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발표된 크롬캐스트를 보며 많은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종전 TV와 모바일 장치의 연결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개는 크롬캐스트가 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장치에서 웹 비디오를 쉽게 시청할 수 있으며 TV와 모바일 장치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데다 개발자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는 확장성을 칭찬하고 있다. 물론 장치 안의 컨텐츠를 재생할 수 없는 점, 모바일 장치의 화면을 미러링으로 내보낼 수 없는 점 등 한계와 단점도 지적하고 있지만, 어찌됐든 크롬캐스트가 스마트TV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스마트TV를 부르는 관점까지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게 만든 크롬캐스트가 모바일 장치와 TV를 쉽게 연결해주는 유일한 방식일까? 그 이전에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던 걸까? 단언컨데, 그것은 아니다. 사실 모바일 장치의 컨텐츠를 버튼 한번으로 TV에서 볼 수 있는 기능은 삼성, LG, 소니도 이미 그들의 모바일 장치와 TV에 넣어놓았다. 그렇다면 왜 이용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쓰지 않을까?
모바일 장치의 컨텐츠를 TV에서 보는 과정
오랫 동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제조사들은 네트워크나 인터넷 연결 기능을 갖고 있는 TV와 연계한 컨텐츠 재생 기능을 각 장치가 가진 차별화된 기능으로 다듬어왔다. 대부분 TV와 모바일 장치를 DLNA로 인식하고, TV에서 모바일 장치의 컨텐츠를 실시간으로 불러와 표시하는 동시에 모바일 장치가 TV에서 재생되고 있는 컨텐츠의 탐색과 재생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해 놓았다.
예전엔 이런 기능이 모바일 단말기에 들어 있는 전용 앱(올쉐어나 스마트쉐어 등)을 통해서만 쓸 수 있었고 TV와 연결 과정이 비교적 복잡했으나 지금은 비교적 과정 자체는 쉬워졌다. 모바일 장치를 만드는 제조사가 1년 전부터 전용 앱 대신 동영상이나 사진, 음악 등 일반적으로 많이 실행하는 플레이어 안에 해당 기능을 분리해 넣었기 때문이다. 즉, 영화를 보다가 장치로 보내는 버튼을 누른 뒤 DLNA가 되는 표시 장치를 누르기만 하면 해당 장치에서 컨텐츠를 재생한다.
DIAL(DIscovery And Launch)라는 방식으로 손쉽게 연결된 경우에도 크롬캐스트처럼 TV와 모바일 장치는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즉 TV에서 재생되는 컨텐츠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바일 장치가 특정 앱을 고정해 띄워 놓을 필요는 없이 원하는 작업을 해도 된다. 다만 장치의 데이터를 TV가 실시간으로 읽고 있는 만큼 네트워크 연결 속도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모바일 장치의 데이터를 TV에서 보는 방법 면에서 크롬캐스트와 비교해 큰 차이는 없다.
제품이 가진 메시지의 차이
크롬캐스트가 모바일 장치에 있는 컨텐츠를 볼 수 없다는 기능적 제한을 갖고 있는 만큼 위에서 설명한 방식은 모바일 장치의 컨텐츠를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의외로 쉬운 방법이지만 크롬캐스트와 관련된 의견이나 리뷰를 보면 이러한 이를 보완하는 기능에 대한 소개나 설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용 환경에 따라 컨텐츠 스트림을 TV에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생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TV와 크롬캐스트라는 제품에 담겨진 메시지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크롬캐스트의 특징을 다시 돌아보자. 크롬캐스트는 메시지가 단순하고 명확하다. 인터넷의 컨텐츠를 좀더 쉽게 즐길 수 있는 값싼 장치다. 크롬캐스트가 재생할 수 있는 컨텐츠는 인터넷 주소를 통해 스트리밍이 가능한 영상과 음악, 그리고 SNS의 사진이다. 서비스로 구분해 보면 유투브의 영상, 구글 플레이의 영화와 음악,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영화, 구글 플러스의 사진 등이다. 이런 서비스의 컨텐츠는 형식이 고정되어 있고, 그것을 벗어나는 컨텐츠에 대한 재생을 책임지진 않는다. PC의 크롬브라우저는 좀 다르지만, 모바일 장치를 이용하는 이들은 유투브, 넷플릭스, 구글 플레이 음악 등 일부 서비스 앱을 통해 크롬캐스트에서 컨텐츠를 재생할 수 있는 만큼 그 한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호환 가능한 컨텐츠의 폭은 좁지만, 그럼에도 단돈 4만 원이면 이용자가 보고자 하는 인터넷 컨텐츠를 손쉽게 TV에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게 크롬캐스트가 보여준 메시지다.
하지만 TV가 갖고 있는 메시지는 다르다. TV의 기본 메시지는 다양한 방송 신호를 잡아서 보는 장치다. 고화질, 고품질 영상과 소리가 들어 있는 방송 상품을 보는 장치이지, TV 자체가 크롬캐스트 같은 새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장치를 거쳐야 하는 미디어 스트리밍은 TV의 부가 기능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컨텐츠 호환성, 활용할 수 있는 장치의 수, 응용 프로그램의 확장성 등에 소홀한 측면이 있는 게 현실이다. TV를 바라보는 초점은 화질이나 음향 같은 고전적 요소에 맞춰진 터라 결국 TV에서 읽을 수 있는 새 시대의 메시지란 여전히 화면 표시 기술이나 음향 처리 기술이 달라질 때 새로운 가치를 가진 TV에 가까운 메시지가 읽히는 것이다. 여기에 만듦새, 브랜드 가치인가에 따라 우리는 수십 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내고 TV를 산다. 결국 TV의 오래된 메시지를 깰 수 없기에 끊임 없이 확장되고 있는 TV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셈이다. 물론 스마트TV처럼 기존 TV가 갖고 있는 메시지를 바꾸려는 시도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모바일과 인터넷에 의해 시청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지 못하는 까닭에 어느 업체도 ‘스마트’라는 메시지를 함께 주입하는 데 의미 있는 결과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삼성, LG, 소니 같은 전통적인 TV 업체는 물론 심지어 스마트TV 플랫폼에 도전하는 구글 조차도 말이다.
그렇다면 TV의 메시지는 그대로 둬야 할까, 아니면 바꿔야 할까? 이렇게 단순한 형태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새로운 학습의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TV의 오래된 메시지를 새로운 TV에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경험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크롬캐스트처럼 그런 일을 돕는 장치가 많아질 수록 그런 경험이 포함된 TV를 생각하게 될 때 메시지가 바뀌게 되지 않을까? TV의 적은 크롬캐스트를 포함한 모든 컴패니언 장치들이 아니라 바로 오래된 관습을 바꾸지 못하는 TV에 있는 것일 게다. 이러한 오래된 메시지를 깨고 더 많은 포용력을 지닌 TV가 되려고 할 때 TV의 메시지는 달라질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Be First to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