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타게’ 만든 윈도 10 가을 크리에이터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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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탄다’.

낙엽이 떨어지고 쓸쓸해지는 가을만 되면 ‘가을 탄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계절적 정서 장애의 다른 표현. 가을과 겨울이 오면 기분의 균형과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신체의 화학적 균형과 내부 시계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 알려진 계절적 정서 장애는 외부의 변화로 인해 우울함 같은 감정적 변화를 겪는 이들에게 나타난다.

그런데 가을을 탄다는 말을 계절적 이유로만 댈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윈도 10을 이용하는 한국의 PC 이용자들이 그렇다. 윈도 10 업데이트가 또 다른 의미의 계절적 정서 장애를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어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언에 따라 윈도 10 PC를 쓰는 우리는 1년에 두 번의 분기(Branch) 업데이트라는 계절적 변화를 겪어야 함에도, 한국이라는 지역적 제약으로 인해 업데이트된 기능을 쓰지 못하는 후유증에서 유발된 우울감이나 상실감을 극복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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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언트 디자인을 적용한 그루브 음악 앱

이 같은 후유증은 우리나라 시각으로 18일 새벽부터 배포를 시작한 윈도 10 가을 크리에이터 업데이트에도 나타날 듯하다. 비록 새로운 운영체제는 아니어서 관심은 덜할 수는 있지만, ‘역대급’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많은 변화를 담고 있는 이번 업데이트의 경험을 모두 누리기 힘든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향후 앱 인터페이스의 변화를 주는 플루언트 디자인(Fluent Design)이나 LTE 망에 항상 연결되어 있는 올웨이즈 커넥티드 PC에 대비해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한 피플 허브, 클라우드에 저장된 파일을 PC로 다운로드하지 않고 작업하는 원드라이브 온디맨드, 막강한 동영상 편집 능력을 내장한 사진 앱 등 눈여겨 볼만한 일반적인 기능도 적지 않다. 일단 이 기능들은 우리나라에서 업데이트한 이후 대부분 이용할 수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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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업데이트에서 등장한 그림판 3D. 이를 이용해 3D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윈도 10 가을 크리에이터 업데이트는 앞선 세 번의 업데이트와 다른 차원의 기능, 정확하게 말하면 윈도 PC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업데이트라고 정의할 수 있으나 관련된 기능이나 서비스 일부는 지금 이용할 수 없다. 단순히 때가 되어 보안 정책 연장을 위해서 내놓는 4번째 업데이트가 아니라 ‘창작자'(Creator)를 업데이트의 이름으로 내세운 데는 지금까지 생산성 중심으로 활용해 오던 PC를 3D 창작 도구로 바꾸기 위한 다채로운 시도를 담았다는 것을 짧은 이름에 압축한 것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창작과 활용을 3D로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이든 놀이든 아직까지 모니터 같은 장치에서 평면적인 작업을 더 많이 하므로 이를 위한 기능을 내놓는 편이 훨씬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 같은 시각 현실이 보편화될 때를 내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각 현실 속 공간에서 접하게 될 수많은 사물은 실제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보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시각 작업을 바꾸는 것은 단순한 하드웨어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컴퓨팅에 대한 관점을 입체적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업데이트에서 3D 모델을 누구나 쉽게 창작하고 가볍게 쓸 수 있는 개념을 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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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10 가을 업데이트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리믹스 3D.

앞서 내놨던 그림판 3D에 더해 3D 창작과 이를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 업데이트에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게 바로 리믹스 3D(Remix 3D)와 혼합 현실(Mixed Reality)이다. 이 두 가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번 업데이트를 내놓기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서비스와 기능으로, 3D 모델 데이터의 공유와 활용을 위한 핵심 플랫폼이기도 하다.

리믹스 3D는 윈도 10에서 활용할 수 있는 3D 모델 데이터를 모은 공유 플랫폼이다. 전세계 윈도 10 이용자라면 누구나 손쉽게 그림판 3D(Paint 3D)나 그 밖의 방법을 이용해 만든 3D 모델을 올릴 수 있고, 반대로 리믹스 3D 사이트(http://www.remix3d.com)에서 원하는 3D 모델 데이터를 그림판 3D로 불러 작업할 수도 있다. 윈도 10을 쓰면 다른 곳을 기웃 거릴 필요 없이 리믹스 3D를 통해 3D 모델 데이터를 찾을 수 있도록 마이크로소프트가 준비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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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그림판 3D를 열어 리믹스 3D의 데이터를 불러올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림판 3D를 열어 리믹스 3D의 데이터를 가져 올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서비스 지역에 포함되지 않아서다. 리믹스 3D가 서비스를 시작한 첫 나라는 11개국에서 빠진 것이다. 미국, 영국, 스페인, 멕시코, 브라질을 비롯해 옆나라 일본도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은 1차 서비스에서 제외된 상태다.

