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마주한 해리포터 속 마법의 펜

영화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해리포터’를 오래 전에 읽었다. 1997년 첫 출간을 한 연작 소설이다보니 이제 등장인물이나 줄거리는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다만 이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를 꾸몄던 아이템 중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마법의 펜’. 이 펜은 호그와트의 신문기자가 해리포터를 인터뷰할 때 등장한 소품이다. 물론 단순한 펜은 아니다. 마법이 깃든 펜이었으니까. 이 펜의 기능은 빈 수첩이나 공책에 글을 쓰는 여느 펜과 다르지 않다. 단지 중요한 사실은 마법사가 직접 펜을 쥐고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펜은 스스로 글을 쓴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펜은 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용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읽을 거리를 쓰는 작가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기자 대신 글을 쓰는 로봇 기자의 등장

해리포터 속 마법의 펜을 보면서 ‘말하는 대로 잘 받아쓰기라도 하는 그런 도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든 것은 아마도 그 때 글쓰기로 밥을 먹고 살던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날로 먹는 그런 글쓰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나 사실을 좀더 정확하고 빠르게 미리 입력해 놓고 글쓰기에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디지털 세상은 그것보다 한 발 더 앞서가는 모양새다. 몇달 전 ‘기사를 대신 쓰는 소프트웨어 로봇이 등장했다‘는 벤처스퀘어의 한 칼럼에 따르면 미국 포브스 인터넷판에 내러티브 사이언스에서 개발한 퀼(Quill)이라는 소프트웨어 로봇을 통해 작성한 기사를 게재하고 있는데, 기존 매체 종사자들이 검토해보니 기사의 완성도가 뛰어나 놀라웠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원문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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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사이언스는 스토리텔링 스타트업이지만, 퀼의 소개 페이지를 가리키는 탭을 보면 이렇게 써 있다. 인공지능 플랫폼(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 그러니까 글을 쓰는 인공지능 플랫폼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퀼은 어떻게 기사를 썼을까요 어떤 이야기를 쓰는 사람에게 제공하기 위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데이터를 추출하기 위한 여러 단계를 거친다. 데이터의 구조와 분석, 추출하고 조직화해 기사나 보고서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재료를 다듬어 놓는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히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에 그치거나 데이터를 늘어놓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갖는 의미까지 전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넘쳐나는 데이터를 추려서 도표나 그래프로 정리하는 기존의 데이터 분석과 다르게 이러한 데이터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설명까지 할 수 있는 지능형 시스템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이 지능형 시스템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체계화된 언어로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브스에 제공하는 기사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일상을 소프트웨어 로봇이 대신 쓴다면…

이러한 로봇 기자의 등장으로 ‘기자’라는 직업에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기사를 대신 쓴다는 결과만 따져보면 충분히 가능성을 가진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과장된 위기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뉴스의 생산성 측면에서 새로운 경쟁자 또는 놀라운 보완재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난 이러한 자동 글쓰기가 일상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한다. 퀼은 기자라는 직업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정리하는 새로운 도전일 수도 있어서다. 물론 우리 일상을 굳이 기사를 쓰듯 자동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데이터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정리해서 보여준다면 어떨까? 그것이 일기라는 형식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거수일투족 모든 일상이 데이터로 변환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마법의 펜은 어쩌면 불가피하게 필요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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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웨어러블 시대가 되면서 수많은 장치와 센서들이 우리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종전에는 일부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찍거나 통화를 했던 기록을 모았던 기능이 있었지만, 웨어러블 센서와 스마트폰의 모든 행동을 실시간으로 정리하는 라이프로그 소프트웨어들은 잠을 잘 때나 움직이는 모든 순간을 빠짐 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데이터를 기록하는 놀라운 능력과 상대적으로 이들 데이터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것을 보기 좋게 꾸며 놓기는 했다. 단지 라이프로그라는 측면에서 그 방식이 틀렸다고 보긴 힘들지만, 그렇게 보는 데이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찾아보면 알 수는 있어도 무엇을 했는지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퀼과 같은 글쓰기 능력을 지닌 로봇 소프트웨어가 이 데이터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지도 모른다. 그냥 데이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가진 의미를 찾아내 대신 일기를 쓰거나 보고서를 쓰고 있을 테니까. 그저 오늘 하루 움직인 발걸음 수, 잠을 잔 시간, 인터넷을 이용한 용량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어떤 일로 통화를 했는데, 그 일로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녀야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쓸지도 모른다.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이들에게 운동을 안하는 게으름뱅이라고 놀릴지도 모르고. 물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데이터를 보는 방법은 또 다른 변곡점을 지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바로 디지털 세상 속에 있는 마법의 펜이 필요하다.

덧붙임 #

이글은 LG CNS 블로그에 기고한 글의 원문으로 일부 내용이 다를 수 있음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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