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북의 끝판왕이 되지 못한 HP 엔비 스펙터XT

HP 엔비 스펙터XT 리뷰, HP 엔비 스펙터XT 장단점
지난 5월 HP 엔비 스펙터XT(이하 스펙터XT)를 봤을 때 거의 울트라북의 끝판왕, 종결자가 될 거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없으며, 스펙터XT로는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물론 엔비 스펙터XT가 처음 공개된 5월에 출시되었다면 그 결론을 굳이 바꿀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노트북은 그 후 3개월 뒤에 국내에 출시되었고, 그 사이 시장의 변화는 매우 많았다. 또한 애석하게도 전력 대란의 위기까지 몰고갔던 올 여름 무더위는 스펙터XT가 감추고 싶었던 단점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클래식 시그니처, 오래전 떠난 친구의 귀환


엔비 스펙터XT에서 점수를 가장 후하게 줄 수 있는 부분은 세심하게 다듬은 모양새에 있다. 물론 수많은 경쟁 제품에 비하면 파격적인 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단지 자기 개성을 뽐내기 위해서 억지를 쓰지 않고 고전적인 틀로도 얼마든지 중후한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을 증명한 것에 대한 보상은 해주는 것이 마땅할 뿐이다.


HP 엔비 스펙터XT 리뷰, HP 엔비 스펙터XT 장단점
사실 엔비 스펙터XT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부분만 콕 찝어 말하라면 ‘HEWRETT PACAKRD’라는 클래식 시그니처가 써 있는 경첩부라고 말할 것이다. HP라는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한 로고를 덮개에 새겨 놓았음에도 따박따박 풀어 쓴 휴렛패커드는 아주 오래 전에 떠났던 친구가 돌아온 것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아주 오랫동안 휴렛패커드로 알아왔던 내 감성의 일부가 깨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휴렛패커드라는 이름을 내세운 제품이 갖춰야 할 본질을 찾으려는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하다. 물론 HP의 디자이너는 이 클래식 시그니처를 단지 장식으로 활용했을 뿐이지만, 이 시그니처를 보며 그동안 본질을 잃어버린 제품을 내놓은 것에 대한 반성을 해야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은은한 은빛의 덮개와 둥근 HP 로고는 지금 지루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엔비 스펙터XT가 평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쪽이 얇고 뒤쪽이 두꺼운 구조면서도 의외로 다른 13.3인치 노트북과 비교했을 때 조금 작게 보인다. 물론 스펙터XT의 전체 크기는 다른 울트라북과 비교하면 비슷한데, 그 이유는 뒤쪽의 경첩부와 작아진 덮개에 있다. 스펙터XT는 다른 노트북처럼 경첩 부분을 딱딱한 직각으로 잘라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선으로 기울어지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경첩부가 좀더 앞으로 당겨지는 효과가 나타났고 길어진 경첩부만큼 을 뺀 짧아진 덮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덮개와 본체 부분의 모든 모서리를 조금 깍아내 날카로움을 없애면서 크롬처럼 반짝이게 처리한 것도 아주 작지만 외형을 더 돋보이게 만든 마감이었다.


군살 뺀 사전 설치 소프트웨어


HP 노트북을 리뷰할 때마다 항상 지적했던 것 중 하나는 너무 무거운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흔히 블롯웨어(bloatware)라고 부르는 이 소프트웨어들은 노트북을 이용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사전 탑재하지만, 많이 이용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저장 공간과 램 공간을 불필요하게 차지하고 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다행히 스펙터XT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앱이 대폭 줄었다. 보통 시작-모든 프로그램의 HP 폴더를 열었을 때 엄청난 양의 소프트웨어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항목을 열었을 때 썰렁해 보일 정도였다. 대신 꼭 필요한 기능은 바로 호출할 수 있도록 트레이 아이콘으로 바꿨는데, 이건 제법 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테면 트레이에 있는 볼륨 아이콘을 눌렀을 때 비츠 오디오 설정 패널을 열고, 쿨센스 아이콘을 누르면 팬 작동 상태를 조절하는 프로그램을 띄운다. 그리고 스펙터를 쓰다가 기능이 궁금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작업 표시줄에 있는 커다란 물음표 아이콘을 누르면 각종 도움말고 시스템 정보 등을 보여준다. 유지 관리를 실행하면 시스템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 지 자동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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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 프리미더 엘리먼츠
시스템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트레이 아이콘으로 들어간 것은 바람직하다. 이와 더불어 굵직한 프로그램을 몇 개 포함했는데, 특히 사진 편집을 위한 어도비 포토샵 엘리먼츠 10과 동영상 편집에 쓸만한 어도비 프리미어 엘리먼츠 10은 여러 모로 쓸모가 있다. 필요하다면 좀더 전문적 기능을 가진 버전을 깔아 쓰겠지만, 이 두 가지 소프트웨어만 있어도 사진과 동영상 편집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앱솔루트 소프트웨어의 노트북 도난 방지 프로그램도 들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작동하는 게 아니다보니 대부분은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실제 스펙터XT를 쓰는 데 유용한 프로그램만 모아서 넣어 놓으니 이전보다 확실히 깔끔한 기분이 든다.



