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크패드로 태어나는 노트북이 견디는 고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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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제조사의 실험실을 들어갈 때마다 거의 공통된 요구를 받는다. 눈으로 보고, 귀로 설명을 듣기만 하라는 것이다. 물론 질문도 할 수 있다. 단지 실험실 안쪽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 동영상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제품 실험도 기밀로 취급해 무엇을 하는지 알려 주기는 해도 그런 실험 과정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철저히 막는다. 때문에 제조사의 테스트 시설을 다녀와도 늘어놓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씽크패드 25주년을 맞은 레노버가 비밀의 봉인을 좀더 풀기로 했다. 제품 개발 중 실험실을 개방한 것도 모자라 사진과 동영상 촬영까지 자유롭게 허용했다. 그것도 가장 까다롭다는 씽크패드의 중심지, 야마토 연구소를 말이다. 2년 전 찾아갔던 레노버의 베이징 연구소도 꽁꽁 숨기기에 바빴던 것과 비교하면 의외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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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 타워 2층 전체를 실험실로 쓰고 있는 야마토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20개의 미 육군 표준(MIL-STD)을 충족하는 실험을 포함해 모두 200여 가지에 이른다. 새로운 씽크패드가 만들어질 때마다 4개 집단으로 나뉘어 있는 이 실험실의 모든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제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레노버가 야마토 연구소 안 4개 구역의 모든 실험 장면을 다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만으로도 씽크패드가 얼마나 가혹한 실험을 거쳐 나오는지 이해하기에는 모자라진 않았다.

처음으로 들어간 곳은 내구성 디자인실(Durability Design Lab). 유난히 투명한 실험 장치들이 많은 이곳은 정전기, 전자기파 및 전자 왜곡처럼 PC 사용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전기적 스트레스에 대한 내구성 검사를 실험한다. 더불어 노트북을 열고 닫을 때 경첩의 내구성이나 화면 왜곡에 대한 실험도 이곳에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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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실험은 단순해 보이지만, 씽크패드가 받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을 것 같았다. 개발 중인 노트북 시료에 외부 전자파를 쏘기도 하고, 일부러 고압의 정전기를 키보드 주변에 쏘면서 오작동이 일어나는지 살핀다. 마우스의 USB 플러그에 고압 정전기를 쏜 다음 노트북 단자에 꽂았을 때 작동 오류가 나는지 확인한다. 화면 덮개를 여는 실험은 의외로 세세한 상황까지 가정했다. 화면을 왼손으로 열 때와 오른손으로 열 때 잡는 부위가 다른 만큼 왼쪽과 오른쪽 모서리 실험을 각각 따로 하는 것이다. 화면을 누르는 부위를 바뀌가며 이상 작동도 확인하고 사람이 직접 노트북을 밟은 뒤 제대로 작동하는가도 본다.

