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강제적으로나마 케이블 TV를 보지 않게 된 게 벌써 5년이나 지난 듯하다. TV를 보는 습관이 거실에서 모바일로 바뀌다보니 집으로 들어오는 지상파 방송을 빼고 다른 방송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는 사라진 것도 더 이상 케이블 TV를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일 듯하다. 물론 가끔씩 지상파를 대신할 채널의 필요성을 느끼긴 한다. 그럴 때마다 케이블 TV를 다시 들여놓을 가능성을 높인다기보다 지금 모바일로 보는 방송 서비스를 TV에서 볼 수 없을까 하는 고민만 더 늘어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해결책이 나왔다. 미라캐스트처럼 화면 복제 기능을 통해서 모바일 장치의 화면을 TV에서 똑같이 볼 수 있었고, OTT 서비스를 수용한 구글의 크롬캐스트도 그런 해결책 중 하나였다. 둘다 보완재로 쓰는 데 크게 모자람은 없어 보였다. 여기에 오랫동안 이용해 오고 있는 티빙의 OTT(over the top) 제품인 ‘티빙 스틱’이라는 다른 보완재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 해에 나올 거라 기대했던 티빙 스틱을 인터넷 장터에서 주문해 손에 넣은 건 불과 한달 전의 일이다. 1년이라는 시간을 지체한 만큼 변화는 많아 보인다. 단조로운 빨간 몸통의 만듦새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올려 안정성을 높인 점, 미라캐스트 같은 기능까지 덧붙이는 등 확실히 초기의 티빙 스틱에 비해 달라진 점이다. 모바일 티빙이 크롬캐스트를 지원하는 바람에 따로 리모컨 앱을 깔아 TV 화면을 보며 조작하는 점은 껄끄럽긴 해도, 블루투스로 연결해 어떤 방향에서든 티빙 스틱의 메뉴와 설정을 어렵지 않게 불러내고 무리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제법 애쓴 듯이 보인다.
그렇다해도 내가 초점을 맞춘 것은 만듦새나 기능의 문제가 아니다. 모바일로 즐겨 보고 있는 티빙을 거실로 가져와도 좋을 만큼 준비됐느냐는 점이다. 사실 티빙이 크롬캐스트를 통해 거실 진입을 시도했을 때 지상파 채널과 저작권이 걸린 컨텐츠가 모두 제거된 반쪽 자리 서비스로 등장한 것에 크게 실망했었다. 지상파와 관련 채널, 그리고 저작권이 걸린 VOD 컨텐츠를 보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는 상황인 모바일 티빙과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실망은 티빙 스틱에도 이어진다. 지상파 채널과 관련 채널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저작권에 따라 스포츠 채널이나 CGV 채널도 종종 채널 목록에서 사라진다. 지상파의 VOD도 티빙 스틱을 통해서 볼 수 없다. 비록 모바일과 다른 고화질로 볼 수 있는 점과 5만 개의 컨텐츠를 볼 수 있다는 티빙이라지만, 중요한 순간 볼 수 없는 채널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 상태다. TvN 같은 CJ 케이블 채널의 열혈 시청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선을 잘라내고 싶은 일반 이용자에겐 이상한 채널 구성으로 보일 듯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할 대목은 미라캐스트가 공존하고 있는 점이다. 일부 채널을 볼 수 없는 티빙의 문제를 완전히 덮을 수 없더라도 모바일 티빙의 화면을 TV 화면에 복제하는 미라캐스트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보완은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해도 티빙 스틱으로 직접 인터넷에서 영상을 끌어오는 것에 비하면 화질이나 부드러운 재생 속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미라캐스트와 연결해두는 동안 모바일 폰이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하다.
그런데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티빙 스틱도 어쩌면 억울한 면이 있을 게다. 케이블 TV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테고 모든 채널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둘러대기 좋은 말일 뿐, 정작 케이블 선을 끊고 TV를 보는 일관된 방송 시청 환경을 바라는 이용자에겐 통하지 않을 말이다. 티빙이 모바일이든 OTT 장치든 선 없이 TV를 볼 수 있는 경험의 일관성이 유지할 수 없는 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긴 어렵고, 티빙 스틱도 만듦새를 살펴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서비스되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다뤄져야 한다.
솔직히 티빙 스틱의 만듦새나 기능, 연결성과 조작성, 심지어 가격까지 어디에서도 크게 부족한 점을 찾기 어려운 제품이다. 물론 앱 화면을 보면서 조작하는 꺼림칙한 리모컨 방식은 좀더 손봐야 하지만, 적어도 기능의 구성과 작동 성능에 비하면 이 값이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제품에 후한 평가를 내릴 수 없는 데는 서비스의 핵심 가치를 티빙 스틱에서 싣지 못한 데 있다. 무선으로 방송을 보게 하는 티빙의 시도는 높이 사지만, 우리나라 방송 서비스의 높은 벽에 선을 잘라낸다(Code Cutting)는 의지만으로 뚫지는 못하는 듯하다. 때문에 티빙스틱 쓰고 유료방송 끊어도 좋다는 말을 꺼내긴 이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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