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먹은 텍스트큐브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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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는 한 대부분은 티스토리 블로그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블로그는 티스토리가 아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립형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올해로 10년 째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내가 독립형 블로그를 운영해온 세월 만큼이나 함께 나이를 먹은 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도구, 블로그 툴인 텍스트큐브를 만든 TNF도 오늘로 열번째 생일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물론 태터툴즈 시절까지 합치면 한국산 블로그 도구의 역사는 좀더 오래 전의 일이지만 2006년 4월 14일, 지금의 텍스트큐브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이날을 잠정적인 생일로 지정하고 있는 듯하다.

텍스트큐브 커뮤니티인 TNF와 그 실행 조직인 니들웍스는 지난 10년 동안 텍스트큐브를 돌봐왔다. 물론 지금의 TNF는 10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초라하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TNF를 통해 텍스트큐브를 내놨을 때의 그 기치를 따르는 이용자가 줄어든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프로그램이 아닌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사명을 선언한 데는 수많은 저작물이 서비스에 예속하지 않고 저작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함이었지만, 그 바람을 이룰 만한 생태계는 꾸며지지 않았다. 텍스트큐브 기반의 서비스는 늘지 않았고, 데이터를 이동시켜 저작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환경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태터툴즈에서 파생해 진화하던 티스토리와 별개로 만들어진 텍스트큐브닷컴의 가능성은 구글에 피인수된 지 1년 만에 문을 닫으면서 설치형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가는 상황이 됐고, 이용자들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텍스트큐브는 답답한 상황일지라도 나는 가까이 지내는 몇 명의 블로거들과 함께설치형 텍스트큐브를 써오고 있다. 텍스트큐브의 맥목적인 신봉자는 아니지만, 텍스트큐브 같은 설치형 블로그를 쓰기 위한 서버를 구입해 몇년 동안 지인들과 공유했다. 우리는 이것을 ‘칫솔서버’라 불렀다. 칫솔서버를 운영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텍스트큐브가 저작자 스스로 저작물의 권리를 지키길 바랐던 것처럼 나 역시 블로거들이 서비스에 의존적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가지기를 바라서다. 서비스에 의존하면 관리와 비용의 측면은 유리해도 컨텐츠의 권리가 서비스에 의해 차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명예훼손으로 고발되어 블라인드 처리되는 수많은 블로거의 글을 볼 때마다 더욱 독립성을 유지해야만 하는 자극을 받곤 했는데, 사실상 탈출로가 없는 상황에 몰리지 않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텍스트큐브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있었다. 독립적인 지위를 원하는 블로거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한 곳에 뭉쳐 있고 기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들은 떠나지 않을 거란 확신은 있었다. 애석하게도 몇 사람은 떠났지만, 아직 남은 이들은 있다는 점에서 나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텍스트큐브를 버리고 다른 저작도구로 갈아타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을 적지 않게 했다. 실제 지난 해는 텍스트큐브에서 워드프레스로 갈아타기 위한 준비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무버블 타입에서 텍스트큐브로 갈아탔던 그 이유를 떠올렸을 때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텍스트큐브가 좀더 한국적인 도구였고, 여전히 다른 도구에 비하면 익숙했던 것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발전 없는 텍스트큐브를 고집할 수록 과거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도 겹쳐졌다. 솔직히 내 머릿 속은 지금도 이것을 버릴지 말지를 두고 여전히 갈등  중이다.

이 갈등은 방향성을 잃은 텍스트큐브에 있다. 최근 들어 활발한 버전 업을 통해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지만, 이것은 2년 가까이 업데이트를 하지 못한 자기 반성에 가깝다. 문제는 기존 버전의 업데이트가 아니다. TNF가 10년 전 텍스트큐브를 내놓을 때 저작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던 그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기엔 너무 구닥다리가 된 것이 현실이다. 블로거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아주 좁은 옵션으로만 남아 있는, 그나마도 워드프레스에 대부분을 빼앗기는 현실을 텍스트큐브와 TNF는 냉정하게 바라봤으면 한다.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텍스트큐브가 가진 가치는 중요하지만, 저작자들이 쓰지 않는 도구라면 의미 있는가?” 아마도 오늘 날까지 텍스트큐브를 위해 애써온 이들에게 이 질문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6 Comments

  1. 2015년 4월 14일
    Reply

    올 해가 만 10년이 아니고 10년쨰 되는 해 아니던가요?

    • 칫솔
      2015년 4월 14일
      Reply

      그렇군요. 올해를 채우진 않았으니… 그 부분 살짝 가렸습니다. 고맙습니다.

  2. 2015년 11월 7일
    Reply

    원래 티스토리로 불로그 시작하다가 워드프레스 무턱대고 옮겨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처한 한 블로거입니다.
    워드프레스 생각보다 관리 복잡하고 저랑 스타일이 안 맞는 것 같아 기존에 쓰던 티스토리와 비슷한 텍스트 큐브로 사이트 한번 더 개편하려고 하는데, 기본적인 기술 지원 및 업데이트 잘 되는 편인다요?

    • 칫솔
      2015년 11월 9일
      Reply

      잘 되는 편이라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이용자들이 쓰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ㅜ.ㅜ 저도 다른 툴로 이전을 심히 고려 중입니다.

  3. 2020년 3월 23일
    Reply

    아이공 카피를 보니 이전하셨군요.
    오늘 최신글이라 와봤는데 몇년전 글이였네요 ㅎ;
    아무튼간에 저도 텍스트큐브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는지라 검색하다 우연히 글 보고 갑니다.

    • chitsol
      2020년 3월 23일
      Reply

      안타깝게도 보안 문제로 인해 텍스트큐브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최신글로 나타나는 건 업데이트된 워드프레스와 스킨의 문제라 수정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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