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미래부가 하나의 지침을 마련했다. 스마트폰앱을 구매할 때 사전 탑재된 앱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폰 앱 선탑재에 관한 가이드라인’ 발표한 것이다.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다. (http://blog.daum.net/withmsip/527 )
① 스마트폰의 고유한 기능이나 기술구현, 운영체제(OS) 설치 및 운용에 필요한 앱은 필수앱으로, 그 밖의 앱은 선택앱으로 분류되고
② 스마트폰 이용자는 선택앱을 삭제할 수 있게 되며
③ 선탑재앱의 종류, 수량, 이용자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내부저장소 용량은 이용자가 쉽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공지 됩니다.
미래부가 내놓은 이 지침은 강제력이 없다. 즉, 실행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약한 단계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 미래부의 지침이므로 업계에 주의를 줄 수 있는 것이긴 하니까. 더구나 이번 지침이 정치 쟁점의 부산물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위 미래부 블로그의 설명을 보면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적지 않은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이용자를 위한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용자의 선택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불필요한 앱 삭제라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영국 테크 블로그 위치(Which) 에서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포함된 글을 공개한 적이 있다.
(http://blogs.which.co.uk/technology/phones-3/phone-storage-compared-samsung-s4-still-in-last-place/ )
이 이미지는 스마트폰을 샀을 때 기본 공간 대비 남은 저장 공간을 표시한 것으로 SNS를 통해 많이 퍼질 만큼 화제가 됐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 이미지를 보며 여유 공간의 차이만으로 각 제품의 상대적 우위만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있다. 정작 우리가 제품을 살 때 온전히 저장 공간을 다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그 전에 나온 PC나 노트북 같은 대부분의 제품들은 저장 공간을 온전히 쓸 수 없었다. 운영체제와 번들 프로그램이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이러한 장치에서 그 공간을 다 쓰지 못하는 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것은 워낙 대용량의 저장 공간을 갖고 있었던 터라 이 프로그램들이 차지하는 공간으로 인해 다른 작업을 방해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저용량 SSD를 탑재한 노트북과 태블릿은 운영체제와 번들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희한하게도 저용량 장치에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긴 하나 어쨌거나 스마트폰의 저장 공간을 잡아먹는 데 관여되어 있는 운영체제 공급사와 단말기 제조사, 이통사가 이용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좀더 깊이 들여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이용자가 구매한 제품을 온전하게 쓰지 못한다는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다. 8GB 넘게 용량이 남은 갤럭시 S4나 12GB 이상 남은 넥서스 5, 아이폰 등은 분명 16GB라는 저장 공간의 표기를 보고 샀을 이용자에게 다른 이미지로 남는다. 16GB 만큼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산 이들은 부족한 저장 공간 만큼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을 심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용자마다 그 이익이 침해당했다고 여길 수 있는 허용 범위가 모두 다르겠지만, 저장 공간을 16GB로 표시했다면 우리가 쓸 수 있는 허용 공간을 16GB로 이해할 뿐 그보다 적은 용량을 보고서 만족할 이들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용자가 써야만 하는 저장공간을 지나치게 많이 차지하고 있는 선탑재 앱이 문제이므로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여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운영체제와 단말기 제조사, 이통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침을 보면 최대한 용량 보전을 위해 처음부터 선탑재 앱을 줄이는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삭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냥 예전처럼 제품을 내놓되 이용자가 필요 없는 것은 삭제하라는 것이다. 얼핏보면 같은 말로 들릴 지 모르나, 앞서 이용자가 제품을 살 때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전혀 다르다. 애초 새로 산 단말기의 저장 공간이 너무 부족하고 그것의 이유가 삭제가 불가능한 선탑재 앱이라는 이유였는데, 이번 지침은 근본적인 문제에 다가선 것으로 보긴 힘들다. 이용자가 구매한 제품에 담겨진 저장 공간만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반대로 앞으로 사는 제품들도 여전히 용량은 그대로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지침으로는 이용자들이 갖고 있는 불만을 해소하기 어렵다. 처음 살 때 제품이 갖고 있는 저장 공간 만큼 쓰길 원하는 이용자의 마음에 들만한 해결책도 아니고, 단말기 산업에 간섭하는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한 것 이외에 실제 이용자들이 원하는 실효성은 얻기 힘들다. 차라리 실제로 쓸 수 있는 남은 저장 공간을 정확하게 표시해 이용자들이 더 정확하게 제품 정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업계 스스로 위기를 느끼고 단말기의 저장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유도하는 지침이었다면 어쩌면 이 글의 방향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침해당하는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지침이겠지만, 본질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덧붙임 #
이 글은 2014년 1월 29일에 공개되었습니다.
조삼모사..군요..
국민을 원숭이로 아나.. 쩝
타협점을 찾았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모자라는 건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