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반응이 차갑긴 해도 MWC 현장에서 노키아는 언제나 흥미롭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시도의 실험작, 이를 테면 4천만 화소가 넘는 노키아 폰 같은 것을 내놓을 때도 있고, 자기 사업과 관련성이 적은 제품으로 관심을 불러 일으킬 때도 있어서다. 이번 MWC 2014에서도 노키아의 그런 행동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미 MS의 한 파편이 되어 버린, 과거의 노키아가 아닌 상황에서 노키아가 들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안드로이드폰이다.
MWC 현장에 전시된 노키아 안드로이드 폰은 모두 세 가지. 노키아 X와 노키아 X+, 노키아 XL 등이다. X모델은 4인치에 512MB 램과 3백만 화소 카메라를, X+는 똑같은 화면 크기에 768MB 램과 4GB 저장공간을 갖고 있다. XL은 5인치의 화면에 앞 200만, 뒤 5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단 플래그십 모델이다. 세 모델 모두 듀얼 심 카드를 탑재했고, 노키아 X와 노키아 X+는 출시를 시작했고 노키아 XL은 2분기 출시할 예정이고, 가격은 노키아 X가 89유로, 노키아 XL이 109유로다.
값이 싼 이유가 있지만 어쨌거나 노키아의 X폰 제원은 한마디로 별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보급형 안드로이드폰과도 상당히 거리를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제품은 저가형 제품인 만큼 제원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굳이 최고 성능을 지향하는 제품도 아닌 까닭에 너무 공들여 만들어야 할 까닭도 없다.
그런데 다른 제품도 아닌 이처럼 돋보이는 것 하나 없는 제원의 제품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만큼 MWC의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키아 X가 상대적으로 특별해서다. 앞서 말한 대로 노키아 X는 안드로이드 폰이다. 과거 심비안 이후 미고의 실패와 윈도폰만을 전략적으로 내놓았던 노키아가 만든 안드로이드폰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돌았던 소문은 현실이 되어 MWC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노키아 X폰은 단순하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안드로이드 폰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안드로이드 폰과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르다. 운영체제만 안드로이드일 뿐, 그것을 안드로이드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지금 가장 많이 보급된 안드로이드폰은 모두 구글 모바일 서비스의 지배하에 있지만, 이 제품은 아니다. 구글이 없는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한 노키아만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노키아 X 시리즈의 UI는 얼핏 보면 윈도폰처럼 보인다. 잠금 화면도, 홈 화면의 타일 UI도 윈도폰을 빼다 박았다. 아마 윈도폰을 쓰는 이들은 이 스마트폰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그렇지만 안드로이드 이용자도 이 폰을 다룰 수 있다. 알림 막대나 설정 화면의 조작은 종전 안드로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폴더 기능을 가진 타일은 홈 화면에 여러 앱을 묶는 폴더나 타일을 만들 수 없는 윈도폰의 단점을 덮는다. 더구나 안드로이드 응용 프로그램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가 아닌 자체 스토어에 있는 안드로이드 응용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실행하고, 별것 아닌 제원에도 불구하고 런처와 앱의 반응 속도가 상당히 좋다. 512MB 램으로도 다른 보급형 안드로이드 폰과 차이가 없을 만큼 움직임이 좋다.
그런데 노키아 X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지만 구글이 없다. 구글 메일, 구글 플레이, 구글 지도 등 안드로이드 세계에서 그 의존도가 높은 모든 구글 서비스가 노키아 X에 없다. 구글 메일 대신 아웃룩이, 구글 플레이 대신 자체 앱 장터가, 구글 지도 대신 노키아 히어 맵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물론 유투브처럼 대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광범위한 구글 모바일 서비스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구글이 없는 안드로이드가 가능한 제품을 노키아가 내놓은 것이다.
구글이 GMS를 통해 안드로이드 세계를 통제하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노키아는 구글의 견제를 피하고 독립적인 안드로이드폰으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노키아의 주력은 윈도폰이지만, 그렇다고 노키아 X가 파고들 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지부진한 윈도폰의 앱 생태계 대신 안드로이드 앱 생태계를 끌어들이면서도 독자적 시장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갖고 있다. 노키아의 이 실험이 성공하든 안하든 안드로이드의 생태계는 확장될 것이지만, 구글 모바일 서비스가 빠진 안드로이드를 보는 구글의 심정은 좀 복잡해질 것 같다.
점점 사악해져가는 구글에게 대드는(?) 노키아의 모습에서 약간이나마 속 시원한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