있는 가상 현실 제품은 HTC 바이브(VIVE)다. 한동안 PC VR 시장의 선두 주자는 오큘러스 리프트였으나 그것은 HTC 바이브 출시 이전의 이야기다. HTC 바이브가 출시된 이후 오큘러스 리프트 만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상당부분 누그러졌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는 얼핏 비슷하게 보이지만, 확실히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오큘러스는 이동 범위가 제한된 반면, HTC 바이브는 일정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점이다. 오큘러스 리프트와 HTC 바이브는 모두 추적 센서를 갖고 있지만, 오큘러스 리프트는 정면에서 움직이는 피사체를 추적하는 반면, HTC 바이브는 두 개의 센서 장치를 대각선으로 배치해 그 공간 안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잡아 낸다. HTC 바이브의 공간 인지를 위한 두 개의 센서 장치를 이용하는 기술이 바로 밸브가 개발한 라이트하우스(Lighthous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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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의 라이트하우스는 단순히 이용해 공간을 계산하는 원리가 아니라 각 센서가 레이저와 파동을 수신하는 타이밍을 체크한다. 단지 수신 센서를 설계할 때 필요한 커버율 같은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유사한 장치를 만들기 힘들었다. 레이저와 파동을 송신하는 두 개의 기지국과 다수의 수신 센서에 고속 관성 측정 유닛(IMU)을 추가해 1000Hz로 신호를 받아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방향과 속도, 각도 등을 계산하는 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G-Wearables의 'StepVR'이나 Hypereal의 'Hy-Pano'처럼 스팀의 라이트하우스와 비슷한 원리를 가진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라이트하우스와 같은 정확도와 속도를 내려면 오차를 모델링하고 보정하는 연구를 통해 기술을 개선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진보한 라이트하우스 기술을 완성한 밸브는 흥미롭게도 이를 활용하는 제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이를 HTC에 라이센스했다. 밸브는 가상 현실 하드웨어에 투자하기보다  VR 플랫폼에 더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 동력을 찾고 있던 HTC도 밸브의 기술을 이용해 좀더 빨리 VR 하드웨어에 진입할 수 있던 터라 이 제휴는 서로에게 이익이 된 것은 분명하다. 라이트하우스 기술을 넣은 HTC 바이브의 성공에 힘입어 이 하드웨어를 위해 컨텐츠를 유통하는 스팀 VR도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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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HTC 바이브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판단했는지는 몰라도 밸브는 라이트하우스에 대한 라이센스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HTC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라이트하우스 기술을 라이센스 했지만, 이 파트너십을 다른 제조사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라이트하우스 기술을 이용하는 데 부담될 수 있는 로열티를 받지 않고 해당 라이센스를 조건부로 공개하기로 한 점이다. 이번 결정의 궁극적 이유는 밸브의 스팀 플랫폼을 활용하는 VR 하드웨어를 더 많이 보급하기 위한 것이지만, HTC 바이브와 유사한 경쟁 제품이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밸브 라이트하우스의 라이센스를 개방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 이 기술을 쓰고 싶은 VR 업체들은 밸브의 의뢰를 받은 시냅스(Synapse)에서 준비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 교육은 한 사람만 받아도 되는데, 2천975달러의 수강료를 내야 한다. 이 수강료는 라이트하우스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교육을 이수한 업체는 밸브에 로열티를 내지 않고 라이트하우스 기술을 이용하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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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육은 9월부터 시작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육 신청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가장 뛰어난 VR HMD로 알려진 HTC 바이브의 핵심 기술을 개방함으로써 더 값싸고 성능이 뛰어난 유사 제품의 경쟁은 하드웨어 경쟁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밸브는 스팀 VR 플랫폼을 확장시켜 VR 컨텐츠 플랫폼 부문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이는 동일 시장에서 경쟁하는 오큘러스 플랫폼에 가장 큰 위협이 될만한 일이다. 특히 오큘러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은 폐쇄적 플랫폼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라이트하우스 적용 제품이 등장하면 이러한 폐쇄적 전략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밸브의 첫 협력자였으나 이번 결정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HTC도 스팀과 별개의 자체 플랫폼인 바이브포트를 서둘러 준비하고 스팀이 없는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한 움직임은 아니다. 밸브의 결정 하나가 VR 플랫폼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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