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MS는 패키지 판매를 외면하나?

MS 담당도 아닌, 소프트웨어는 더더욱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하드웨어 기자가 비스타에 관련한 글을 올리니 내스스로도 ‘생뚱’ 맞은 느낌이다. 비스타가 하드웨어를 움직이게 하는 운영체제이고 PC와 노트북, 그 밖에 여러 액세서리 등에 발을 깊숙히 담그다보니 자연스레 눈길이 갔을 뿐이지만, 하드웨어처럼 비스타를 깊게 파보려는 노력은 안하는 만큼 글도 얕고 식상하다. 그런데도 또 글을 올리는 것은 출시된 비스타의 기대와 실망, 진실과 오해와 더불어 난무하고 있는 논란 한 가지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다.


최근에 비스타가 나왔다는 것보다도 더 말이 많았던 뉴스는 ‘비스타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미국보다 비싼 가격을 두고 “MS의 횡포다” 또는 “소수를 무시한 괘씸한 행동이다”는 여러 의견이 블로고스피어를 달궜다. 비싼 가격을 두고 사방팔방에서 쏴대는 비난의 포화 때문인지 MS가 꼬리를 내릴 것 같다는 글도 보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는 숨죽이면서 사태의 추이를 바라만 보고 있다. MS 한글 페이지에서 연결된 모든 쇼핑몰은 조정되지 않은 값에 판매를 하고 있으며, 가격 조정에 따라 차액을 환불해 준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지나가는 소나기라도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며칠 안으로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한다고 해도 그 폭이 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왜냐하면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흔히 MS 같은 글로벌 기업의 비즈니스를 말할 때 공룡에 빗대 말한다. 공룡의 머리나 꼬리가 아니라 몸통을 노리는 비즈니스를 한다고. 공룡 머리나 몸통 어느 쪽이든 1이라는 똑같은 양을 투자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는 안봐도 뻔하지 않나. 그럼 공룡 얘기가 패키지 판매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쉽게 생각하자. 비스타 패키지는 머리요, OEM와 DSP 버전은 몸통이다.


같은 비스타인데 왜 패키지만 머리이고 OEM과 DSP가 몸통일까? 며칠 전 MS가 패키지 가격 논란과 관련해 내놓은 해명은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윈도의 99%는 OEM과 DSP 버전으로 공급되고 있어 패키지 구매자는 1%도 안되며, 고로 비스타 PC를 사는 이들은 손해볼 일이 없다”는 것. 여기서 MS는 명확히 머리와 몸통을 구분해 말했다.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1%의 패키지 구매 고객과 손해를 안 볼 99% OEM/DSP 고객.


하지만 대부분은 이 말에 혈압이 오른 나머지 본질은 놓쳤다. 단순히 PC를 사면 손해를 안보고 패키지를 사면 손해를 본다는 뜻이 아닌, MS의 달라진 기업 중심의 유통 정책을 단적으로 말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MS에게 있어 이는 99% 확실한 고객과 1%의 불확실한 고객, 99%의 비용 절감과 1%의 비용 증가를 뜻한다.


중요한 것은 왜 소비자 중심이 아닌 기업 중심의 정책이냐는 것이다. 늘어나는 불법 복제와 업그레이드 수요가 감소함으로써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진 것도 이유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에 공급하는 OEM과 DSP판은 MS가 사후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비스타를 포함해 윈도가 깔린 PC를 사는 이들은 PC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업체로 연락을 한다. 윈도에 결함이 생겨도 MS가 고객에 응대하는 게 아니라 판매 업체가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MS는 윈도를 공급하고 몇몇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개선하는 것 이외에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윈도를 쓰는 99% 고객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사후 관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MS로서는 정말 큰 이득이 아닐 수 없다. 고객을 상대할 인력과 장비, 공간, 통신, 그밖의 부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다. 사업의 경험이 있는 블로거나 경영인라면 기업이 사후 관리에 드는 비용에 대해 적잖이 부담스러워 할 것이고, 사후 관리라는 속박에서 벗어난 MS가 부러울지도 모른다.


문제는 1% 고객이다. MS는 이들을 위해 사후 관리를 해야 한다. 패키지 구매 고객이 많다면 여기에 드는 돈은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겨우 1%라니 기업 입장에서 보면 참 달갑지 않은 숫자다. 앞서 말했듯 구매력은 떨어져 많이 팔수도 없고 투자를 해도 남는 게 별로 없는 데다 그렇다고 관리는 안해 줄 수 없는 참 묘한 상황인 것이다. MS 입장에서는 그 1%도 없애고 싶은, 비효율적인 공룡 머리일 수밖에 없고 이는 무척 성가신 상황이 된 것이다. 99%는 손해보지 않는다면서 패키지 구매자가 겨우 1%밖에 안되니 어떻게 든 그 의미를 줄여야만 하는 게 MS의 속내인 것이다.


물론 1% 구매자들은 MS로부터 직접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다. 패키지에는 MS 문의처가 적혀 있고 구매자들의 산 비스타의 시리얼 번호를 불러줌으로써 사후 관리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후 관리를 넘치게 받을 만큼 충분한 대가를 치렀거나 앞으로 치를 것이다. 소수를 위한 투자에 대한 그 책임을 나눌 이용자가 너무 적은 탓에 그 비용을 떠 안는 셈이니까. 또한 우리나라 패키지 정책은 비싼 가격에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차별감 마저 느껴져 이래저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패키지를 구매하지 마라는 듯 귀찮은 인상을 풍기는 것은 너무 작은 대갈통이라 깔보기 때문은 아닐까.  


어째서 그 책임을 소비자가 짊어지어야 하느냐고 내게 따지지는 마시라. 다른 쪽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패키지 쪽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게는 하지 마시라. 비스타 비즈니스에 대한 모든 키는 내가 아닌 MS가 쥐고 있고 지금 논란을 일으킨 것도 그들의 비즈니스 정책 때문이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오래 전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은 멸종했다.
그때처럼 덩치만 앞세운 공룡 이론의 종말을 언젠가는 보고 싶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Be First to Comment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