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 헤드셋이 앞당길 메타워크 시대

애플이 비전 프로를 발표한 덕분에 공간 컴퓨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반갑지만, 그렇다고 비전 프로를 ‘메타버스’와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다각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메타버스의 어떤 정의 안에 애플 비전 프로를 구겨 넣을 수는 있지만, 애플와 팀쿡은 애플 비전 프로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적용을 극도로 꺼려왔기 때문이다.

애플이 메타버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 세계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그들의 비즈니스와 충돌을 일으키는 요소를 선제적으로 배제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공간 컴퓨팅을 위한 비전 프로가 가진 속성을 볼 때 그 요소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실제 공간에서 가상적 객체를 다룬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개념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애플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간형 장치를 내놓는 제조사 관점에선 넓은 의미의 메타버스를 대신할 다른 용어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비전 프로는 물론 그보다 먼저 대중을 만났거나 훗날 만나게 될 수많은 VR이나 AR 헤드셋, 그밖의 공간 디스플레이 장치 등 공간 컴퓨팅을 위한 장치의 활용도를 고려한 용어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마 XR 헤드셋을 통해 공간 컴퓨팅을 경험하는 것을 일컬어야 할 때 후보로 쓸만한 여러 용어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업무용 영역에선 메타워크(Metawork)라는 용어가 쓰일지 모른다. 메타워크는 공간 컴퓨팅을 통한 실제 또는 가상의 공간에서 다양한 업무용 도구를 활용하는 한편 협업 도구를 활용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록 메타버스라고 분류하지 않더라도 디지털로 해석되는 공간을 활용하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이용한다면 메타워크로 분류할 수 있다.

메타워크가 작동하려면 기본적으로 공간을 더 쉽게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는 컴퓨팅 하드웨어와 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 그리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데 필요한 아바타 같은 표현 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도구 등 필요하다. 세 요소를 다 담아야만 메타워크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공간 컴퓨팅을 활용한 협업에서 요구될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XR 헤드셋은 실제든 가상이든 공간을 활용한 컴퓨팅을 위해 꼭 필요한 하드웨어다.

물론 세 요소 중 가장 핵심은 역시 공간 컴퓨팅을 위한 XR 헤드셋이다. XR 헤드셋은 실제 공간이나 가상 공간을 분석하거나 새롭게 구축해 공간 컴퓨팅에 필요한 ‘디지털 공간’을 구축하고 표시한다. 가상 현실 헤드셋은 물리 현실을 뛰어 넘는 가상의 공간을 구축하고, 카메라를 통한 패스스루형 혼합 현실 헤드셋은 실제 공간을 디지털로 재구축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메타워크를 위한 업무용 도구는 기존 데스크톱에서 쓰던 업무용 도구를 배제하지 않는다. 공간형 컴퓨팅의 업무용 도구가 반드시 입체적으로 봐야 하는 3D 디자인이나 컴퓨터 설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공간에 표시하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작업할 수 있는 모든 업무 도구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업무용 도구는 다른 컴퓨팅 장치나 클라우드에서 실행돼 XR 헤드셋으로 스트리밍할 수도 있고, 헤드셋 자체에서 실행될 수도 있다.

소통을 위한 도구는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에게 문자나 메신저, 화상 회의를 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역시 공간을 이용해야 하는 점이다. 즉, 공간 안에 표시할 수 있는 3D 형태의 작업자가 필요하고, 이러한 3D 작업자들을 보며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소통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공간 컴퓨팅 작업자는 본인을 비추는 카메라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자를 표현하는 3D 아바타를 미리 만들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또는 이들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통신 체계도 준비돼야 한다.

애플은 비전 프로로 공간을 활용하면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이러한 메타워크 요소들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이런 기준을 갖춘 XR 헤드셋과 업무용 프로그램, 소통 도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이를 도입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관점에 따라서 조금 모자란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작업자들이 일정 시간 공간 기반 원격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현대 자동차가 VR과 클라우드를 이용해 세계 여러 국가의 디자이너와 원격으로 가상의 한 공간에 모여 신차 디자인을 검토하는 데 이러한 것이 메타워크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엔비디아 홀로데크 같은 디자인 분야 전문 도구가 아닌 일상적인 생산성 업무 관점의 메타워크의 대중화는 XR 헤드셋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XR 헤드셋에 따라 모든 환경을 자체적으로 갖춘 것도 있는 반면, 기존 컴퓨팅 플랫폼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큰 관심을 모은 애플 비전 프로를 보자.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을 위한 컴퓨팅 장치면서 아이패드용 앱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업무용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 디지털 페르소나라는 3D 아바타를 생성하고 관리할 수 있으면서 페이스타임을 통해 다른 상대와 대화할 수도 있다. 다른 디지털 페르소나를 평면 형태가 아닌 입체 형태로 한 공간에 둘 수 있는 기능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부분을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멀리 떨어진 이들이 아바타의 모습으로 회의 공간에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도록 만든 메타의 호라이든 워크룸.

