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퀘스트3를 퀘스트 프로처럼 만들다

퀘스트3를 처음 착용했을 때 어쩌면 장시간 쓰고 작업하는 게 힘들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몰입도를 높이려 퀘스트2와 같은 폐쇄형 안면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썼지만, 시야를 좁게 만들고 광대를 누르는 압박감에 열기와 습기를 빼내지 못하는 단점이 훨씬 크게 다가온 탓이다. 이 모든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퀘스트 프로. 양옆과 하단을 개방해 탁 트인 시야와 광대의 압박을 없애고 이마를 지지하도록 설계한 거치 방식에 적응을 끝낸 터라 퀘스트3는 너무도 불편한 기기가 된 것이다. 특히 퀘스트 프로의 개방형 인터페이스 덕분에 헤드셋을 쓴 채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경험까지 각인된 터라 퀘스트3의 폐쇄형 환경을 환영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퀘스트3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퀘스트3는 퀘스트 프로보다 각도당 픽셀이 더 높다. 때문에 PC를 이용하는 원격 컴퓨팅 화면 속 글씨를 봐야 하는 메타 워크-가상 공간에서 컴퓨팅 기반 업무 처리-환경에선 퀘스트3의 광학 체계가 더 유리하다. 또한 혼합 현실을 위한 패스스루 품질도 퀘스트 프로보다 나은 터라 가상 공간에서 일정 부분만 패스스루 모드로 실제 키보드 또는 책상을 볼 수 있게 만든 이머스드 기반 작업에서 퀘스트3가 좀더 강점을 보인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때문에 퀘스트3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퀘스트 프로와 같은 유형으로 바꾸기로 했다. 즉, 퀘스트3의 안면 인터페이스를 제거하고, 퀘스트 프로처럼 양옆과 하단을 모두 개방한 이마 거치 형태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히 이마에 대는 것이 아니라 퀘스트 프로처럼 이마에 걸쳐 압박감을 최소화하고 보기에도 좋은 형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왼쪽은 퀘스트 프로 공식 이마 쿠션, 오른쪽은 퀘스트 프로 호환 서드파티 이마 쿠션

다만 이 작업을 하기 전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먼저 엘리트 스트랩 같은 단단한 헤드 스트랩은 꼭 준비해야 한다. 신축성을 갖고 있는 기본 스트랩은 얼굴 앞쪽을 잡아 당기는 성질이 강해 이마에 살짝 올리듯이 거치하는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와 궁합을 맞추기 힘들다. 때문에 되도록 이런 성질이 없는 엘리트 스트랩이나 서드파티 제조사에서 퀘스트 호환용으로 만든 단단한 헤드 스트랩을 써야 한다.

더불어 퀘스트 프로용 이마 쿠션 지지대도 준비해야 한다. 이미 보유 중인 퀘스트 프로용 이마 지지대가 있었지만, 퀘스트 프로와 퀘스트3 모두 활용할 심산이라 별도로 이마 쿠션을 더 준비했다. 이마 쿠션 지지대는 메타 홈페이지 내 상점의 퀘스트 프로 액세서리에서 찾거나 아마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호환 부품을 구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작업을 끝냈을 때 결론은 값비싼 정품 쿠션 지지대보다 값싼 호환 쿠션이 더 나았다. 3D 프린터로 출력한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의 연결 부분이 정품보다 호환품에 더 잘 들어맞은 때문이다. 참고로 호환품의 쿠션이 일반 천 재질이므로 퀘스트 프로용 실리콘 커버도 함께 쓰는 것이 위생적으로도 더 바람직할 듯 하다.

두 가지 준비물과 함께 맞춤형 설계된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 출력을 위한 3D 프린터를 들였다. 베드 크기는 180x180mm로 옆 나라 쇼핑몰에서 가장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송장 기재 오류로 국경을 넘는데 시간은 좀 걸리긴 했으나 3주 만에 무사히 도착한 3D 프린터를 설치한 뒤 이마 지지대가 있는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를 뽑기 시작했다.

여러 모델 데이터를 조합하고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뽑은 안면 지지대의 대부분은 실패라 할 수도 없고, 성공이라 말하기도 모호한 결과만 남겼다. 그럴 싸하게 만들었다 싶으면 각도가 안맞고, 때론 지지대가 약해 탈조-원래 출력해야 할 형태를 벗어나는 현상-를 일으키기도 했다.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필라멘트를 소비하면서 무려 20여 개 넘는 실험체를 뽑은 뒤에야 최종 모델을 완성했다.

