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폰, 아마존은 가깝고 스마트폰은 멀다

아마존 파이어폰 리뷰, amazon Fire Phone Review

지난 해 말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지를 만한 게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그 순간 아마존이 파이어폰을 풀었다. 449달러에 팔던 것을 199달러 짜리 급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할인폭이 크긴 했으나 결코 값싸다 말할 수 없던 파이어폰을 주저하지 않고 질렀다. 99달러 짜리 아마존 프라임 1년 이용권을 번들로 포함한 까닭이다. 단 하나의 번들일 뿐이지만, 그 가치는 상당하다. 아마존에서 주문한 상품을 이틀 안에 무료 배송하고,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 일부 컨텐츠를 추가 결제 없이 볼 수 있는 프라임 이용권으로 얻는 이득은 의외로 크다. 결국 프라임 이용권을 제외한 제품가는 100달러에 불과한 셈인 것이다.

그러나 1년간 아마존 프라임을 이용할 수 있는 파이어폰을 싸게 산 기쁨은 정말 잠시였을 뿐, 우리나라로 가져온 그 다음의 일들이 걱정이었다. 비록 언락폰(특정 통신 업체만 개통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긴 했지만, 다른 아마존 제품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한 스마트폰이어서다. 딱 하나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한글을 읽고 입력하는 문제 뿐. 이미 킨들 HDX를 쓰면서 아마존이 한글을 출력하고 입력할 수 있는 준비를 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파이어폰도 그 부분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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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카메라가 기괴하게 바라보는 앞쪽 모습

그래도 우리나라에 잘 적응할 지에 몰랐던 마음을 졸였던 처음에 비하면 파이어폰과 거의 두 달을 보낸 지금 별 어려움은 없다는 사실에 한숨을 돌렸다. 우리나라 통신 환경을 고려한 것은 아닐지라도 음성, 데이터는 별 걱정 없이 쓸 수 있다. 파이어폰과 맞아 떨어지는 주파수 대역이 제법 있어서다. 프라임 컨텐츠도 파이어폰을 지원하는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로 우회해 손 안에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파이어폰과 프라임 혜택을 이용하는 걸림돌은 거의 없는 셈이다. 더불어 변칙적인 방법을 이용하면 구글 플레이를 깔아 아마존 앱스토어에 없는 앱도 내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 지도는 우리나라 상황이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대표적인 것이어서 정말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으로써 파이어폰의 매력이 높다고 말하긴 어렵다. 본새가 좋은 것은 아니여도 형편 없는 수준은 아니고 성능, 기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빼어난 몸매는 아니어도 깨끗한 마감에 1280×720의 화면을 빼면 퀄컴 스냅드래곤 801, 2GB 램, 32GB 저장 공간 등 부품들, 여기에 프라임 번들을 포함한 값을 떠올렸을 때 손해본 기분은 들지 않는다. 조악한 내장 스피커, 크기에 비해 의외로 묵직한 느낌이 아니라도 단지 스마트폰으로써 제대로 쓰기 어려운 이유들이 더 많을 뿐이다. 단순히 메일이나 연락처, 전화를 걸고 받는 문제가 아니다. 파이어폰은 아마존, 어쩌면 제프 베조스만 편하게 생각한 제품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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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있는 음량 조절과 반딧불이 버튼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AOSP) 기반의 파이어 OS(Fire OS)지만, 안드로이드 색깔은 진하지 않다. 물론 롤리팝에 얹어진 매터리얼 디자인 같은 건 전혀 없다. 그 골격 위에 올린 런처의 형태가 스마트폰과 어울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보다 앞서 즐긴 아마존의 컨텐츠와 앱의 작업 전환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설계한 탓이다. 사실 이 런처는 넓은 화면의 태블릿에서는 효과적인 반면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에선 이용자가 원하는 작업을 곧바로 찾기 힘들다. 배경 화면도 바꿀 수 없고, 아이콘이나 위젯도 마음대로 넣고 뺄 수 없다. 이용자가 원하는 작업의 단계를 줄이려는 것보다 그저 화려하고 쓸모 없게 여겨지는 것들로 가득 채운 홈 화면을 보면서 노력을 느낄 수 없다. 하드웨어 버튼, 소프트웨어 버튼 없이 이전 화면으로 돌아가기 위해 화면 맨 아래에서 위로 손가락을 쓸어 올리는 제스처의 적응은 어렵지 않지만, 두어번 오동작을 경험하고 나면 쓰기 싫은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다른 스마트폰에서 쉽고 편했던 일들이 파이어폰에선 불편하다. 사진을 무제한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정작 다양한 파일을 넣어두고 작업할 수 있는 기본 서비스의 질은 그리 높진 않다. 인스타그램, 에버노트, 박스 등 수많은 서비스가 파이어폰에서 작동하지만, 이러한 서드파티 서비스가 아니라 메일이나 주소록, 일정을 비롯해 기본 클라우드 환경까지 다른 스마트폰 환경과 비교해 거리감을 너무 쉽게 느낀다. 수많은 이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환경을 파이어폰으로 가져오는 것은 어렵진 않은 데도 이를 파이어폰에서 열어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그런 환경을 꾸미는 것에 서툴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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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폰의 홈 화면. 이용자가 편집할 수 없는 구조다

그나마 파이어폰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빠르게 튕길 때 나타나는 아마존 메뉴와 정보들, 그리고 화면을 살짝 기울일 때 나타나는 화면 상단의 알림 바와 추가 정보들은 쓸만하다. 화면에 불필요한 정보를 없앴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보여주고, 아마존의 컨텐츠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이 구조 만큼은 괜찮아 보인다. 이용자의 눈앞에 있는 실제 상품이나 보고 듣는 컨텐츠를 반딧불이(Firefly) 버튼을 눌러 분석하고 아마존에서 찾아내 곧바로 가격을 비교하는 기능은 우리나라에서 쓸모 없어도 파이어폰의 개성적 기능으로 괜찮아 보인다. 이용자에게 편한 홈 화면과 아마존의 메뉴를 버무리고 이용자의 환경을 연결할 수 있는 기본만 갖췄어도 파이어폰은 이보다 덜 비판적이었을 게다.

얼굴 인식을 하기 위해 넣었다는 다섯 개의 전면 카메라는 원래 쓸모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쓸모 있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그 무엇에 너무 소홀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 놓은 채 얼굴만 움직여도 화면은 따라 움직이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다. 제프 베조스가 파이어폰의 특색을 강화하기 위해 이 기능을 매우 좋아했다는 뒷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작 그는 지금 이 기능을 어디에 쓰고 있을 지 매우 궁금하다. 잠금 화면이나 지도에서 보여준 것처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컨텐츠를 내놓지 않는 이상 이것은 파이어폰의 가격만 올린 나쁜 선택이라는 비판 외에는 달리 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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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로 받은 이미지를 자체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없다

파이어폰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주목해왔던 것중 하나다. 아마존의 막강한 컨텐츠를 내세웠을 때 스마트폰 시장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궁금했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파이어폰은 이들의 바람대로 컨텐츠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기능을 넣긴 했으나 스마트폰을 쓰는 이용자 경험이라는 핵심을 놓쳤다. 아마존의 연결에 대한 바람을 제대로 해낸 반면, 정작 스마트폰을 쓰는 이용자의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다. 연결의 중심에 이용자 대신 아마존만 보였던 파이어폰. 2세대는 이용자가 그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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