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다니던 노트북을 실수로 떨어뜨리면 어떨까? 이런 상황에 어떤 답이 나올지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대부분은 말짱할 것이고, LCD나 하드디스크처럼 가장 비싸고 중요한 부품만 맛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 LCD나 하드디스크, 아니면 둘 다 성하게 남을 수도 있지만, 그거야 진짜 운이 좋을 때의 이야기고 노트북 추락사에서는 그런 행운을 보기란 쉽지 않다.
물을 쏟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키보드 위에 엎질러진 물은 확실히 주워담을 수 없는 법이다. 대부분의 물은 키보드 아래 쪽으로 스며들기 마련이다. 키보드 아래에 있는 것은 다른 아닌 기판. 물이 닿은 기판은 말하나 마나 아닌가. 응달에 잘 말리면 작동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물을 엎질렀으면 서비스 센터 구경도 해볼 겸 해당 업체에 AS를 맡기는 게 상책일 정도로 노트북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일 수 있다.
이처럼 노트북은 낙하 충격이나 어쩌다 침투한 물에 망가질 확률이 매우 높은 장치지만 꼭 그런 장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격에 강하고 물의 침투에도 안전한 러기드(Rugged) PC가 있기 때문이다. 러기드 또는 러기디즈드(Ruggedized) 모두 같은 의미로 매우 험한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매우 튼튼한 노트북을 뜻한다. 단어가 가진 뜻과 그 생김새 때문에 ‘울퉁불퉁한’ 노트북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여느 PC나 노트북과 다른 특수 PC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러기드 PC는 대부분 산업 현장이나 군사 작전 지역 등에서 쓰인다. 길거리에 있는 키오스크나 진동이 많은 자동차에서 쓰는 카 PC도 이러한 러기드 PC의 범주 안에 든다고 볼 수 있지만, 주요 수요처는 군 부대나 산업 현장이다. 큰 충격이나 먼지, 습기, 매우 높은 온도 같은 온갖 이물질의 침투와 PC가 작동하기 어려운 험한 상황에서 쓰도록 만든 것이다 보니 산업 현장이나 군 작전 지역 같은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곳에 딱 들어맞는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초반, 카타르에 주둔해 있던 미군의 한 소대장이 미국에 있는 가족과 위성으로 화상 통화를 할 때 (실제 있는지 알 수 없는) HP의 러기드 노트북를 이용하는 장면처럼 세계 각국에 파견된 미군이 실제로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러기드 PC는 일반 노트북이나 PC처럼 세련되거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고 투박하고 무겁다. 그나마 휴대하기 좋게 크기를 줄이거나 손잡이를 단 것이 눈에 띌 뿐 결코 사고 싶은 생각은 안든다(물론 쉽게 살 수 있는 가격도 아니다). 러기드 디바이스로 확대하면 PDA나 계산기, GPS 등도 포함된다.
러기드 PC는 사실 일반 PC는 거의 찾기 어렵다. 대부분이 노트북이나 UMPC 형태라 쓰는 부품도 노트북용이다. CPU나 메인보드 칩셋, 그래픽 칩셋, 하드디스크 등 일반적인 부품과 다르지 않고, 하드디스크 대신 SSD를 쓰는 것도 종종 있다. 이처럼 평범한 부품을 썼지만, 던지고 밟고 물을 부어도 가혹한 환경에서 견디도록 외부 물질의 침투를 막는 봉인 처리와 충격을 완화하는 설계, 큰 충격이나 열에도 제품이 변형되지 않는 단단한 재질을 쓰는 것은 일반 노트북과 다르다. 하지만 일반적인 부품을 써서 노트북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도 있다. 먼지나 물이 침투하지 않도록 모든 막과 틈을 막아야 하는 탓에 안쪽의 칩이 내는 열을 외부로 빼내거나 식힐 수 있는 대책도 포함해야 하고 햇빛이 쨍쨍한 대낮에도 LCD 화면이 또렷하게 보여야 한다. 그냥 튼튼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기후 조건이나 작업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테스트도 이러한 환경 조건에 맞춰 시행된다. 방수나 방진 정도를 측정하는 국제 표준은 IP(ingress protection)지만, 실제 환경에 따른 테스트는 미국방 규격 MIL-STD-810(지금은 810F까지 변경)을 인용한다. 1960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개량되어 온 이 규격은 야전에서 운용할 수 있는 장비인지 검증하기 위해서 만든 미군 표준으로 군사 작전을 펴는 지역별 기후 조건에 따라 세부적인 테스트를 규정하고 있다. 