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랜(Wi-Fi) 없이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같은 장치를 쓰는 것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무선 랜은 생활밀접형 데이터 망이 된지 오래다. 때문에 무선 랜에 연결된 장치에서 쓰는 서비스도 적지 않게 쏟아지고 있다. 단순히 인터넷 서비스만이 아니다. IP 기반의 음성 통화라고 예외라고 할 순 없다. 무선 랜으로 인터넷 집전화를 대신하는 것은 물론 스카이프, 바이버, 행아웃, 탱고 등 서비스 가입자끼리 서로 음성 통화를 할 수 있는 서비스도 꾸준히 나온다.
구글도 구글 토크와 행아웃을 거치며 가입자간 통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을 오래 전부터 확보하고 있었지만, 구글 가입자간 통화만 할 수 있는데다 다른 서비스와 마찬 가지로 네트워크의 한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서비스에 처음 연결된 무선 랜의 범위 안에서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근처에 신호가 더 강한 다른 무선 랜이 있어도 보안과 기술적인 문제로 그 무선 랜을 자동으로 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서비스 이용 중 다른 무선 랜을 잡거나 무선 랜의 범위 밖으로 나가 3G나 LTE 같은 이동 통신망과 연결되면 모든 서비스는 중단된다. 비록 3G나 LTE 같은 이통망으로 연결되더라도 일단 서비스는 끊어지기 때문에 이용자는 다시 접속해야 한다. 무선 랜에서 다른 무선 랜, 또는 이통 망처럼 성질이 다른 통신 망으로 갈아 탈 때 망과 기지국을 전환(handoff)하는 그런 개념이 무선 랜에는 없기 때문에 음성 통화 같은 연속적인 서비스에서 한계가 있는 것이다.
3G나 LTE 같은 이동통신의 기지국도 전파의 범위가 있지만, 이용자가 움직이면서 휴대폰으로 통화할 때 아무리 멀리가더라도 끊어짐 없이 통화할 수 있는 것은 더 신호가 좋은 기지국으로 연결을 자연스럽게 넘겨주는 기지국 전환을 할 수 있어서다. 구글이 프로젝트 파이(Project Fi)를 내놓은 핵심은 바로 이 무선 랜과 무선 랜, 무선 랜과 이동통신망 같은 이종망에서 망 연결을 끊지 않고 기지국을 전환하는 것이다. 구글은 관련 기술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피하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는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를 무선 랜과 무선 랜, 무선 랜과 이동통신망의 기지국 전환으로 끊어짐 없이 서비스할 수 있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기지국 전환 기술은 단순히 구글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구글이 좋은 기술을 지니고 있어도 여기에는 이동통신사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기지국과 무선 랜 AP의 기지국 또는 망 전환에 필요한 정보를 이통사가 제공해야 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무선 랜을 이통망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통사에게 꽤 복잡한 일이라는 점이다. 안정적이고 질 좋은 서비스를 해야 하는 이통사에게 있어 이 기술은 모험에 가까운데다 그들의 수익을 까먹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록 음성과 문자가 거의 무료에 가까워지는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구글 같은 대형 서비스 사업자를 통한 모바일 인터넷 전화의 전면 허용을 쉽게 결정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서 3위와 4위 이통사업자인 스프린트와 T모바일이 구글 프로젝트 파이에 참여한 것은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단순히 구글에게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망을 임대해준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무선 랜과 기지국 전환에 필요한 실험에 공동 참여한 덕분이다. 프로젝트 파이가 스프린트와 T모바일, 무선 랜 중 망 신호가 가장 좋은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실험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통사업자의 자세다. 프로젝트 파이로 연결된 스마트폰은 Fi Network라는 표시를 띄운다. 망 사업자 표시가 없는 것이다. 비록 3, 4위 사업자라도 프로젝트 파이에서 망사업자를 지워버린다는 것은 이용자가 더 이상 망에 연연하지 않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구글 보이스까지 이용하면 전화번호마저 클라우드를 통해 태블릿이나 노트북 같은 장치에서 공유하는 형태로 바뀌므로 단말 중심의 이통사 비즈니스는 적지 않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 파이가 성공한다면 수많은 비용을 들여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는 지금의 사업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구글이 프로젝트 파이를 발표한 뒤 T모바일은 블로그를 통해 미국의 무선 사용자와 T모바일에게 업계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이 좋은 일이라며 구글과 팀을 이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사실을 반겼다. 