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Tel Aviv)는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큰 도시지만, 스타트업을 통해서 가늠할 수 있는 환경만 보면 텔아비브를 넘어설 도시는 없다. 이곳은 스타트업과 관련된 여러 기관이나 시설, 수많은 스타트업들을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텔아비브에만 어림잡아 7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있고, 지금도 꾸준히 많은 젊은 이들이 하이파나 예루살렘으로부터 몰려들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다.
그렇다고 텔아비브 스타트업을 환경이 단순히 돈이나 기술, 인맥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텔아비브가 다른 지역보다 좀더 스타트업 환경에 유리한 환경이라 말하는 것은 이곳의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체계적 프로그램이 더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물론 하이파나 예루살렘 같은 지역에도 초기 투자 가치를 높이는 액셀러레이터와 인큐베이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좀더 체계적인 환경을 발견할 수 있다.
텔아비브의 스타트업을 만난 지난 22일 늦은 일요일 오후-이스라엘은 일요일부터 한 주를 시작함-에 스타타우를 찾았다. 텔아비브 대학의 작은 부속 건물에 들어선 스타타우는 ‘스타트업을 위한 스타트업’이라고 알려진 비영리 창업지원센터다. 비영리 창업지원센터라면 우리나라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시설, 대학 등의 창업지원센터를 떠올리기 쉽다. 사실 시설과 필요에 따라 자금을 빌려주는 정책 등을 따지면 우리나라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타우는 시설이나 비용을 대진 않는다. 시설이나 비용을 대지 않는 대신 이들은 다른 것을 내놓는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잡는 법’이다.
스타타우가 알려주는 물고기 잡는 법은 어쩌면 평범해 보인다. 베르티카 엔진이라 부르는 4개 영역으로 나눠 인맥 형성과 창업가 교육을 위한 워크숍, 창업 관련 컨퍼런스 개최, 세계의 창업가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워낙 많은 창업지원센터가 있어 아주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 모두 다르듯이 이들은 효율적으로 잡는 법을 필요한 만큼만 가르친다. 물고기를 찾는 방법은 물론 낚시로 한마리를 잡는 방법도 가르치고 그물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 알려준다. 프로그램은 획일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의 상황과 시기, 기간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이들의 연수프로그램은 최대 3개월. 다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청에서 보낸 17명의 학생들이 6개월 동안 연수를 받았던 것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탄력적인 운영은 오랜 경험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타타우는 지금 운영되고 있는 창업지원센터 가운데 제법 오래된 축에 속한다. 그 출발점은 지금 스타트업의 지침서처럼 소개되는 창업 국가(Start-up Nation)라는 책이 나오기 이전인 2007년이다. 당시의 스타타우는 인맥을 연결하는 스타트업이었다. 텔아비브 대학에 자리를 만든 것도 13만 명에 이르는 텔아비브 졸업생으로 구축된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이제 막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 시작됐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도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 텔아비브 대학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으나 대학 강연이 늘어난 지금은 확실히 달라진 현실이다. 목적지까지 항해할 수 있는 창업가를 길러내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화한 때문이다.
이날 만난 오렌 시마니안씨가 스타타우의 체계를 잡았다. 지금 안식년 휴식으로 CEO 자리에서 잠시 떠났지만 여전히 스타타우의 중심을 잡고 때때로 자문을 하고 있다. 그에게 스타타우가 창업지원을 하면서 돈을 주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돈을 주고 성공하는 사례보다 아이디어가 사업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조건 돈을 주고 결과를 내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사람을 키워 더 큰 숲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추가 설명과 함께.
하지만 오렌 시마니안씨가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을 뿐 투자가 필요한 이들을 엮어주는 일마저 소홀한 것은 아니다. 100여개의 스타트업에 대한 관리와 더불어 환경이나 사회적 기여가 포함된 임팩트 투자도 꾸준히 이끌어낸다. 또한 열린 마음으로 스타타우에 참여한 이들의 장점을 돌아본다. 우리나라 중기청의 지원으로 이곳을 찾은 17명의 대학생들도 그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한국 학생들이 보여준 성실함과 시간을 지켜 일하는 철저한 시간 관리를 기억하며 이를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배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청년창업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가 아쉬운 방향으로 흘러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높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을 목표로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는 게 그가 나타낸 아쉬움이다. 창업이 어려운 것은 학생의 문제라기보다 그것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부모의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 모험보다 안정적 직장과 수입을 원하는 부모들의 기대가 이들의 잠재성을 꺾는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창업도 당장 100% 성공할 수 없고 고작 1%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는 부모 세대의 공감대가 그 잠재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지적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창업 환경에서 오렌 시마니안 씨가 강조하는 것은 간단하다.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작하라”는 것. 그는 일단 저지르면 그 일을 하기 위한 모든 것을 배우기 때문에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배경에 깔려 있다. 참 뻔한 말이면서 언제나 어려운 말이다.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의식이 이를 가로 막고 있어서다. 그래도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은 아니다. 스타타우가 아래로부터 스타트업의 교육 환경을 체계화한 것처럼, 우리도 위에서 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 그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언젠가 우리의 스타타우에서 오렌 시마니안 씨를 만나 달라진 우리 이야기를 들려줄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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