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텍스 2013에서 본 PC, 그 보이지 않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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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윈도우8 노트북의 방향은 정해졌다. 터치스크린이 있는 노트북이다. 없는 노트북을 사면 어쩌냐고? 선택은 자유다.”


확실히 그랬다. 윈도8이 발표되기에 앞서 열렸던 지난 해 컴퓨텍스를 둘러보고 썼던 글의 마지막에 남긴 말이었지만,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번 컴퓨텍스에서 이를 재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이 말은 단순히 터치를 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추가된 PC를 가리킨 것이지만, 이번 컴퓨텍스에선 PC 세계를 뒤덮은 보이지 않는 위험의 의미로 재해석해야 할 것 같다. 터치를 위해 이전의 경험을 맹목적으로 말살한 PC는 더 큰 위험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터치로 쉽게 다룰 수 있는 운영체제인 윈도8을 내놓았고, 인텔도 윈도 최적화를 위해 터치가 들어간 PC의 기준을 세우는 등 PC 업계의 공룡들은 적극적으로 ‘터치’를 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큰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 단지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PC를 만들기 위해 운영체제의 모습을 바꾸고, 하드웨어를 보강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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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수스 트랜스포머 트리오. 두 개의 프로세서, 두 개의 운영체제. 이런 제품은 정말 필요한가?
문제는 터치를 도입하면서 종전의 PC 환경을 개선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프트웨어를 마우스로 다루던 경험을 살리는 것보다 이를 모두 무시하고 터치만을 위해서 새 환경을 꾸미고 있으며, PC의 한 형태로서 존재해 왔던 태블릿과 결합하면서 이를 진화의 메시지로 포장하는데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것도 종전 PC가 갖고 있던 가치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현 시점에서 이용자가 솔깃할 만한 재료만 넣어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문제로 지적하는 이유는 ‘왜 PC를 써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이용자에게 내놓을 수 있던 확실한 답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는 탓이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였고, 태블릿은 컨텐츠 소비를 위한 장치였으며, PC는 미디어 생산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라는 개념은 남아 있었다. 생산과 업무의 효율을 위해서 더 좋은 성능을 갖고 있으며 작업하기 편하고 더 가벼운 PC를 이용자가 사야할 명분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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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은 크기의 태블릿도 PC가 했던 일들을 할 수 있다면 왜 PC를 사야 할까?
그런데 지금 각 장치가 가진 고유의 영역이 희석되기 시작하고 각 장치가 가진 경계가 붕괴되면서 PC를 사야할 명분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태블릿 만큼 커져 미디어 소비 능력을 강화했고, 휴대성을 강화한 태블릿은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더했으며, 큰 화면의 태블릿은 노트북의 경계를 침범해 생산성까지 갖춰가고 있다. 특히 노트북을 통해 웹에서 했던 많은 작업이나 미디어 처리 작업들은 이제 연결성을 기반으로 클라우드를 통해 처리하는 큰 화면의 태블릿에 빼앗기고 있다.


모바일 장치가 점점 성능이 좋아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늘고 있는 것과 반대로 PC는 더 모바일화되려 하고 있고 더 쉬운 인터페이스를 채택했다. 터치에 최적화한 윈도8은 분명 터치에 익숙해진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운영체제고 쉽게 조작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런 질문을 남긴다. ‘고작 이런 조작의 경험을 얻기 위해 굳이 윈도를 써야만 하는가?’ 또한 인텔은 노트북을 상황에 따라 태블릿으로도 쓸 수 있는 2-IN-1 장치라는 메시지를 기조연설에서 내보냈다. 그런 인텔에게도 역시 이런 질문을 남긴다. ‘더 값싼 태블릿을 놔두고 굳이 더 비싼 고성능의 변신 노트북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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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도 되고 태블릿도 되는 2-IN-1 제품들
MS와 인텔은 PC 영역에서 같은 관점을 지녔으면서도 사업적으로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두 회사가 공통적으로 놓치고 있는 한 가지는 PC만의 고유 영역에서 해야 했던 일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고성능의 비싼 PC를 써야 하고 윈도가 얼마나 강력한 사용성을 유지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PC에서만 가능했던 작업들을 다른 시장에 빼앗기고 있는데, PC에서만 가능한 작업들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컴퓨텍스의 PC들은 PC를 사야할 명분을 잃고 있었다. 분명 컴퓨텍스의 PC, 특히 노트북은 대부분 가볍고 날렵해진 만듦새를 지니고 있었으며 다른 태블릿을 비교할 만한 기능과 터치를 통한 편의성까지 갖췄다. 배터리 성능도 좋아졌고, 화면마저 뛰어나다. 그러나 노트북 한 대만 사면 태블릿까지 다 쓸 수 있다는 주장에서 찾을 수 없는 하나는, 값싼 태블릿을 놔두고 이 비싼 노트북을 사야 할 이유다. 모바일 장치처럼 가볍게 들고다니며 손쉽게 다룰 수 있지만, 더 값싼 모바일 장치를 사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비싼 노트북 위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품질은 매우 뛰어나지만 동작은 비효율적이며 쇼맨십이 넘치는 터치 노트북도 적지 않았고, 한결 같이 이 PC를 사야할 답은 담고 있지 않았다. 더 편하게 다루라고 터치를 넣었으나 그 편의성을 뒷받침해야 할 강력한 작업들에 대한 이야기, 즉 PC를 사야할 명분이 없어지는데 왜 PC를 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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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를 사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PC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PC가 PC로서 가치를 잃어가는 상황이라면 PC는 더 이상 존재 자체의 의미를 잃게 된다. PC가 태블릿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PC로써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본질을 찾지 못하는 한 MS나 인텔을 비롯한 PC 업계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컴퓨텍스는 화려했지만, 이번 만큼 보이지 않는 위험을 크게 느낀 것도 처음인 듯하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2 Comments

  1. 지나가던 중딩
    2013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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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생각에는 인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수 없어요.

    • 칫솔
      2013년 6월 17일
      Reply

      물론 PC로 봐야 하는 인강도 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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