무려 500쪽에 달하는 테스트 가이드에는 저압과 고온 저온, 온도 충격, 유체에 의한 오염, 태양열 복사, 강우, 습도, 곰팡이, 염무, 모래 바람, 폭발성 연무, 누수, 가속도, 진동, 소음, 충격, 불꽃 충격, 강한 산성 연무, 항공기 사격 진동, 온도-습도-진동-고도, 결빙, 화포발사 충격, 진동-음향-고온 등 여러 상황에 따른 테스트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노트북에 이 많은 테스트를 다 할 때도 있고 PC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온도, 습도, 모래와 먼지, 기압, 충격에 관한 일부 테스트만 할 때도 있다. 때문에 일부 러기드 PC의 제원을 보면 각 항목별로 미국방 규격의 어떤 테스트를 충족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이를 테면 작동 온도를 표시할 때 ’10~80도(MIL STD 810F 표준 실험 결과)’과 같은 식인데, 이를 보면 대략적인 성능 테스트를 짐작할 수 있다. 러기드 PC는 그 결과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된다. 다른 노트북보다 내구성이 좋은 듀러블(durable)과 세미 러기드(semi-rugged), 러기드, 울트라(ultra) 또는 풀리(fully) 러기드로 세밀하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구분은 업체마다 다른데, 세미 러기드는 키보드 위에 엎질러진 물이나 먼지로부터 보호하는 수준이라면 풀리 러기드는 온도나 높은 고도의 강한 기압 등 극한의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최고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러기드 PC는 한 대에 수백만~수천만 원을 넘는다. 운용 목적에 맞게 여러 인터페이스와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면 가치는 높아진다. 그래도 일반적인 수준의 러기드 노트북은 3천 달러 안팎이다. 물론 이보다 싼 러기드 PC도 있지만, 기본 운영체제만 갖춘 완전(fully) 러기드 노트북이 이 정도라는 것만 참고하자.
이 PC를 만드는 업체는 익히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그나마 알려진 PC 업체는 파나소닉 정도였고 Augmentix XTG나 Azonix, Intermec, Itronix, Psion Teklogix, GETAC 등 낯선 업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HP, 델, 레노버 등 대형 노트북 업체들도 러기드 PC를 하나쯤은 발표한 바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대형 업체가 뛰어 든 러기드 PC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 파견된 미군이 소모하는 러기드 PC가 4억 달러에 달한다니 짭짤한 시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딱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텔도 한때 러기드 PC 전용 플랫폼인 코드명 자아그루티(jaagruti)를 2006년 3월에 소개한 적도 있다. 군사용이나 산업용보다는 키오스크처럼 좀더 보편화된 특수 시장을 노리고 내놓았은 플랫폼이었는데, 지금도 이것을 발전시키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러한 플랫폼의 등장을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PC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찌감치 레드 오션 시장으로 진입한 PC 시장이지만, 러기드 PC처럼 대중화되지 않은 분야를 상대로 한 PC는 아직 블루 오션이 아닐까?
몬생겼네요.. 던지고 밟고 물에 빠뜨리고 칼로 스크래치하고 발로차고 하이킥하고 눈빛공격을 가해도 끄떡없는
그런 노트북이 있다면..
바로 지른다!!(조심성0%)
ㅎㅎ 그렇다면 지를 만한 노트북이 좀 많겠는데요? ^^
최종요구사항 : 값이 싸야 한다
디자인이 멋져야 한다
아마 이런건 없을뜻..
생각해보니, 발열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네요.
저 정도 크기라면 요즘 메인보드 노스브리지 식히는 것처럼.. 구리 선..
그런 걸 뭐라고 하죠..(-_ㅡ;; )
하여간 그래도 될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아닌가 싶고..
SSD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장이 저 쪽 시장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