비록 T모바일의 HD 음성 통화나 무선 랜 음성 통화에서 이동 통신 기지국 전환 같은 기술이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지난 해 가을 무선 랜 연결을 할 수 있는 T모바일 타워를 이용하는 프로젝트 파이를 통해 이용자는 무선 랜과 이통망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을 오히려 환영했던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 파이가 당장 이통시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진 않다. 이를 쓸 수 있는 단말기도 넥서스6 하나 뿐이고 아직은 품질도 검증되지 않은 프로젝트기 때문이다. 무제한 음성, 문자를 포함한 기본료 외에 미리 낸 데이터 요금도 쓰지 않은 만큼 돌려받는 정책이 얼마나 소비자를 자극할지 미리 단정지을 수도 없다. 프로젝트 파이와 경쟁하는 요금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스프린트나 T모바일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AT&T나 버라이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기 때문으로 깎아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후발 주자 또는 시장 지배력이 약한 사업자가 시도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 해도 데이터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이동통신 환경에서 이들은 먼저 도전을 시작한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대부분의 이통사가 더 빠르고 질좋은 네트워크를 위해 투자하고 더 강한 브랜딩을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으면서 소비자 요금을 올리는 사이 이들은 비용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서비스 사업자를 통해 그 수익을 거두는 사업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망 중립성의 기본 가치를 지키면서도 어떻게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처럼 미국 이통사가 혁신적 파괴를 하는 것과 달리 우리의 관점은 구글이 값싸게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 이통망사업자에 진입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 안에 숨어 있는 이통시장 질서를 흔들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선 거의 조명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가 우리 더 암담하게 만든다. 프로젝트 파이는 이통사의 밥그릇을 흔들 새로운 사업 구조를 낳을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지만 이동통신사를 보호하는 우리 통신시장에서 과연 기회가 있을지 의문이라서다.
우리나라 알뜰폰 사업자도 종전 이통사의 망을 빌려 사업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두 개의 이통 망을 빌려 쓰면서도 무선 랜과 망 전환을 할 수 있으며 하나의 번호를 모든 하드웨어에서 쓸 수 있는, 음성과 문자를 무제한으로 서비스하면서 쓰지 않은 데이터 요금을 돌려주는 알뜰폰 사업자의 출현이 가능할까? 글쎄.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 몇이나 될지 모를 일이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의 데이터 용량을 제한하면서 모든 장치마다 전화번호를 부여해 기본료를 챙기는 통신사업자의 모습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고객 혜택은 줄이면서 요금은 올리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브랜드 광고에만 열을 올릴 우리의 이통시장에서 프로젝트 파이 같은 자기 파괴적 행위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을 지도 모른다.
단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옹졸한 통신 사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수익에 연연하다 결국 카카오톡과 라인에게 모두 빼앗긴 메시지 시장이 남긴 교훈을 잊었다면 똑같은 교훈을 한번 더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애플은 아이폰5부터 이런 기술을 폰에 자체적으로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혹시 HD 보이스를 같은 기술로 잘못 이해하고 계신건 아닌지요?
facetime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번호가 아니라 애플 계정만 있으면 화상통화를 할 수 있어요. 맥락은 비슷한 것 같아요. 다만 구글은 번호 중심이어서 혹시라도 아이디를 다시 만들거나해도 크게 지장이 없는 면에서 좋을 것 같네요. 애플계정은 자유도가 없어서, 계정 잃어버리면 기존 계정 두고 다시 만들어야되는 부분이 좀 짜증나더라구요… 찾기도 힘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