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바이, 바이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4년 쯤에 소니는 아주 흥미로운 결정을 내린다. 바이오의 색깔을 바꾼 것이다. 이게 무슨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소니 바이오를 지켜봤던 이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일이다. 소니 바이오에서만 볼 수 있던 푸르스름하고 은은한 자주빛(Violet) 대신 검정을 덧입힌 바이오는 바이오 마니아들에겐 바이오가 아닌 것 같은 낯선 기분을 들게 하기엔 충분했으니까.


이때 소니가 전통적인 색깔을 포기하면서까지 바이오의 이미지를 바꿔야 했던 것은 바이오 PC를 내놓은 1996년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은 지금처럼 PC 산업 자체가 퇴보하는 게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있던 시기였던 터라 산업적인 문제로 떠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소니가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이전 히트작들이 쌓아놓은 명성을 꾸준하게 이어가지 못하면서 점점 떨어지는 매출과 모든 라인업의 전략적 판단 오류로 생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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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바이오 U. MID의 효시였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서 다른 바이오 마니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 변화를 반기는 쪽은 아니었다. 처음 중고로 샀던 노트북을 바이올렛의 바이오로 고른 이유도 기존 노트북과 확실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길 만큼 강한 개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이용자의 생각과 다르게 바이오의 색깔을 바꾼 이후 소니는 당시 유행하던 키워드인 디지털 컨버전스를 바이오의 전략으로 도입한 신제품으로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브랜드 전략의 변화에 따라 모델 이름도 모두 바꾸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동을 걸었고 이는 바이오가 고급 PC 브랜드로 인지하도록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이후 소니는 2008년에 한번 더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고급화하는 전략을 공표한다. 그 이전까지 video audio integrated operation의 의미로 써온 VAIO를 video audio intelligent organizer로 바꾼 것이다. 종전 바이오는 비즈니스 중심의 노트북 세계에서 비디오와 오디오를 즐기는 강화된 하드웨어의 노트북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브랜드 전략 이후는 비디오와 오디오를 즐기려는 이용자의 경험을 발전시켜 줄 더 똑똑해진 소프트웨어와 기능성을 갖겠다는 의미로 확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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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용 파우치와 비슷한 크기로 만든 소니 바이오 P.
분명 바이오는 끝판왕 격인 Z 시리즈처럼 다른 노트북에서 보기 힘든 만듦새와 독특한 재질을 써서 미세한 부분까지 다듬는 특유의 세심함을 갖춘 제품을 내놓는 브랜드였다. 비록 비싸다는 인식의 장벽은 높았지만, 얇고 가벼우면서도 고성능에 만듦새가 뛰어난 제품을 꾸준하게 내놓았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PC, 핸드백에 넣을 수 있는 PC, 카메라처럼 쓸 수 있는 PC 등도 모두 바이오 브랜드로 나왔었다. 지금 울트라북이라 말하는 제품들도 사실 바이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몇년 전에 그와 비슷한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바이오의 혁신성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런데 소니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바이오 브랜드의 제품을 팔고 있지만, 언제나 PC 업계 순위권에서 조금 멀어져 있던 이유는 브랜드 파워에 맞는 전략을 제대로 쓰지 못한 탓이 크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 동안 바이오의 제품군을 보면 다른 PC 업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PC 구매자를 대상으로 삼은 너무 광범위한 제품군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바이오 브랜드의 위상을 끌어내리는 역효과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오는 관리를 받아야 하는 고급 브랜드였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이오는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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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바이오 제품들.
고급 PC 브랜드로서 이미지를 잘 구축했음에도 보급형까지 브랜드 파워를 확장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것 중 하나다. 대중적인 시장을 겨냥해 출시했던 보급형 제품들이 애석하게도 다른 PC 업체와 차별된 특징을 찾아보기 힘든 평범한 제품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고급형의 재질, 두께, 성능을 아우르려는 노력보다 브랜드의 이미지에 의존하려 했고 가격 경쟁력도 낮아 보였던 것이다. 비디오와 오디오의 시청각 중심의 활용에 무게를 두고 접근한 대중화 전략의 강화가 오히려 모바일이라는 특성과 어울리는 히트작을 갖지 못하면서 대중적인 브랜드로 접근하는 시도들이 계속 실패했다. 바이오라는 고급 브랜드에 공감할 만한 대중적 제품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결국 제2의 소니 쇼크를 맞이한 지금 소니는 바이오를 관장하던 PC사업부를 일본산업파트너스(JIP)에 매각한다고 지난 5일 발표했다. 성장은 어렵고 수익률이 떨어지는 현재 상태로는 지난 18년 가까이 길러 낸 정만으로 브랜드를 쥐고 있기란 정말 버거웠을 것이다. 물론 바이오 브랜드는 JIP를 통해서 살아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니 시절의 바이오처럼 수많은 혁신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소니가 아니라면 아마 예전 같은 혁신은 더 이상 만나기 힘들 것이라 마음을 정리하는 쪽이 더 편한 듯하다. 그러니 이제는 떠나는 바이오를 향해 조용히 손을 흔들어 주련다. 바이 바이, 바이오~(Bye Bye, VAIO)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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