스펙터XT의 제원에 대한 단평



  • 처리 성능 : 3세대 코어 i7에 4GB 램을 얹은 스펙터XT에서 무거운 작업은 어느 정도 소화를 할 수 있다. 내장형 그래픽이 월등히 좋은 편은 아니지만, 디아블로3를 최소와 중간 사이의 해상도와 옵션으로 소화해 낼 정도는 된다. 모바일 프로세서라고는 해도 포토샵과 프리미어에서 사진과 동영상 편집 작업 정도는 무난하다.


  • 저장 장치의 속도와 용량 : 스펙터XT는 세 모델 모두 SSD를 쓰고 있어 속도에 대한 불만은 없다. 단지 이번에 리뷰한 제품은 최상위 모델이었던 터라 256GB SSD를 얹어 놓았는데, 대용량 사진을 저장하고 편집하려면 이 정도 용량은 필요해 보였다. 단지 256GB SSD 가격이 무척 센 편이라 128GB와 256GB 모델의 가격 차가 심하다.


  • 부팅 시간과 재시작 시간 : 부팅 속도와 재시작 시간은 SSD의 속도와 별개로 살펴봐야 했는데, 사실 울트라북 치고는 조금 느린 편에 속한다. 부팅에 20초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는 데 윈도 노트북이라면 이른 시간이지만, 역시 울트라북이라는 틀 안에서 보면 좀더 빠른 부팅 시간을 요구한다.


  • 화면 : 13.3인치에 1366×768이다. 전체적인 제원에 비하면 해상도가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조금 더 높였으면 어땠을까? TN 패널이라 화면을 기울여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면 색상 반전이 일어난다.

HP 엔비 스펙터XT 리뷰, HP 엔비 스펙터XT 장단점



  • 키보드 : 키보드를 누르는 느낌은 역시 좋다. 키를 누르는 적당한 압력과 딱딱 끊어주는 느낌 만큼은 여전하다. 키도 넓도 버튼도 충분히 넓다. 오른쪽 아래 방향 버튼 중 상하 버튼이 좀 작은게 불만이지만, 구성은 나쁘지 않다. 다만 상단의 기능키를 하드웨어 설정과 연계해 놓은 터라 프로그램에서 F1~F12키를 단축 키로 쓸 때 Fn 버튼을 함께 눌러야 하는 것은 불편하다. 바이오스에서 설정을 바꿀 수 있긴 하지만, 그냥 윈도에서 설정을 바꿀 수 있도록 할 수 없었을지 의문이다.

HP 엔비 스펙터XT 리뷰, HP 엔비 스펙터XT 장단점




  • 터치 패드 : 손가락으로 문지를 때의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끄러진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 왼쪽 위 모서리를 두 번 터치하면 터치패드가 작동하지 않는데, 마우스를 쓸 때 터치패드의 오동작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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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B 단자 : USB 단자가 2개 뿐이라 주변 장치를 연결해서 쓸 때 부족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스펙터XT를 꺼놓은 채 오른쪽 USB에 스마트폰을 연결해 놓으면 스마트폰을 충전한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 매우 쓸모 있는 기능이다.


  • 배터리 : 2시간이 넘는 풀HD 영화 한 편은 너끈히 볼 시간은 된다.