완성된 모델은 플루이드 퀘스트 프로 스타일 안면 인터페이스와 메타 퀘스트3 페이스 커버 리믹스를 조합이었다.

퀘스트 프로 스타일 플루이드 안면 인터페이스 | https://www.thingiverse.com/thing:6308607
퀘스트 3 페이스 커버 리믹스 | https://www.thingiverse.com/thing:6310327

플루이드의 퀘스트3 안면 스타일은 퀘스트 프로 이마 쿠션 지지대를 위한 고리가 있고 이마를 대는 각도도 거의 비슷하다. 때문에 이 모델 데이터를 출력한 즉시 곧바로 퀘스트 프로 또는 호환 이마 지지대를 꽂기만 하면 거의 퀘스트 프로와 유사한 형태로 완성할 수 있었다. 다만 퀘스트3 무게로 인해 안면 인터페이스가 위로 살짝 들릴 가능성이 있어 페이스 커버 리믹스처럼 위쪽에 고리 형태로 디자인을 조금 수정했다.

이 두 가지를 섞어 하나의 모델로 완성한 다음 3D 프린팅 노즐이 이동할 때 베드에서 출력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주는 받침 작업을 추가했다. 그 후 느린 프린터라는 점을 감안해 효율적인 지지대 설정으로 출력 시간을 최소화하는 작업을 한 끝에 최종 버전을 완성했다.

최종 인쇄된 안면 인터페이스에 퀘스트 프로 이마 쿠션을 붙여 완성한 퀘스트 3는 아래 사진과 같다. 앞쪽은 분명 퀘스트 3지만, 퀘스트 프로 이마 지지대를 붙이고 양옆과 아래를 개방한 때문에 옆에서 볼 땐 퀘스트 프로와 비슷하다. 형태는 비슷한 데 색깔만 다르니 하얀 퀘스트 프로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흥미로운 점은 보이는 형태만 비슷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게 개방형 인터페이스를 끼운 퀘스트3를 착용하는 느낌도 퀘스트 프로와 비슷하다. 기존 폐쇄형 인터페이스를 써야 했던 퀘스트3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제품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눈 밑 광대를 누르지 않고 이마에 걸치는 방식의 퀘스트3가 이렇게 편한 XR 헤드셋이었다면 아마도 퀘스트3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바꿨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물론 혹자는 옆과 아래를 개방한 탓에 몰입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퀘스트3 헤드셋을 쓰고 장시간 작업하는 나같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몰입감보다 편안함이 중요한 가치다. 더구나 눈과 얼굴 추적 기능을 쓸 수 없는 퀘스트 3라 해도 더 높은 각도당 픽셀 덕분에 좀더 또렷하게 글자를 볼 수 있고, 혼합 현실 환경에서 더 나은 밝기와 색감 덕분에 키보드와 주변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퀘스트3를 자주 써야 하는 상황에선 착용하기 편한 개방형이 더 큰 장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 개방형 인터페이스를 완성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쓸만한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 모델을 모아서 뜯어 고친 다음 느린 프린터에서 장시간 출력한 뒤 다시 수정하고 뽑기를 반복하는 건 정말 신물이 날 정도렸다. 비록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는 했으나 결과를 얻는 과정 자체가 지긋지긋한 이 작업을 퀘스트3를 쓰는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진 않다.

그렇기에 퀘스트3를 퀘스트 프로처럼 만들어주는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가 상용화되었으면 한다. 메타에서 공식적으로 내놓든, 다른 제조사가 호환 제품을 만들든 누구나 쉽게 개방형 인터페이스를 쓸 수 있길 정말 기대한다. 개방형 안면 인터페이스의 장점을 경험하면 대부분은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서다. ‘퀘스트 3는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나왔어야 했다’고..

덧붙임 #

3D 프린터를 이용한 출력물로 완성한 퀘스트3의 최종 모습은 아래와 같다.

* 렌즈 프레임은 이미 재단해 쓰고 있던 렌즈에 맞는 프레임을 만든 뒤 양면 테이프로 살짝 붙였다.

* 개방형 헤드폰은 KOSS KSC75의 드라이버 부문을 분해한 뒤 퀘스트2용 오디오 어댑터 3D 설계를 퀘스트3에 맞게 변경해 적용했다.

* 참고로 엘리트 스트랩의 충전 단자가 아래쪽을 향하고 있어 케이블 연결시 불편한 점이 있다. 이에 따라 자석식으로 탈부착하는 충전 케이블을 이용하기로 했는데, 정품 충전 어댑터를 이용할 경우 PD 케이블 중 3V로는 충전되지 않았고, 5V 케이블로 충전할 수 있었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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