물론 리믹스 3D가 없어도 그림판 3D에서 창작할 수 있다. 정말 순수한 창작을 생각한다면 리믹스 3D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낯선 3D 창작에 좀더 빨리 익숙해지려면 그림판 3D를 쉽게 만드는 것 외에 재미있는 3D 모델의 예제와 활용으로 돕는 것이 더 효과가 클테지만, 한국 이용자들은 아직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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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판 3D에서 작업한 3D 콘텐츠는 곧바로 MR 뷰어를 통해 증강 현실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리믹스 3D의 3D 데이터를 그림판 3D에서 작업하지 못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AR 뷰어인 ‘혼합 현실 뷰어'(Mixed Reality Viewer)다. 그림판 3D에서 작업한 창작물은 혼합 현실 뷰어(혼합 현실 포털과 별개)라는 윈도 10의 새로운 AR 뷰어에서 불러와 현실과 섞어서 볼 수 있다. 만약 리믹스 3D를 국내에 서비스했다면 이용자가 모든 모델을 직접 만들 필요 없이 리믹스 3D에서 데이터를 불러 그림판 3D를 통해 AR로 곧바로 확인해볼 수 있는데, 지금은 이용자가 직접 만든 작업물 외에 다양한 모델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차단된 것이다.

리믹스 3D와 함께 윈도 10 가을 업데이트의 주요 축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 혼합 현실 장치의 판매와 관련된 정보도 지금까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혼합 현실 장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설계한 하드웨어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가상 현실 장치로 결국 데스크톱 컴퓨팅에서 시각 현실 컴퓨팅의 대중화로 전환하는 시도여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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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10 가을 업데이트 이후 실행되는 혼합 현실 포털. 하지만 혼합 현실 장치가 없으면 포털을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윈도 10 가을 업데이트와 함께 혼합 현실 포털(Mixed Reality Portal)을 실행할 수는 있지만, HP, 에이수스, 레노버, 삼성 등 혼합 현실 장치의 국내 판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보니 이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나마 삼성에서 만든 혼합 현실 장치의 예약 판매를 진행하긴 했으나 제품을 11월에 출시할 예정이어서 그 이전까지 혼합 현실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

문제는 리믹스 3D와 혼합 현실 장치에 대한 한국 서비스나 사업 진행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믹스 3D의 서비스 국가 확대를 본사가 결정하므로 한국이 포함될 시기는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반드시 리믹스 3D를 모든 국가에 서비스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므로 기대를 갖고 기다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출한 194개국에 똑같이 적용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윈도 10 가을 업데이트의 핵심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없는 이번 같은 상황에서 업데이트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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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 현실용 헤드셋은 이미 준비되어 있지만, 몇 개의 제품이 언제 국내에 출시될지 확정된 바 없다.

그나마 혼합 현실에 대해선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음이 확인했다. 새로운 서피스 프로 국내 출시 행사에서 만난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홍보 담당자는 “혼합 현실 도입은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고, 최근에도 국내에 혼합 현실을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확한 시기를 콕 짚을 수는 없지만, 머지 않아 이번 업데이트에 추가된 혼합 현실 포털을 이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판매에 대한 정보를 더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 윈도 10 가을 크리에이터 업데이트는 매우 많은 것을 포함한 업데이트다. 무엇보다 컴퓨팅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듬뿍 담았고, 기대를 걸만한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방향타를 돌릴 수 없는, 준비되지 않은 업데이트에 불과하다. 대체 깔고 나면 우울해지는 업데이트가 뿌려지는 원인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윈도 10 업데이트 때마다 불거진 문제가 가을 업데이트에서는 더 커진 걸 보니 이번 가을은 제대로 타게 될 것 같다.

덧붙임 #

그렇다 해도 제발 시간 날 때 업데이트는 하시라. 윈도 10은 가을 업데이트처럼 메이저 업데이트 이후 16~20개월 동안 보안 업데이트를 진행하므로 반드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이미 윈도 10 출시 당시의 버전과 첫 번째 윈도 10 업데이트의 보안 업데이트 지원은 종료됐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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