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e북, 참 갑갑하다.

인터파크가 내놓은 e북 리더인 비스킷을 쓸 때, 열혈강호 50권을 구매해 놓은 게 있었다. 50권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 5만 원에 할인 판매였던 터라 갖고 있던 상품권을 몽땅 털어 구매했던 것이다. 그런데 열혈강호 세트를 구매했던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당시 인터파크가 비스킷을 내놓으면서 하나의 ID에 등록된 6개의 단말기까지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산 책을 6개 단말기에서만 공유한다는 게 어이없지만, 그나마 여러 단말기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문제는 인터파크가 조금 나은 편이긴 했다. 무엇보다 인터파크가 향후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쓸 수 있는 e북 리더를 내놓을 것이라고 미리 밝힌 터라 이 때를 대비해 구매를 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기대를 갖고 갤럭시탭에 인터파크 e북 리더를 깔았다. 인터파크 ID를 넣고 내 구매목록을 열었다. 무료로 넣어준 e북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내가 샀던 열혈강호 50권 세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없을까? 분명 웹사이트에서는 내가 산 열혈강호가 구매 목록에 버젓이 올려져 있었는데 말이다.


트위터의 비스킷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왜 비스킷 앱에서는 내가 산 열혈강호를 볼 수 없냐고. 돌아온 대답이 이렇다. 불편을 줘서 미안하긴 한데, 만화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스마트 단말기의 캡쳐기능을 두려워해 내 단말기에선 다운로드를 할 수 없단다. 그러니까 스마트 단말기의 e북 앱에 띄운 만화 이미지를 일일이 캡처해 무단으로 배포될 수도 있으니 미리 막았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성의껏 대답해 준 담당자 때문에 표현을 많이 순화했지만, 정말 짜증나는 상황이다. 지금 그 열혈강호를 구할 수 있는 루트가 없어서 50권 세트를 구매했는 줄 아는가? 어디까지나 내가 갖고 있는 e북 단말기에서 내가 구매했던 컨텐츠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열혈강호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e북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 독자의 입장에서 볼만한 컨텐츠가 없다는 게 얼마나 실망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매 목록에 열혈강호는 없다. 내가 산 e북을 내가 산 장치에서 못본다면 누가 e북을 볼까?
그래놓고는 독자들을 탓한다. 불법복제를 할지도 모른다면서. 그래놓고는 하드웨어를 탓한다. 불법복제를 하기 좋을 거라면서. 그래놓고는 소프트웨어를 탓한다. 불법복제를 막는 장치가 없다면서. 그런데 이런 것을 탓하기 전에 먼저 탓해야 하는 건 닫혀있는 당신들의 마음이다. 불법복제가 없는 완벽한 시장이 만들어져야, 디지털의 폐해로부터 다치지 않아야만 상품을 내놓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지금 한 권의 e북을 사 보려는 독자마저 떠나게 만들려 한다.


며칠 전 참석한 모바일 앱 어워드에서 제닉스님의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음원 공유에서 디지털 음원을 구입하는 비율을 보면 DRM을 포기하고 합법적인 사용자를 더 편하게 대우하는 시장을 보면서 구입비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합법적인 사용자가 더 불편한 것을 없애고 좀더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면 환경을 구성해 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저 음원이라는 단어를 e북으로 바꿔 읽어보라. 답은 뻔하다. 독자가 사서 보기 불편한 e북을 보라고? 참 갑갑하다.


덧붙임 #


1. 여기에서 말하는 당신들은 생각보다 많은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독자만 빼고.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40 Comments

  1. 2010년 11월 20일
    Reply

    불법복제물을 막기 위해 합법적인 사용자를 불편하게 한다는 논리는 어느 나라 개념인지…
    DRM 문제는 정말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DRM 뿐만 아니라 지금 시장에 대한 생각을 재점검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2. 2010년 11월 21일
    Reply

    참 답답하시겠네요.
    판매전에 미리 그런것을 대비해 놓고 팔던가…
    소비자의 뒤통수를 치는 그런 마케팅으로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마케팅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장 상황의 문제지요. 전자출판에 대해 트라우마가 심한 저작자, 출판사, 유통 업체 등이 꼼수만 부리고 앉아 있으니 될 턱이 없지요.

