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을 산 소프트뱅크, 누구도 볼 수 없는 눈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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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ARM을 사지 못한다

6년 전에 이런 제목의 글을 썼다. 그런데 6년 만에 틀린 이야기가 됐다. ARM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ARM을 품에 안은 새로운 주인은 바로 소프트뱅크. 24억 파운드, 원화로 치면 35조원쯤 되는 돈이다. 소프트뱅크는 전액 현금을 주고 ARM 주식을 몽땅 사들였다.

아마도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6년 전 ‘그 누구도 ARM을 사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ARM은 프로세서 생태계의 중추다. 끊임 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양처럼 ARM은 마이크로 프로세서 생태계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ARM은 직접 프로세서나 컨트롤러, 센서를 만들진 않지만, 그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를 그려서 공급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수많은 반도체 업체들이 그 설계도를 살 때, 그 설계도로 만든 칩을 팔 때 돈을 받는다. ARM에서 설계하고 반도체 업체가 조정한 뒤 팹을 통해 생산하고 제품 제조사가 이를 활용하는 철저히 분업화된 생태계에서 그 중추가 다른 이에게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볼 이들은 그 어디에도 없던 때였다.

때문에 이 생태계에 속해 있으면서 그 중추를 노렸던 이들에게 기회는 차단됐다. 아이폰의 성공 덕에 넘치는 현금을 쓸 곳을 찾던 중 80억 달러로 ARM을 되사려 했던 애플이나 2006년 ARM의 관계를 청산하고 x86으로 전환한 뒤 저전력 프로세서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던 인텔도 ARM의 사냥꾼이었지만, 이 생태계를 지탱해야 할 의무를 알고 있던 ARM은 이들을 거부했다.(참고로 애플은 ARM의 창업 멤버 중 하나였음)

하지만 2016년 7월 18일, ARM은 소프트뱅크를 새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프트뱅크는 알다시피 ARM 생태계의 핵심 구성원이 아니다. 이 생태계의 이해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기업이 ARM을 인수한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다. ARM 구성원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ARM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라서다. ARM은 지금까지 다양한 마이크로 아키텍처의 지적 자산을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 사물 인터넷 환경을 고려한 더 많은 지적 자산 설계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균형 잡힌 ARM의 생태계를 고려할 때 투자자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데 있다. ARM이 투자를 받을 수 있어도 이해 관계에 엮인 투자자가 들어와 이 균형을 흔드는 것을 싫어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하면 소프트뱅크는 이해 관계에 놓여 있지 않아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투자 조건에서 머무를리 없는 손정의 회장은 ARM의 고민을 듣고 미래를 약속하는 더 큰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다. 사물 인터넷의 미래를 공유한 ARM을 더 키우겠다는 조건이 ARM을 흔들었을 수도 있다. ARM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ARM을 성장시키는 것, 소프트뱅크의 이 같은 방향성에 ARM이 동의하면서 합의는 협상 개시 2주만에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ARM은 독립적인 회사로 유지시키면서 2020년까지 1500명의 전문 인력을 더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말한 소프트뱅크지만, ARM과 합의된 이야기로 보인다.

때문에 소프트뱅크는 ARM 생태계에 틈을 벌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말이다. 비록 ARM 생태계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ARM의 생태계 구조를 흔드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들이 모를리 없다. ARM을 인수한 소프트뱅크가 지적 자산을 이용한 직접 생산을 할지도 모른다는 가설도 있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그런 일을 소프트뱅크가 할리 만무하다. 또한 시장 독점적인 기업의 인수에 따라 각국 기업들이 영향을 받는 문제를 심의하는 각국 정부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가능한 터라 소프트뱅크는 이에 대해 철저히 낮은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손정의 회장이 ARM의 상장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연구 개발 및 엔지니어 채용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은 알려진 반면 상장 폐지는 몇몇 일본 매체만 전하고 있다. 일본 ITMEDIA의 손정의 회장 기자 회견 기사에 따르면 “ARM은 팹리스 기업이므로 엔지니어가 자산이며, 지금이야말로 엔지니어를 늘리는 타이밍이다”는 손정의 회장의 발언을 싣고 있다.

상장 폐지되는 ARM은 개인 기업으로 전환된다. 주식 시장에서 떠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단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당장 주식을 되팔아 이익을 실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사고 팔 수 있는 주식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동안 ARM은 언제든 주식 가치에 따른 위상 변화가 예상될 수밖에 없어 소프트뱅크는 ARM의 상장 폐지를 통해 그럴 가능성을 확실히 배제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것이다. 물론 상장 폐지 후 개인 기업으로 전환은 소프트뱅크를 빼고 앞으로 이익을 챙겨줘야 할 주주가 없고 이사회를 통한 의사 결정 과정이 사라짐으로써 제품 개발이나 투자에 관련한 전략적 의사 결정을 더 신속하게 할 수 있다. 훗날 ARM이 다시 주식 시장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주식 시장에 상장할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향후 몇년 동안 ARM은 기업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반대로 이제 ARM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지게 된다. 어쩌면 진짜 비밀은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른다.

“ARM을 정말 싸게 사서 행복하다”

이 말은 손정의 회장이 ARM 인수 직후 일본에서 진행된 공식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2016년 매출 148억 달러에 15억 달러의 이익을 내는 회사를 35조나 들여서 산 회사를 보며 왜 샀을까라는 의문이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들에게 손정의 회장의 이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프트뱅크가 ARM 생태계에 해를 주지 않으려면 지금의 사업 구조를 유지하면서 ARM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투자라는 말이 나오지만, 손정의 회장은 이러한 바깥의 투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인상이라서다.

