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데이터 로밍도 속도 제한 걸린다

무제한 데이터 로밍을 이용하는 이들 중에 이것도 속도 제한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출장이나 여행을 떠날 때 요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데이터 무제한 로밍을 이용하지만, 정작 이러한 안내를 고지 받지는 않아서 거의 모를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제한 데이터 로밍 요금제에 가입할 때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거의 알 수 없으니까. 실제로 SKT의 T로밍데이터무제한 원패스의 요금제 이용 항목을 잘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안내가 들어 있다.

‘다수 고객의 정상 사용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량 사용자의 서비스 속도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다량 사용 : 1일 사용량이 100MB를 초과한 경우, 속도 : 200Kbps이하로 제한)

http://www.tworld.co.kr/roaming/html/tariffSystem/planOnepass.html#tariff_txt_btn

그러니까 100MB를 초과해 쓰면 200Kbps 이하로 속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국내 이통사와 제휴를 맺은 외국의 이통사의 사정에 따라 이러한 조건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무조건 100MB만 쓰면 속도를 200Kbps로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저 문구를 보면 적어도 무제한 데이터 로밍이 되는 나라에서 쓰더라도 하루 100MB를 초과했을 때만 속도를 제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최소 100MB를 초과했을 때 200Kbps 제한이라는 기준은 잘 지켜질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듯하다. 2주 전에 대만에서 처음으로 데이터 로밍 속도 제한을 처음 경험했는데, 여러 상황과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이 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SKT의 원패스 데이터 로밍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통사는 타이완 모바일이다. 처음 데이터 로밍을 시작한 뒤 속도를 측정했을 때 내려받기 속도는 7Mbps. 이 속도는 국내 3G 망에 연결한 것과 다름 없을 정도로 좋은 속도인 데다 로밍 상황에서는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런데 출장 중 한국 소식이 궁금해 모바일 앱을 이용해 잠깐 보던 뉴스 스트리밍이 중지되는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본 것은 아니었던 터라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겼으나 어느 순간 방송 데이터가 수신되지 않아 다시 속도를 측정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려받기 속도가 측정됐다.

제한 사항에 표기된 200Kbps라면 0.2Mbps 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0.01Mbps 밖에 측정되지 않았다. 여러번 반복해도 이 속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것은 제한이 아니라 거의 차단 수준이다. 실제로 이후로는 자정이 되어 속도 제한이 풀릴 때까지 메시징이나 다른 데이터가 거의 수신이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 됐다.(혹시 망 자체가 문제 있는 거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추가 개통했던 타이완 모바일의 현지 선불 심카드는 같은 곳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정상적으로 서비스되었다.)

그렇다면 100MB를 썼기 때문에 속도 제한이 실행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안드로이드 데이터 이용량 측정을 통해 확인한 데이터 소비량은 모두 53MB. 하지만 한국에서 출발해 대만 현지에 도착한 뒤 로밍을 쓴 것이므로 국내에서 소비한 데이터까지 포함한 만큼 실제 로밍으로 소비한 데이터는 이보다 더 적다고 볼 수 있다.

SKT측에 따르면 무제한 데이터 로밍에서 속도 제한을 두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고 보니 무척 당황스럽다. 무제한 데이터 로밍이라는 말만 놓고 보면 국내처럼 모든 것을 무제한으로 서비스할 것이라는 착각을 제대로 깨준 사건이었으니까. 이같은 인식은 비단 나 뿐만 아니라 자주 외국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는 다른 블로거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만큼 무제한 데이터 로밍의 속도 제한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제한 데이터 로밍의 속도 제한이 무조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특수한 상황을 충족해야 발생하는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속도 제한이 발생된 이후다. 속도 제한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도 대만에서 보여준 것처럼 정상적인 서비스가 불가능한 전송 속도라면 이는 사실상 무제한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0.2Mbps라면 느리긴 해도 인터넷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상태로 서비스를 계속 쓸 수 있다면 무제한 데이터 로밍의 의미는 남아 있지만, 대만처럼 거의 서비스가 불가능한 속도라면 무제한 데이터 로밍은 무의미하다.

때문에 이통사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통사는 반드시 속도 제한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고지하라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어떤 상황에서 속도 제한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명시하면 좋겠지만, 당장 그런 것이 불가능하면 로밍 안내 문자를 보낼 때 이러한 속도 제한에 대한 안내 문자도 포함하기 바란다. 무제한 데이터 로밍에 대한 안내를 자세히 읽어보면 데이터 속도 제한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긴 하나 솔직히 그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들이 적다는 것을 감안하면 데이터 속도 제한에 대한 안내는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외국의 데이터망을 로밍하는 이용자가 최소 수준의 데이터 속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로밍 제휴 이통사와 제대로 협상하길 바란다. 무조건 0.2Mbps라는 속도를 보장하라는 게 아니라 속도 제한을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중요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속도는 나와야 데이터 로밍을 쓰는 의미가 있어서다. 무제한 데이터 로밍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용자가 그 대가를 내야 할 이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불필요한 이유는 만들지 않는 것이 이통사가 이용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