  3. 이거 어디선가
    2010년 11월 21일
    Reply

    딱 MP3 꼴 난다. mp3 불법이고, 동영상 공유 불법이라 딱지붙이고, 불법 시장이 활성화 되니.. 스윽…등장해 고소 남발하고…소비의 트랜드가 바뀌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거다….차라리 사람들과 합의를 해서 적정가격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디지털 시장은 싸게 파는 대신 여러 명에게 파는 전략이 맞는 거다.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mp3 꼴 난다는 의견에 공감이 가는군요.

  4. 2010년 11월 21일
    Reply

    불법복제를 걱정해서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는것보단 좀더 컨텐츠소비를 할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여 바른 컨텐츠소비 환경을 구축하는것이 좋을 텐데말이죠..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그 말씀이 맞습니다. 시장 초기에 양질의 유통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음지 시장이 더 커질 수밖에 없지요.

  5. 누노
    2010년 11월 21일
    Reply

    mp3 그렇게 삽질해놓고도 여작지 정신 못차렸죠. 와이파이로 시장 좁아지는게 싫어서 그렇게 경계하더니 결국은 무선기능 갖춘 디바이스 완전 외산들에게 참패하고 말았죠..(한국의 기업 경제논리면 아이패드같은거 절대 못만듭니다 기술이 있어도..) 이북도 그렇고 말씀하신 불법캡쳐 우려때문에 제한 한것도 전형적인 한국기업들의 소극적 시장방어 마인드군요..참 한심합니다.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이번 문제를 보면서 e북 업계가 참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6. BrAd
    2010년 11월 21일
    Reply

    지난주 인터파크 이북 담당이었던 사람이 강연하는 컨퍼런스에서 느낀점. 듣는사람의 니즈에 관심없고 말하는 내용의 촛점도 없고 … 저런 정신으로 사업하면 망한다… 반면교사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중간에서 e북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도 참 불쌍합니다. 양쪽의 의견을 다 수용해서 사업을 이끌어가야 하니 이야기가 복잡해지는 것이거든요.

  7. 2010년 11월 21일
    Reply

    좋은 글이네요. 제품 판매자가 소비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내것부터 보호하려고 하면 팔릴 리가 없죠.^^ 아주 좋은 점을 지적해주셨으셨습니다^^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고맙습니다. ^^

  8. widow7
    2010년 11월 21일
    Reply

    이 나라는 소수의 기업 살리자고 다수의 국민을 죽이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이 정해져 있으니 말입니다. 어차피 한국인은 책 안읽으니까요. 성인 60%는 1년에 단 하나의 인쇄물도 구입하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니까요. …막내가 비스킷을 구입한 걸 보고 제가, 그 값이면 다른 책 여러권을 구입할 수 있지 않냐, 고 했는데 얼마전에 가보니 하도 쓰지 않아 완전 방전된 상태로 책꽂이에 처박혀 있던데….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글쎄요. 여전히 책은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9. 찌릿
    2010년 11월 21일
    Reply

    저작권자와 출판사의 마인드 전환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mp3도 저작권을 가진쪽과 음반사가 먀우 보수적이었죠. 국내 음반사는 많이 좋아지긴했지만 출산사가 그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굳이 실험적인 모험을 하려고하지않습니다. 어치피 볼사람들은 종이책을 볼테니 큰 먀출비중도 없는 유통채널을 위해 던졌다가 만에하나 불법복제가 된다면 힘만든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시장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시장이 만들어지면 참여하려는 것이죠. 대세는 전자책이지만 가능한한 늦게 참여햐도 손해날게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니 일찍 뛰어들 이유가없다고 생각할겁니다.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말씀하신대로 마음의 문제가 맞습니다. 그 마음을 닫아 놓은 상황에서는 절대 e북 시장은 열리지 않겠지요.

  10. 2010년 11월 21일
    Reply

    헐.. 이런 말도 안되는 사태가 발생을 하다니요 ㅠ.ㅠ
    음.. 구청 도서관이라던가 이런데서는 전부 eBook을 ActiveX로 처리하던데
    언제쯤 편하게 pdf로 구매하고 ebook에서 보는 날이 오려나요..

    전에도 말씀드렸듯 거의 대부분의 책들이 DTP를 통해 나오는데
    왜 eBook으로 모든 책들이 나오지 않는지도 참 의아하고 말이죠..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저도 많이 의아하지만, 한가지 확신한 점은 책을 팔 사람의 의지가 가장 큰 문제겠지요.

  11. 2010년 11월 21일
    Reply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구닥다리 아날로그 마인드라니.