애플에 앞서 메타버스 환경에 몰입해 온 메타도 이러한 환경을 잘 갖춘 곳 중 하나다. VR 헤드셋인 퀘스트2와 혼합 현실 헤드셋인 퀘스트 프로 같은 공간 컴퓨팅 장치를 대중적으로 보급하고 있고, 이용자가 가상 공간에 업무 공간을 구축할 수 있는 호라이즌 워크룸을 서비스하고 있다. 호라이즌 워크룸은 회의 공간을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타의 아바타 시스템에서 만든 아바타를 한 공간에 함께 표시할 수 있어 멀리 떨어진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공간에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손을 추적하고, 입모양을 묘사하는 한편, 퀘스트 프로를 이용하면 눈과 표정까지 표현한다.

또한 디자인이나 설계, 각종 교육 훈련을 위한 생산성 앱도 스토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헤드셋 자체에서 실행할 수 있는 데스크톱용 업무 도구가 거의 없는 점이 약점이지만, 호라이즌 워크룸에서 PC를 원격으로 연결하거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올해 안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마이크로소프트 365와 윈도 365 등 업무용 클라우드 서비스가 연동되면 퀘스트를 통한 업무 환경도 크게 개선될 듯하다.

메타, 애플과 더불어 최근 흥미로운 시도 중 하나는 업무용 공간 앱인 이머스드(Immersed)가 2024년에 바이저(Viser)라 부르는 XR 헤드셋을 출시하면서 메타워크 분야에 뛰어든다는 점이다. 바이저 역시 공간 컴퓨팅을 위한 XR 헤드셋으로 혼합 현실 기능을 갖추고 있고, 눈당 4K 디스플레이와 손추적 등 기능을 갖추고 있다. 단지, 바이저는 자체 실행 가능한 앱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XR 헤드셋과 다르게 PC의 디스플레이 기능을 확장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머스드 앱도 윈도 PC와 맥에서 다중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가상 디스플레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최대한 PC의 성능을 활용해 메타워크를 구현할 가능성이 높다.

XR 헤드셋 바이저를 통해 가상과 실제 공간에서 다중 스크린으로 업무 생산성을 높이려는 이머스드.

또한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구글과 삼성의 ‘프로젝트 무한’도 이러한 메타워크 시대를 겨냥하는 XR 헤드셋이 될 가능성이 높다. XR 헤드셋은 삼성이 만들고, 안드로이드 기반 마이크로XR 및 서비스는 구글이 만들고 있는데, 앱 생태계 구축이 늦은 만큼 좀더 효율적인 활용처를 찾는다면 당연히 구글의 업무용 클라우드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구글 워크플레이스를 XR 환경으로 옮기면서 기업용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공간 컴퓨팅을 위한 XR 헤드셋에서 업무를 하는 메타워크 환경의 형성은 메타버스 관점에서 몇 가지 이점이 있다. 먼저 공간에 대해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가 반드시 공간 기반의 세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감각까지 디지털 전환된 세상이라는 점에서 물리든 가상이든 공간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데, 메타워크는 그 어려움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구글 워크 플레이스와 마이크로소프트 365 등 클라우드 서비스가 몰입형 하드웨어와 결합하면 거대한 메타워크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이미지 출처 : 베인&컴퍼니)

또한 메타버스 관련 비즈니스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 비즈니스는 대부분 가상이나 증강/혼합 현실에서 즐기는 게임이나 3D 소셜 미디어 및 웹3와 연계한 가상 경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메타워크는 그보다 일상적으로 컴퓨팅 환경을 소비하는 업무 영역에서 디지털화된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인위적인 메타버스를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메타워크는 그동안 공간에 적응하는 방법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덜어내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메타워크는 하나의 방향에 지나지 않고 이를 온전히 메타버스로 치환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워크는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 적지 않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은 틀림 없고, 이러한 일들은 앞으로 출시될 XR 헤드셋들을 통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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