그렇다면 그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다른 것을 샀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ARM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면 숨겨진 한 가지가 더 있긴 하다. ARM은 지금까지 마이크로 아키텍처의 지적 재산을 생태계에 뿌리고 결실을 조금씩 거둔다. 이 때 성과에 달려오는 것은 돈과 더불어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정보다. 이는 프로세서의 지적 재산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ARM 생태계 정보다. 앞서 ARM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 설계도를 살 때,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센서나 컨트롤러, 프로세서를 생산할 때다. ARM은 그동안 생산되는 프로세서마다 로열티를 받아왔고 그 정보는 고스란히 ARM에게 전달된다. 어느 업체가 얼마나 많은 ARM 자산의 제품을 만들었는지 그 정보를 이제 손정의 회장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누가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까지…

ARM이 상장 기업일 때 이 정보를 가끔씩 공시 자료를 내는 것 외에 활용할 필요가 없었다. 허나 주인이 바뀐 지금 그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개인 회사가 되는 ARM은 더 이상 공시 정보를 내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팔았느냐는 것은 내부에 있는 이들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소프트뱅크는 내부자가 됐다. 그 정보를 모두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정보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이 정보를 쓸만한 곳은 있다. 소프트뱅크는 에어리스 커뮤니케니션(Aeris Communications)과 사물 인터넷을 위한 조인트 벤처 ‘에어리스 재팬’을 지난 주에 일본에 만들었다. 이 조인트 벤처는 이동 통신 서비스의 SIM 관리, 시각화, 데이터 활용, 과금까지 고객의 용도에 맞춘 엔드 투 엔드 서비스를 구축하는 IoT 원스톱 서비스 플랫폼과 원격 제어 및 차량 모니터링, e콜 등 에어리스의 ‘텔레매틱스 플랫폼’에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맞춤형 텔레메틱스 서비스를 맡는다. 그리고 함대 관리, 원격 의료 진단, 원격 감시, 버스 위치, M2M을 위한 응용 프로그램 플랫폼인 IoT 솔루션 서비스도 이 조인트 벤처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러한 IoT 서비스를 위해선 다채로운 IoT 장치가 들어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각 장치 안에는 수십개의 ARM 자산들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ARM 자산이 쓰인다. 결국 이 자산 정보들은 다시 ARM으로 모임으로써 어디에 무엇이 쓰이는지 알게 된다. 칩 설계보다 더 큰 사물 인터넷 서비스의 발빠른 대응을 위한 정보가 모이는 곳. 미래의 사물 인터넷 시장을 내다본 손정의 회장에게 ARM은 그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근원으로 보였던 게 아니었을까?

참조 |

http://www.itmedia.co.jp/news/articles/1607/18/news047.html
http://www.aeris.com/softbank-aeris-establish-joint-venture-in-japan
http://www.softbank.jp/corp/d/sbg_press/list/

덧붙임 #

  1. 스킨 오류로 이 곳에 공개된 모든 글의 작성일이 동일하게 표시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6년 7월 20일에 공개되었습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3 Comments

  1. 2016년 7월 21일
    Reply

    장기 비전 중심의 경영을 위해 상장폐지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ARM 생태계 정보’는 유용한 정보입니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나 ARM이 네이버, 다음이 검색을 통해 트래픽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는 서비스를 내재화하였듯, ARM의 로열티 사용량을 통해 해당 영역을 내재화하거나, 진출할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가능하다면 서비스 내재화보다는 크고 바른 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이나 기업에 자본 투자 또는 기술 협력을 할 순 있겠지만, 특정 영역이나 기업에 중립적이지 못한 투자나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순간 그 외 영역이나 기업의 경쟁자가 되는 것이 ARM의 위치고 역할이니 그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과거 지프데이비스를 인수를 통해 정보통신 분야의 흐름을 읽고, 관계를 형성한 것이 소트프뱅크와 손정의회장의 투자 성공에 큰 기반, 유용한 채널이 됐음에 비춰보면 ARM을 통해서 가능한 것도 IOT 전체 흐름을 현황을 ARM로열티 발생량과 금액으로 가장 정확히 분석, 이해하고 유력한, 유망한 기업, 기업가, 기술자 정보를 찾고, 관계를 형성하는 목적이 아닐까 판단합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한 쯤 적절한 곳에 슈퍼셀을 넘기듯 넘기고, 그 다음 그 동안 분석, 축적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린 비전을 기업, 기업가. 기술자 인수, 제휴, 투자, 영입 등을 통해서 하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ARM투자 목적은 IOT에 대해 가장 정확한 현황과 방향성을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확보, 축적하고, IOT주도권을 가질 유망 기업, 유력한 기업가, 기술자와 관계를 형성하다, 적절한 시점에 ARM를 팔아 자본 이익을 취하여, 그 자본으로 알리바바. 야후에 투자하듯 주도권을 잡아가거나, 잡을 기업에게 투자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 그림의 좋은 점은 성공확률이 높고, 상당한 자본 이익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한계는 스스로 주도하거나, 선도자가 될 순 없다는 점이라 판단합니다. 역사에 성공한 투자자로 남을 수는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혁명가로 기록되긴 어렵다는거죠! 좋은 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2. 국밥일인자
    2021년 4월 26일
    Reply

    글쓴이의 접근방식에 극찬을 보냅니다… 글 잘쓰시는거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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