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몇 조각 떠 있는 파란 하늘과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출장만 아니었으면 이대로 광안리나 해운대의 카페로 달려가고 싶지만, 야속하게도 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공항에서 곧바로 부산 신항 방향으로 쉬지 않고 내달린다. 공항을 벗어나 어느덧 사방이 온통 붉은 흙빛으로 뒤덮인 미음 지구를 몇 분 더 달려가자 저 멀리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하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5월 7일부터 정식으로 가동하는 LG CNS의 부산 글로벌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이하 부산 데이터센터)다. 지난 4월 19일에 찾아간 LG CNS 부산 데이터센터는 정식 가동을 앞두고 시운전을 하며 각종 설비들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있었다.
이 데이터센터는 서울의 상암동과 가산동, 인천에서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에 이은 네 번째 시설이다. 데이터센터는 방대한 정보와 다양한 서비스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단없이 인터넷을 통해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서버 같은 장비와 냉각과 전력 같은 시설, 대용량 인터넷 회선, 그리고 운영 기술을 갖춘 곳. 24시간 무중단 서비스와 쉴새 없이 들고 나는 데이터의 안전을 위해서 설계된 시설이다.
우리나라는 LG CNS 외에도 여러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있지만, 부산 데이터센터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데이터 센터는 인터넷 기업들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과 경기 남부의 일부 수도권에만 몰려 있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부산에 뒀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지식경제부, 부산광역시와 LG CNS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이곳에 7만2천 대의 서버가 입주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를 올리긴 했지만, 부산이나 또는 가까운 지역의 대규모 IT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벌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국내 기업 뿐만 아니라 부산과 가까운 일본까지 아우르는 목표를 갖고 세워진 시설이다.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형적 안전성이 높고 24시간 무중단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어서 경쟁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부산 데이터센터는 지진에도 각종 설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면진 설계와 외부의 바람을 이용해 수많은 서버의 열을 식히고 습도를 유지하는 풍도, 그리고 2중 전력 공급망이라는 안전 대책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미리 이런 설명을 들어도 면진 설계나 풍도, 2중 전력 공급망 같은 시설의 이점을 이해한 것은 실제 1시간 가까이 시설을 둘러본 뒤다. 면진 설계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견디는 내진 설계의 한 방법이지만, 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는 설계다. 부산 데이터센터는 겉에서 보면 1개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사무동과 설비동이라는 두 개의 동으로 나뉜 시설이다. 설비동과 사무동은 일정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고 지진이 일어나면 설비동만큼은 거의 제자리에 멈춘 듯이 멈춰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것은 설비동을 지지하는 96개의 기둥에 개당 1400톤의 하중을 지탱하는 고무 완충재(댐퍼)를 넣은 때문인데, 이 기둥의 효과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효과를 입증했다는 게 LG CNS측의 설명이다. 진도 8.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
더불어 풍도도 흥미로운 시설이다. 풍도는 데이터센터 내부의 열을 자연 바람을 이용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수만대의 서버가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많은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시설을 갖춰야 한다. 종전에는 기계적인 공조 시설을 이용해 열을 낮춘 탓에 많은 전력과 비용을 소비했고 이것이 데이터센터 운영측과 입주 기업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전가됐다. 때문에 몇 년 전부터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냉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설계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최근 공기의 흐름을 이용하는 자연친화적인 공조 시설을 갖춘 데이터센터가 속속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부산 데이터센터도 그 설계를 반영한 빌트업 공조 방식을 택했다.
외부 바람을 이용한 빌트업 공조는 이미 LG CNS의 가산 센터에 적용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처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외기 공조 방식을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은 다르다. 부산 데이터센터는 무더운 여름을 제외하고 봄가을겨울 동안 외기 공조 방식을 쓸 수 있는데, 이는 3~4개월 더 긴 기간 동안 가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공기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텄다는 게 다른 점이다. 외기 공조를 위해 데이터센터의 외벽 전체가 내부와 외부의 바람을 혼합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고 이곳에서 섞여진 공기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통로를 지나 서버실로 들어간다. 공기의 온도는 25도 안팎, 습도는 50%를 유지하는 데 외기 공조실이나 서버실에서 실제 바람과 함께 느껴보면 그리 덮거나 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만 너무 무더운 여름에는 외부 온도가 높아 외기 공조를 쓰지 않고 야간 전력으로 얼음을 만들고 그 냉기를 이용해 온도를 조절한다.
이처럼 독특한 시설의 부산 데이터센터를 최대한 가동하기 위해 지금 많은 고객들과 의견을 나누는 중이다. 일단 첫 고객사는 지난해 말 양해각서를 교환한 카카오이고, 지금 카카오톡 서버들이 입주해 있는 상황. 그 외에도 국내와 외국 안팎의 고객사와 협의를 하고 있다. 다만 시간은 다소 걸릴 듯하다. 데이터센터의 입주를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이후 진행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최소 6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가 완공된 이후 입주사에게 설비를 배정해도 이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안내와 협의가 필요하고 보안을 비롯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아직 정식 가동 전이긴 해도 국내와 일본의 업체 관계자들이 매일 방문해 이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일본 기업의 직접 유치는 물론 제휴사를 통한 임대 등 여러 방안을 통해 입주사를 점차 늘릴 계획이다. 또한 지금은 1개 동만 완성된 상태지만, 입주 상태에 따라 2개 동을 더 늘려 최대 3개 동까지 확장된다. 이미 설계는 마쳤으나 처음부터 무리하게 투자할 필요가 없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LG CNS는 부산 데이터센터가 단순히 시설적 측면에서만 유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울보다 공간 비용과 전력 소모비가 줄어 전체적인 운영비의 절감 같은 이점이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지역적 상징성도 무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데이터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거대 기업들이 믿고 써야 하는 데이터센터를 부산 지역에 두고 관련 산업을 결집하고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어서다. 글로벌 데이터센터로 육성하려는 기본 목표와 아울러 부산의 IT 기업의 회선비를 줄이고 부산 정보산업진흥원과 협업을 통해 무료 IT 교육도 실시하는 등 지역 IT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활동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활동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효과로 나타날지는 예단하긴 힘들다 하지만 LG CNS의 부산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는 그냥 데이터센터라는 시설의 가치 이상의 것을 황량한 대지 위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은 아닌지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Be First to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