HP 엔비 스펙터XT 리뷰, HP 엔비 스펙터XT 장단점



  • 스피커 : 일반적인 주택에서 듣는 정도의 음량으로는 부족함이 없고 비츠 오디오의 설정에 따라 4개의 스피커에서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점은 마음에 든다. 비츠오디오는 공간감을 살리면서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이 옵션을 끄면 소리가 빈약하고 어딘가 허전해진다.

스펙터XT는 왜 끝판왕이 되지 못했나?


국내에 스펙터XT의 출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던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애석하게도 끝판왕이 될 것이라는 이전의 예측이 틀린 것에는 유감이다. 그런 판단을 내린 결정적 이유는 발열 문제와 늦은 출시가 가장 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처음 스펙터XT를 받아 포장을 풀 때만 해도 꽤 기분이 좋았다. 예전 HP 노트북의 포장과 다르게 스펙터XT 본체와 부속품을 모두 파우치에 넣어 깔끔하게 담아낸 덕분에 한결 깔끔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펙터XT를 꺼내 필요한 모든 연결을 끝내고 전원을 켰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스펙터XT를 쓰던 중에 발생하는 발열과 소음이었다. 스펙터XT는 종전 HP 노트북의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인 소음과 발열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부 방열 구조를 바꿨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종전에는 왼쪽으로 열을 빼내는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바닥의 열을 끌어올려 뒤로 빼내는 구조를 채택한 터라 발열과 소음 감소를 기대케 했지만,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와 더불어 운도 따르지 않았다. 스펙터XT가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출시되었는데, 바닥과 본체 사이가 너무 좁아 조금 더 시원한 공기를 끌어들일 만한 공간이 없던 데다 이번 여름이 너무 무더운 나머지 스펙터XT로 데워진 공기가 유입되면서 내부에서 발생한 뜨거운 공기를 빨리 빼내기 위해 팬을 빠르게 돌리면서 팬을 계속 돌려야만 했던 것이다. 더구나 키보드 상단부(QWER 라인과 기능 키 라인)에도 열이 올라와 더운 날 키보드 작업을 할 때 방해가 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더불어 무게도 애매하다. 스펙터XT의 무게는 1.4kg으로 노트북으로서 무거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울트라북이 주는 가벼움을 느낄 수 있는 무게도 아니었던 터라 ‘가볍다’라는 결론을 확실하게 전하는 것은 힘들다.


발열과 무게가 크게 부각될 만큼의 문제를 낳지 않고, 더불어 출시를 좀더 앞당겼다면 스펙터XT는 다음 세대 울트라북 플랫폼이 나오기 전까지 보편적 울트라북 모델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굳힐 수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제품 발표 이후 국내 출시가 늦어지면서 경쟁 제품의 가격이 상당히 낮아졌고, 가장 좋은 제원은 값이 너무 높게 책정되다 보니 스펙터XT가 갖고 있는 장점을 띄우는 게 다소 버거운 상황이다. 스펙터XT가 디자인에 약한 HP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첫 시도였고 그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소득이지만, 좀더 소비자를 이해하는 설계가 필요함을 확인시킨 제품이기도 하다. 그래도 클래식 시그니처의 귀환 만큼은 환영한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5 Comments

  1. 2012년 9월 27일
    Reply

    조금 더 일찍 나왔더라면 좋았을 제품인데 많이 아쉽더군요. 독특한 느낌이 좋았던 제품이라 기대했었는데…

    • 칫솔
      2012년 10월 4일
      Reply

      그러게요. 우리가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괜찮은 제품이었는데 말이죠.

  2. 김현중
    2012년 9월 28일
    Reply

    아쉽네요 리뷰를 보니..혹시 스펙터xt 보다 괜찮은 울트라북이 어떤게 있을지 추천해주실 수 있나용?ㅋㅋ

    • 칫솔
      2012년 10월 4일
      Reply

      100만원 안팎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은 쉽게 찾아보실 수는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급하지 않으면 윈도8 이후에 가격 동향을 살피히고 구매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아무래도 윈도8이 출시되면 그 이전의 노트북도 가격이 조금씩 내려가기 마련이거든요~

  3. ydg
    2012년 9월 28일
    Reply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판매량과 인기가 최고 였던 i5-3550에 이어 앞으로 i5-3570이 시장에서 보여줄 맹활약이 정말 기대 됩니다.
    http://www.nowpug.com/14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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