잠시 씽크패드의 과거 유물을 견학한 뒤에 찾아간 견고성 및 내구성 디자인실(Robustness and Durability Design Lab)은 들어서자마자 뭔가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앞서 내구성 테스트는 제품 내부 부품의 오작동 및 화면부 왜곡 등을 검사한 반면 이곳은 본체가 얼마나 튼튼한지 물리적 내구성 테스트를 진행한다. 충격이나 진동 등 노트북을 거칠게 다루더라고 깨지지 않도록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여러 압박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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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곳의 실험 장치들은 큼지막한 기계를 떠올리게 한다. 충격과 진동에서 제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테스트가 많다보니 기계들도 그 충격을 견딜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각 실험 기계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잦은 충격을 받거나 백팩에 들어 있는 노트북이 심하게 흔들리거나 두꺼운 책에 눌리는 상황까지 가정하고 있다. 노트북이 수평으로 떨어질 때, 모서리로 떨어질 때를 각각 나눠서 낙하 실험을 하고, 화면 모서리를 심하게 휘었을 때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이 실험실에서 먼지에 대한 노출 실험도 이뤄지고 있었고 제품을 분해하지 않은 채 모든 케이블이 제대로 연결 되었는지 엑스레이 검사도 한다.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을 입구에 붙여 둔 무선 및 음향 디자인실(Wireless and Acoustic Design Lab)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실험들은 씽크패드에 들어가는 각종 통신 장비들이 외부의 전파에 영향을 받는지, 또는 내부 안테나에서 나오는 전파가 적정한지 여부를 확인하다보니 외부 소음이나 전파를 차단하는 실험 도구가 많아서다. 전파 관련 실험과 측정을 하다보니 다른 곳에 비하면 이곳 시설은 대부분 외부 간업이 덜한 차폐성이 매우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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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외부 전파를 완벽히 차단한 채 노트북을 회전시키면서 안테나의 정확성을 측정하는 시설이나 스카이프 같은 화상 통화를 할 때 또렷한 소리를 전달하는지 확인하는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이 테스트 장치들을 이용해 무선 랜은 기본이고 3G, LTE 같은 통신 전파나, GPS, NFC 등 여러 무선 통신 기술이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다. 이용자를 괴롭히는 PC 소음도 완벽하게 밀폐한 작은 챔버에 넣어 기준을 충족하는가 살피기도 하고, CPU나 GPU 같은 빠르게 작동하는 부품들이 기계 내부에 간섭하지 않는지 면밀하게 체크한다.

마지막 공간인 전자기 및 신뢰성 디자인실(EMC and Reliability Design Lab)도 조용한 곳이다. 다만 실험 공간이 넓다. 사람이 들어갈 만한 커다란 테스트 장치나 공간도 여럿 보였다. 이곳은 씽크패드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를 측정하고 출하한 이후 여러 지역의 온도 변화에 노출되었을 때도, 또는 기압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 부품들에 대한 실험을 통해 그 신뢰성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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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 맨 처음 들어간 실험 장치는 마치 대형 냉동고 같은 시설이었다. 여러 대의 씽크패드를 올려 놓은 선반이 한 켠에 있던 이 실험실은 저온에서 고온까지 온도 변화를 통해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다. 비행기처럼 온도 변화가 급작스럽게 변하는 환경에 씽크패드를 화물로 실어보낼 때를 가정한 실험이다. 물론 저온, 또는 고온에서 작동 여부도 다른 장치를 이용해 확인하고, 습도의 변화에 따라 문제 없이 작동하는가도 확인한다.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전자파(EMI)는 사무실과 거의 비슷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서 측정한다. 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봤던 비교적 작은 장치는 흔들림에 따라 방열 팬의 내구성이 영향을 받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제품을 이렇게 다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격한 테스트도 많이 봤지만, 한편으로 방열팬처럼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살필 줄은 몰랐다.

비록 200여 가지 테스트 중 일부이긴 했지만 4개 구역에서 둘러본 씽크패드의 실험들은 사실 실험이라 쓰고 고문이라고 읽어야 할 정도로 매우 가혹하게 진행됐다. 씽크패드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두드리고, 떨어뜨리고, 휘어보고, 눌러보고, 이리저리 흔들고, 얼리고, 데우고, 먼지를 씌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갖가지 전파를 맞는 등 등 험난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각 실험마다 시간과 횟수는 그것을 실제로 쓰는 상황을 가정하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지만, 험난한 고난의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씽크패드는 충분히 존재 가치를 설명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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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야마토 연구소가 처음부터 이 실험을 해왔던 것은 아니다. 25년 전과 지금 씽크패드의 실험 환경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더 안전하고 튼튼한 씽크패드를 원하는 이용자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긴 시간 노력의 결과들이 야마토 연구소의 200여 가지 실험 속에 녹여 왔기 때문이다. 이 말은 더 완벽한 노트북을 내놓기 위한 실험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트북을 쓰는 이용자의 습관이 살짝 바뀌어도 씽크패드가 치러야 할 시험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이 연구소의 실험들이 이미 말해주고 있으니까.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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