    그냥 웃지요.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근데 웃음도 안나요.. ㅜ.ㅜ

  12. 언제쯤이나..
    2010년 11월 21일
    Reply

    비스킷 사서 신간도서들 좀 싸게 보려고 했는데..볼게 없어요..구간들도 잘 안팔렸던 책들만 넘쳐나고..인터파크 전화해서 따졌더니 출판사들이 컨텐츠를 보내주지 않아서 그런다구..ㅠㅠ..뭐라더라 ..공중송신권 계약이 안된 출판사들이 절반이 넘는다던데..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될까? 그때쯤이면 칼라풀하게 또다른 단말기가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될텐데.. 먼저 멋모르고 산 내가 바보인거여..ㅠㅠ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참 갑갑한 노릇이죠. 독자들이 볼 책이 없는데, 누가 책을 살런지…

  13. 2010년 11월 21일
    Reply

    매우매우 공감가는 글이네요. 우리나라는 왜 이리 늦는걸까요?! 소극적이고 방어적이고 기득권을 안놓치기위해서만 발악.딱 mp3 시장만 돌아봐도 답은 뻔한데.정말 바보같단 생각 밖에는…착한소비자(?)들 편하게 해주면,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러다보면 다들 착해지고 시장도 커지고….그리 될텐데.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함께 망해갈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겠지요.

  14. 2010년 11월 22일
    Reply

    불법복제를 하는 유져들도 잠재적인 소비자이자 고객인데 잘 못 생각하고 있는것 같네요
    다른 방법을 물색하기보단 아예 막아버리는 방법을 택하다니…..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그러게요. 참으로 답답합니다.

  15. 재윤
    2010년 11월 22일
    Reply

    정말 공감되는 이야기입니다. 비단 출판계 뿐만이 아니겠지요
    소비자의 편의성을 배려한 통합적인 콘텐츠 마켓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 칫솔
      2010년 11월 22일
      Reply

      저도 공감합니다. 그런 마켓이 열리려면 독자를 향한 마음부터 열어야지요.

  16. 2010년 11월 22일
    Reply

    게임의 경우 ubi soft에서 구매자를 더 불편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는데요.. (심지어 볼법복제 + 해킹 서버의 조합이 정식 사용자에 비해 더 쾌적한 환경)
    불법복제에 피해를 크게 입은건 알겠지만, 시장을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는것 같네요.

    • 칫솔
      2010년 11월 26일
      Reply

      정상적인 판매 경로가 불편한 것도 불법 복제를 부추기는 원인이지요. 아마 사업자들은 모르는 일일 겁니다. ^^

  17. 2010년 11월 23일
    Reply

    mp3 짝 난다에 저도 한 표 더 걸겠습니다.
    “차라리 영어 공부해서 영어 책 읽는 게 더 낫다” 고들 하는 세상이 오는게 아닌가 싶어요.

    • 칫솔
      2010년 11월 26일
      Reply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님의 탄식이 들리는 듯~ ^^

  18. 2010년 11월 23일
    Reply

    역시 모바일 컨텐츠는 불법복제와 싸움인가봐요~
    그럼으로 유저들이 조금 손해나 피해를 보는것도 어쩔 수가 없네요;;

    • 칫솔
      2010년 11월 26일
      Reply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모든 컨텐츠가 불법 복제를 경계하고 있죠. 하지만 그보다 쉬운 유통 경로를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칫솔
      2010년 11월 26일
      Reply

      네, 정말 개선이 필요합니다.

  19. 할로
    2010년 12월 10일
    Reply

    공감되네요 이북관련기기를 구입하지않았던 이유도 컨텐츠와 관련된 것들이었거든요.
    한달에 4권씩 1년이면 50권이 넘는 책. 많이 구매하는 편이 아님에도 보관도 어렵고 휴대가 불편하니
    이북을 찾아봤지만 신간은 물론이고 베스트셀러도 없는것이 다반사니 손이 안가더라구요
    구입이 쉽고, 구입한 컨텐츠 이용이 더 편리하다면 더 많은 구매로 이어질수있을텐데,.,
    사실 유료mp3시장이 커지고 자리잡게된것도 쉽게 구매가능하다는 것에있지않겠어요.
    어디서나 한 아이디로 이용가능하고….
    무튼 출판업계와 작가님들이 좀 더 크게 바라봤으면 좋겠네요.

    • 칫솔
      2010년 12월 13일
      Reply

      네. 읽을 책이 없는데, e북을 사보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없지요. 이제는 e북 전문 작가들을 지원해야 할 시대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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