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닝의 끝은 순정, 그래도 로망은 죽지 않더라~

2000년 여름인가 중고 티뷰론을 한 대 샀더랬습니다. 지금이야 국산이든 외산이든 수입 쿠페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당시에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스포츠 쿠페였죠. 박봉의 월급을 받으면서 차에 대한 로망은 있던 데다 나름 스포츠 쿠페를 사고 보니 얇은 귀를 간지럽히는 튜닝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NA 튜닝에 오디오 튜닝에 참 몹쓸 짓 많이 했습니다. 아마도 튜닝에 들인 돈을 잘 모았으면 지금 더 괜찮은 차를 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만, 아무튼 튜닝한 이후의 뿌듯함 때문에 3년 동안은 기를 쓰고 튜닝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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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얌전하게 튜닝했던 티뷰론

그러다 어느 순간 튜닝의 재미가 뚝 떨어지더군요. 튜닝의 끝은 보이지 않고, 어느새 통장 잔고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슬슬 노후화 되어 가는 차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면서 튜닝을 거의 하지 않게 되고 결국 티뷰론을 헐값에 팔아버렸습니다. 들어간 돈이 아깝다는 생각, 정말 많이 들었지요. 그러나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진 티뷰론을 계속 탈 수 없더군요. 결국 새로운 차를 샀습니다. 그리고 다짐한 것은 되도록 손을 대지 않고 순정 상태로 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소형 해치백을 사고 가볍게 오디오만 손본 뒤 5년 동안 순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자동차 만큼이나 PC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 잡지 기자 시절에 참 기묘하게 튜닝했던 PC들을 보면서 튜닝의 매력에 한 껏 빠졌더랬지요. PC 튜닝도 케이스나 LED에 초점을 두고 외형을 꾸미거나, 소음을 줄이거나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덧붙이거나 오버 클럭킹을 통해 성능을 올리는 것 등 생각보다 범위가 넓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튜닝과 마찬가지로 마니아들에게 흥미를 주는 세계입니다.


그나마 가장 빠르게 접근해볼 수 있던 것이 오버클럭킹이었습니다. CPU를 비롯한 시스템의 클럭을 조정하면서 전체 PC 성능을 끌어 올리는 튜닝이지요. 웬만해서는 손을 대기 힘든 자동차 엔진을 튜닝하는 셈인데, 그보다는 손은 덜가는 데다 길어야 며칠의 시간만 쓰면 되고 피해의 규모가 생각보다(?) 그리 큰 편은 아닌지라 한 때 흥미를 갖고 해본 적이 있더랬죠.


하지만 PC의 오버클러킹도 녹록치 않은 작업입니다. 과거 CPU의 오버클러킹은 말 그대로 CPU의 클럭만 약간 올린 상태에서 쓰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그런 수준으로는 말을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오버클러킹을 위한 준비가 더욱 철저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오버클러킹해서 쓸 수 있는 CPU인가 먼저 따져야 하고 이와 호흡하는 주변 부품의 성능도 더 따져봐야 합니다. CPU의 전압과 배수를 올렸을 생기는 열을 내보내기 위해 더 좋은 성능의 쿨러를 써야 하고, 이에 맞는 더 비싼 램을 써야 하며, 오버 클럭에 강하고 안정된 메인보드와 파워를 골라야 합니다. 오버클러킹을 하다가 CPU를 태워 먹었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쉽게 태울 일은 없을 정도로 기술은 좋아졌지만, 더 높은 클럭을 위해 갖춰야 할 것은 늘어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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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클럭도 이제는 좋은 주변 부품과 기술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도 오버클럭 마니아들에게 이 정도는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경차 엔진을 얹은 마티즈의 성능을 중형 엔진을 얹은 아반테로 올린 것 같은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요즘 프로세서는 적어도 2000cc 급 이상의 중대형으로 비유할 수 있기에 오버클러킹만으로 어쩌면 대형 스포츠 쿠페의 성능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좋은 하드웨어에 오버클러킹 기술만 잘 접목하면 실제 그 정도 성능은 낼 수 있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수많은 시행 착오 끝에 한계를 깨는 결과를 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째지거든요.


하지만 오버클러킹을 하는 것은 그것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더 비싼 CPU를 사지 않고 성능은 올릴 수 있지만, 그에 맞는 좀더 비싼 부품을 갖춰야 합니다. 클럭을 높이는 만큼 데이터 처리가 빨라져 작업 시간이 단축되지만, 항상 열 설계 전력 안에서 높은 클럭을 유지하는 만큼 절전 효과가 없고 터보 부스트 같은 프로세서 기술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확실한 게 튜닝인데, 장점을 극대화할 수록 단점도 극대화 되는 것도 오버클러킹의 아이러니인 것이죠.


장점과 단점이 모두 극대화되다보니 저는 오버클러킹의 희열을 느낀 뒤에 다시 순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도 챙겨야 하니까요. 물론 오버클러킹의 장점을 활용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아마 지금은 순정상태가 아닌 상태로 쓰겠지만, 일상에서 오버클러킹으로 성능을 올려서 써야 할 이유가 적어서 그런지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꼭 오버클러킹을 해서 써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한 순간의 재미를 경험하는 취미형 오버클러킹은 그닥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한 번 재미가 들리면 너무 미쳐버리는 튜닝의 세계에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는 점이 걱정이 된다고 할까요. 그래도 현실에 대한 균형 감각만 잃지 않는다면, 한번쯤은 오버클러킹을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저도 순정 상태를 유지하지만, 여전히 오버클러킹에 대한 로망은 있답니다. 그 기분은 쉽게 잊혀지질 않으니까요.


