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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이 - 칫솔(CHiTSOL, PHILSIK CHOI) | 인사이드 디지털/컴퓨터 역사 l 2016/03/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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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세에 별세한 인텔 전 CEO 앤디 그로브(이미지 출처 : intel.com)

'인텔의 미래를 막은 인물', 이 한마디가 가리키는 단 한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앤디 그로브(Andy Grove, 또는 Andrew S. Grove)다.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인텔을 세운 이후 세번째의 입사 번호를 받은 앤디 그로브는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인텔의 제3대 CEO로 재직하는 동안 인텔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만약 그가 인텔의 메모리 사업을 지속했다면, 만약 그가 조직 내에서 마이크로 아키텍처 전략의 혼란을 없애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프로세서의 브랜드 전략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인텔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회사를 운영한 CEO가 아니라,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하지 못했던 인텔의 미래를 바꾼 또 한 명의 창업가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까지 이어진 인텔의 기업 철학과 조직 문화를 의 유산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의 유산으로 남긴 그 시절의 일들을 돌아본다.

종합 반도체 회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으로…

앤디 그로브 시절의 인텔은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는다. 종합 반도체 회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으로 변화한 것이다. 인텔은 원래 마이크로프로세서 뿐만 아니라 메모리를 비롯해 EEPROM까지 만들던 종합 반도체 기업이었다. 하지만 인텔은 DRAM 사업 부문에서 경쟁 업체들과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시장 점유율이 3%까지 떨어졌다. 인텔은 적자를 낳는 원흉이 된 DRAM사업을 퇴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때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해야 하며 DRAM 기술 부서를 마이크로프로세서 그룹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앤디 그로브였다. 1985년 고든 무어가 CEO에서 퇴임한 뒤 앤디 그로브는 사실상 인텔의 모든 사업을 관장하게 된다.

1985년 인텔 최고 경영진은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회사의 새로운 핵심 사업이 될 것이라고 인정하고, 뒤이어 CEO로 취임한 앤디 그로브는 취임 이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모든 전략을 실행한다. DRAM은 퇴출했지만, 미세 기술 같은 기술 혁신을 주도한 혁신 그룹을 386 프로세서 부문에 재배치했다. 80386은 앤디 그로브 공식 취임 이전인 1985년에 출시된 프로세서지만, DRAM 부서의 미세 공정을 적용한 1미크론 공정의 80386은 1988년에 생산됐다. 여기에 X86 중심의 프로세서 전략을 조직이 이해하도록 만들고, 초점을 잃어가던 기술팀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자체 생산을 통한 단일 공급 전략을 추진하는 한편 i486과 같은 프로세서 개발, 최종 이용자에 대한 마케팅 기존 프로세서 기업들이 하지 않았던 일들을 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텔이라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사의 이미지는 앤디 그로브가 CEO 시절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인텔을 기억하게 만든 인사이드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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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인사이드 로고(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인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마케팅 프로그램이다. 1990년 당시 앤디 그로브의 기술 보조역이었던 데니스 카터가 제안했던 캠페인으로 최종 소비자에게 인텔 프로세서가 들어 있는 PC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나오기 이전 인텔은 소비자에게 그저 엔지니어 집단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 캠페인 이후 소비자는 인텔보다 인텔 프로세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인텔은 이 캠페인을 위하 3년 동안 무려 5억 달러를 쏟아 부었는데, 당시 인텔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경쟁사인 AMD와 사이릭스보다 기술력이 월등하다는 인식을 쌓는데 성공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물론 모든 PC 제조사가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 집단에 인텔의 이미지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은 틀림 없다.

독점 공급과 지적 재산권의 강화

인텔은 1980년대 중후반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는 AMD나 사이릭스 등 여러 경쟁자가 존재했다. 당시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한 뒤 이러한 경쟁자들을 통해 2차 공급자를 통해 생산하던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설계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인텔이 라이선스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2차 공급자들은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프로세서를 만들어 팔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충분한 물량이 공급되지 않았다. 또한 포괄적 라이선스를 맺은 AMD는 인텔의 80286 보조칩을 내놓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설계 비용 조차 회수가 어렵게 되자 결국 인텔은 386부터 단일 공급업자 전략을 채택한다.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고 충분한 공급을 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결국 인텔의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가져다 썼던 여러 2차 공급 업자와 지적 재산권 분쟁을 야기한다. NEC와 소송했고 AMD의 법정 다툼도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다. 이에 대비한 법무팀 숫자를 늘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인텔이 386을 4년 동안 독점 공급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한 계기로 작용했다. 경쟁 업체들이 호환 제품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그 사이 인텔은 서버 시장까지 감안한 i486을 개발했고 AMD는 그제서야 386 호환 프로세서를 출시했다. AMD의 숨가쁜 추격이 시작되었으나 x86 시장의 주도권은 1990년대를 전후해 인텔로 넘어가고 있었다.

CEO 재직 성적표

앤디 그로브가 인텔 CEO로 취임할 즈음 매출은 19억 달러, 순이익이 2억4천800만 달러였다. 그가 퇴임하던 1998년의 인텔 매출은 251억 달러, 순이익은 69억 달러로 늘어났다.  매출은 29.4%, 순익은 39.5%씩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이때 인텔은 세계에서 6번째 수익성이 높은 기업이 됐다. 대부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판매를 기반으로 한 매출과 이익이었지만, 당시의 변화를 예측하고 전략을 실행하지 못했다면 얻어낼 수 없는 결과였다.

조직의 문화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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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전 CEO 앤디 그로브(이미지 출처 : intel.com)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장기적 전략 수립 절차부터 바꾼다. 그동안 최고 경영진의 전략 의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중간 경영진들의 전략 과정을 수립하는 절차를 없앤 것이다. 앤디 그로브는 중간 경영자들이 전략을 추진할 직위나 정보력에 의문을 표하면서 각 부서의 경영진들이 3~5년 동안 인텔이 직면할 기회와 위협을 논의할 수 있는 토론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장기 전략을 도출하도록 했다. 물론 이 지적 토론의 중심에 앤디 그로브가 있었고 그는 토론 내내 수많은 질문과 답변,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통해 인텔의 차별화를 가능케 한 것들을 개념화하고 전략 명제를 도출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앤디 그로브가 애초에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이 같은 지적 토론으로 장기 전략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많이 질문하면서 핵심을 짚는 앤디 그로브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성과 측정과 보상을 연계해 실행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앤디 그로브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 부서의 임원들을 경영진으로 승격시키고, 경영자들의 상여금과 연계해 마이크로프로세서 전략의 실행력을 높이도록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에게 스톡 옵션을 부여했다.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지배력 때문에 인텔의 시장 가치가 급등한 터라 스톡 옵션은 조직원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인텔에서 일하도록 동기를 끌어내도록 했다. 물론 오늘날 바라보는 인텔이 앤디 그로브 때의 인텔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인텔이 20여년 동안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이러한 자부심을 갖게 만든 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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