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오셨으나 메시지 없었던 벨킨 기자 간담회


축구 경기가 끝났네요. 이기긴 했지만, 왠지 답답하더군요. 골이 안나서라기보다는 골대 앞까지 가는 과정들이 투박해 보였고, 손발을 덜 맞췄다고는 하나 너무 의욕만 앞서 우왕좌왕한 모습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박수를, 첫 승을 올린 올림픽 대표팀에 축하를 보냅니다.


축구 경기처럼 답답한 기자 간담회가 낮에 있었습니다. 벨킨이 지난 CES에서 발표했던 여러 제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기자간담회를  2월 28일 웨스틴 조선 호텔 18층 프레지던트 룸에서 열었습니다. 기자들이 오늘 발표회에 의미를 두고 찾은 이유는 벨킨 쳇 핍킨 회장(위 사진 왼쪽)께서 오셨다는 것 때문입니다. 아.. 벨킨을 혹 싸구려 액세서리 회사로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그들 수입이 연간 1조원입니다. 우리나라에 진출이 늦어서 그렇지 영어권에서는 잘 알려진 주변 장치 전문 업체인데, 한마디로 알게 모르게 돈많은 알부자 같은 기업이죠.


그런 회장님 방한이니 기대를 갖고 찾아갔습니다만, 프레젠테이션 시작 직후부터 환상이 깨지더니 결국 알맹이가 별로 남지 않은 간담회가 됐습니다. 마치 승리는 따논 당상 같은 경기에서 연신 헛발질에 졸전을 펴다 0:1로 진 경기랄까요?


사실 기업 규모가 있는 회장이나 사장이 방문하면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가 어떤 비전을 가졌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접근합니다. 망망대해에서 가고자 하는 올바른 방향을 정해 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을 다독이며 나아가는 선장처럼, 각 기업 수장들도 자신의 비전을 직원들과 공유하면서 나아가기 때문에 그 한마디 한마디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오늘 벨킨 회장의 목소리는 잘 안들렸습니다. 그는 벨킨의 창립자입니다. 작은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1982년 벨킨을 세워 1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세계 1천200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청소년 캠프나 축구팀 코치 등 여러 청소년 관련 사회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얘기들은 이날 나온 보도 자료에 잘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핍킨 회장이 벨킨을 잘 모르는 기자들을 위해서 직접 벨킨 조직과 매출, 제품군, 유통 방안을 소개하는 친절을 베푸셨으나 이를 듣는 기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지난해 다녀간 에릭통 부사장(위 사진 오른쪽)이 다 말한 내용이었으니까요. 정작 기자들이 기대한 것은 전문 기업인의 경험이나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서의 벨킨의 변화 같은 메시지였습니다. 폭탄 발언은 아니라도 읽는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한마디를 기대했지 벨킨 소개 같은 브리핑이 아니었던 것이죠. 특히 이날은 Q&A 시간도 갖지 않아 기자들과 대화를 나눌 마지막 기회도 차단했습니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잠시 얘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Q&A처럼 모두가 집중하는 상황에서 던지는 메시지와 기자 개인이 묻는 의견에 대한 답은 결코 같은 질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회장님 방한은 완벽한 자살골을 넣은 상황이었습니다.



펩킨 회장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취재는 해야겠기에 함께 방한했던 에릭 통 벨킨 부사장 겸 아시아태평양 사장을 만났습니다. 에릭 부사장은 지난해 벨킨 스카이프폰 발표회때 바로 옆에 앉아서 월드컵 얘기를 나누면서 얼굴을 익혀뒀는데 8개월 만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 에릭 통 부사장은 올해 서른 여덟입니다. 서양계 기업에 비교적 나이 어린 동양계가 부사장직에 올랐으니 그 능력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에릭 부사장은 우리나라 시장과 제품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기에 이야기가 잘 통합니다. 적어도 그는 분기마다 한번씩은 한국에 다녀가니까요. 에릭 부사장에게 요즘 일들에 대해서 몇가지 물어봤습니다.


지금 전파통신 연구소에서 802.11n에 대한 인증을 내주지 않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 했더니 괜찮다며 부드럽게 넘기더군요. 무슨 말인고 하니 전파연구소가 차기 무선 랜이라 불리는 802.11n의 초안 버전을 적용해 만든 외국의 유무선 공유기와 무선 랜 칩세트에 대해서 MIC 인증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전파 기준에 맞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인텔 등 칩셋 메이커는 물론 다른 외국 업체들의 11n 초안 제품 승인을 미루고 있는 것이지요. 인텔이 전파 연구소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건 802.11n 초안을 기본으로 채택한 산타로사 플랫폼 노트북을 국내에서 출시 못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텔 코리아가 산타로사 발표 전까지 해결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잘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네요. 벨킨은 N1이라는 802.11n 초안 유무선 장치를 만들었고 지난해 말 우리나라에서 판매한다고 발표했다가 승인을 받지 못해 유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에릭 부사장은 서두를 필요 없이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 차원의 통제에 대해서 인위적인 해결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벨킨 스카이프 폰에 대한 이야기인데, 얼마 전 SMC가 같은 모델을 내놨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전체 디자인과 버튼 모양이 똑같아서 벨킨이 OEM 공급한 것인가 했는데, 벨킨 역시 OEM 납품 받고 있었더군요. 여름 쯤에 벨킨이 자체적으로 만든 새로운 스카이프 폰이 나온다고 합니다. 디자인을 산뜻하게 하고 크기를 더 줄여 예쁘게 만들고 있다는군요. 참고로 지금 벨킨 스카이프 폰의 국내 판매량은 월 500대 수준이라고 밝혔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벨킨 스카이프 폰을 처음 런칭한 것은 한국과 영국이었고, 한국 판매량에 대해서는 이미 본사에서도 놀랐다는 후문입니다. 의미를 둘만한 성적이었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스카이프 폰보다 MS 메신저 폰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 생각 없냐고 했더니, 아이디어 좋다면서 연구를 진행해보겠다더군요. 뭐.. 서비스 멘트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기대는 안하고 있습니다. 메신저 폰을 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기술적 문제와 시장성 파악 등에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기 때문이죠. 가능성 없고 구현 힘든 기술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중단될 것입니다. 한다고 결론 내려도 MS와 함께 작업을 해야 하므로 쉽게 결과물을 얻을 수 없을 거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삼성과 LG 같은 대기업과의 협력 관계입니다. 벨킨이 최근 삼성의 K5와 K3, T9용 케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삼성과 액세서리 개발을 해오다 2월에서야 첫 제품을 내놓은 것이었죠. 올해는 삼성 이외에 LG도 가세합니다. LG가 만드는 PMP쪽 액세서리 개발을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삼성이나 LG가 북미 지역에서는 아이팟에 밀려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닙니다만, 동유럽이나 제3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고 제품과 액세서리가 서로의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가 나올지 두고봐야겠습니다. 아무튼 벨킨 내에서 삼성과 LG 등과 공동 연구를 할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그룹이 있다니까 얼마나 더 좋은 제품이 나올지 기대해봐야겠네요.


이날 간담회는 지난 CES때의 제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라 앞으로 핵심이 될 제품들을 볼 수 없었는데, 에릭 통 부사장이 다음에 신제품을 들고 다시 찾아온다고 하니 기다려봐야겠습니다. 아, 벨킨 한국 지사가 오는 8월에 세워질 예정입니다. 그때 영어 잘하면서 여러 하드웨어에 잘 아는 사람을 뽑을 예정이라고 하니 외국계 직장을 찾는 취업 준비생들은 한번 도전해보시길~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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