차도 그렇고 PC도 그렇고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지금도 그 로망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덧붙임 #

얼마 전 인텔이 오버클럭을 위해 배수 잠금을 풀어버린 코어 i7, i5 CPU를 내놓은 탓에 이 글을 쓰게 됐네요. ㅠ.ㅠ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29 Comments

  1. 2010년 7월 9일
    Reply

    가장 무서운 분야는 오디오… 끝이 없어요.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자동차 튜닝은 종합판이죠. 오디오까지… ^^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자작은 능력 밖이라서요~ ^^;

  2. 2010년 7월 9일
    Reply

    음…키보드에 좀 홀릭 상태이지만, 비싼 키보드는 그냥 눈길도 안 가게 되는데요ㅋㅋ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하지만 노력이 들어간 키보드에는 눈길을 보내시겠죠? ^^

  3. 2010년 7월 9일
    Reply

    늑돌이 님 말씀대로 가장 무서운 분야는 ‘오디오’ 인 것 같아요.
    저도 슬슬 강하게 오고 있는것 같아서 두려워 하고 있거든요. -_-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일단 지르시고요… 후회는 그 다음에… ^^;

  4. dylanseo1995
    2010년 7월 9일
    Reply

    그래도 요즘은 부품들이 좋아져서 아예 영구오버클럭킹을 하더군요….. 대신 조금만.전 데탑에 지포스 250 쓰는데 오버 돌려가지고 클럭 2배로 만들고 ㅋㅋㅋ 메모리 클럭 2배 쉐이더클럭 1.5배 대신에 본체열고 미니 선풍기 돌림.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PC가 너무 무리 하는 거 같은데요? ^^;

  5. 2010년 7월 9일
    Reply

    헉! 배수를 풀었다니 인텔의 제 2의 공격이려나요 -ㅁ-!
    저는 순정으로 쓰는편이고(귀찮아서 + 돈 없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주로 튜닝을 하는 편이지만
    그렇게 까지 헤비하게 하진 않죠 ^^; 아무튼. AV에 빠지면 3대가 위태하다던데 ㅋㅋ
    대형 TV를 놓으신걸 보니 한걸음씩 가시는거 같아요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AV라 하시면 음? 기계든 컨텐츠든 AV는 너무 심취하면 안 좋아요~ ^^

  6. 2010년 7월 9일
    Reply

    저도 순정파랍니다. 응(?) 어감이?…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와이엇님은 순정파 인정~ ^^

  7. 2010년 7월 10일
    Reply

    오버클럭킹을 자동으로 맞춰주는 시스템도 있긴 하지만
    아직도 좀 겁나긴 해요. ㅎㅎ
    더구나 무거운 게임을 돌릴때면 불안도 하구요. ㅋ
    재밌게 읽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자동으로 맞춰준다고 해도 주변 부품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의미가 없더라구요. DDing님도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

  8. 2010년 7월 10일
    Reply

    튜닝의 유혹을 받을수밖에 없는 안드로이드도 결국엔 순정으로 오게 되는듯한 느낌은 비슷한거 같아요 ^^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그래도 모토 쿼티만큼은 튜닝해야겠어요. ㅜ.ㅜ

  9. 2010년 7월 10일
    Reply

    순정만 고집하는 1인입니다. ^^;
    주말 잘 보내세요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저도 순정만 고집하고 싶답니다. ㅎㅎ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달려라꼴찌님이 순정파라 하시니.. 왠지 믿음이.. ㅎㅎ ^^

  10. 2010년 7월 11일
    Reply

    칫솔님의 새로운면을 알게되었네요.
    왠지, 스피드광이신것 같네요…ㅎㅎ

    • 칫솔
      2010년 7월 11일
      Reply

      아무 것도 모를 때는 조금 밟았지만, 요즘은 정말 얌전히 다닙니다. ^^;

  11. 2010년 7월 12일
    Reply

    첫번째 티뷰론 사진… volk 휠에 캘리퍼 레드도색… 이 정도면 ‘비교적 얌전한 튜닝’이려나요?ㅎㅎ(하긴, 티뷰론은 워낙 괴악한 튜닝들이 많아서…) 저도 한때 자동차 튜닝에 깊게 심취했습니다먼, 요즘은 세차도 잘 안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이제 꼭 오버클럭을 해야 할만큼 PC의 성능을 타는 프로그램(심지어는 게임조차)이 그다지 많은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버클럭은 철저히 개인적인 만족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 칫솔
      2010년 7월 14일
      Reply

      휠은 SSR GT-1 깨먹고 싸구려 짝퉁에다, 타공 디스크에 투피 작업밖에 안했습니다. -.ㅡㅋ
      저도 요즘 세차 안합니다. 튜닝도 귀차니즘이 가장 무서운 적인 듯 싶어요~ ^^

  12. 2010년 7월 12일
    Reply

    저도 순정을 좋아 합니다. 튜닝을 하면 시간이 지나면 왠지 어색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튜닝을 잘 하지 않습니다. ^^
    튜닝의 끝이 순정인게 정말 맞는 말인거 같습니다. ㅋㅋ

    • 칫솔
      2010년 7월 14일
      Reply

      사실 뿌듯함은 있지만, 너무 쓸데 없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정말 차도 만들 것 같더라니까요. ^^

  13. 123
    2010년 7월 15일
    Reply

    튜닝의 끝은 슈퍼카?
    라서 끝이라고 하는거아닐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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