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용산에 있는 지인의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아주 재미있는 장치 몇 개를 발견했다. 어렵게 긁어 모은 130개의 노트북 중에 10~20년 전에 봤던 희귀한 모바일 제품들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 조차 이 제품을 모두 써본 것은 아니다. 단지 그래도 그 제품이 있었던 시대를 살았던 때문에 어렴풋이 기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PC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요즘 세대들에게 그 때의 모바일PC는 어쩌면 단순한 고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이 제품들은 진정한 혁신의 제품들이었다. 그곳에 있던 수많은 제품 중에서 딱 다섯 가지만 간략히 소개한다.
HP LX200. 1994년에 만들어진, 팜탑컴퓨터라고 부르던 PDA였다. 7.91MHz 80186 프로세서(오타 아님)에 1~4MB의 램을 넣었고 640×200 해상도에 백라이트도 없는 LCD 화면을 쓰고 있었다. 일반적인 노트북의 25% 미만의 크기였는데, 이 제품은 흥미롭게도 2A배터리 2개로 40시간 정도 작동한다. PCMCIA 슬롯이 있어 모뎀도 연결 가능했다. 로터스 1-2-3과 일정, 전화번호부, 터미널 등이 롬에 담겨 있었고 쿼티키보드로 바로 입력과 수정할 수 있었다. 또한 MS-DOS 호환 응용 프로그램도 돌릴 수 있었다. HP LX200은 1991년 HP 95LX와 100LX에 이은 세번째 버전이다.
도시바 리브레또 60. 1996~1999년 사이에 나왔던 리브레또 초기 모델 중 하나다. 리브레또 60은 펜티엄 133MHz로 오버클럭 할 수 있는 100MHz 프로세서에 16MB 램, 810MB의 하드디스크 등을 채택하고 무게는 고작 850g 밖에 나가지 않았다. 640×480 해상도의 6.1인치 컬러 TFT 화면을 달았고 외부 모니터를 연결하면 1024×768 해상도의 그래픽을 출력할 수 있었다. 나는 AMD 프로세서를 넣은 리브레또 30을 썼는데, 리브레또 60이 더 좋은 점은 성능과 더불어 키보드였다. 성능이 당시 노트북과 비슷하면서 크기는 엄청 작고 가벼워 상당한 관심을 끌었던 제품이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HP TC1000. HP에 인수되기 전 컴팩에서 2002에년 생산된 제품이다. 아마 이 제품은 다른 제품에 비해 덜 낯설 텐데, 그 이유는 삼성과 애플이 갤럭시탭의 디자인 특허를 둘러싼 법정 공방 중에 선행 디자인으로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는 제품이라서다. TC1000은 전용 펜을 이용해 화면에 터치할 수 있는 태블릿이다. 이 태블릿에 적용된 와콤 펜 기술은 지금 갤럭시 노트에 쓰고 있는 S펜 기술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트렌스메타 프로세서를 썼다가 나중에 셀러론 계열로 바뀌었다. 키보드와 분리되는 하이브리드로 완성도가 매우 높았던 터라 당시 디자인 어워드는 거의 다 휩쓸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제품을 LG에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2005년에 단종.
소니 바이오 UX. 미니멀리즘의 대명사인 소니가 2006년에 공개했다. 제품으로 바지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PC 컨셉의 제품으로 당시 소니 코리아 대표가 바지에서 꺼내어 보여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니 바이오 UX의 4.5인치 감압식 터치스크린을 위로 올리면 그 아래 물리 키보드가 나타나 엄지로 글을 입력할 수 있었다. 크기와 무게에 있어선 정말 충격적인 제품이었으나 값은 상상이상. 인텔 코어 솔로 프로세서에 램 512MB, 30GB 하드디스크 등을 달았는데, 그 이후에는 통신 모듈과 SSD를 대체한 제품도 나왔다. 운영체제는 초기에 윈도 XP를 썼고, 나중에는 윈도 비스타를 얹었다.
IBM 씽크패드 트랜스노트(TransNote) 2675. 이 제품은 빔 프로젝션 기능이 있던 씽크패드 701과 함께 정말 희귀한 제품이다. 2001년에 생산된 제품으로 컨셉 자체가 오묘하다. 트랜스노트는 PC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오른쪽에 노트가 함께 있다. 이 노트에 펜으로 글이나 그림을 그리면 왼쪽 싱크패드에 비트맵 이미지로 입력된다. 펜 스캐닝 기능이 있는 셈이다. 화면에 직접 그릴 필요 없이 곧바로 이미지화되지만, 화면 자체도 터치 기능은 있었다. 다만 10.1인치의 화면이었지만, 800×600으로 해상도가 낮았을 뿐이다. 화면은 접고 펼 수 있게 만들었고, 화면을 접은 상태에서 노트가 있는 쪽을 덮으면 그대로 잡지처럼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당시 가격은 3148달러로 전해지는 데 국내에는 몇 대 있지 않았다고 한다. 600MHz 펜티엄 3 프로세서와 128MB 램, 10GB 하드디스크, ATI 래이지 모빌리티 M 그래픽 칩셋, 윈도 2000 프로페셔널 등 제원을 갖추고 있었는데, 당시 성능으로는 매우 뛰어난 제품이었다.
이 외에도 신기한 제품은 더 많이 있다. 단지 수많은 노트북 중에 색채가 확실한 모바일 제품만 고르다보니 다섯 제품만 소개했을 뿐이다. 이들 제품은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제품이지만, 오히려 보기 힘든 제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는다. 이들 제품 가운데 판매량을 따져서 크게 성공했다고 말할 만한 제품은 없다. 물론 나름 세운 목표치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했을 수는 있지만, 흐름을 확 바꿨을 제품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제품들을 기억하는 이유도 아주 단순하면서 분명하다. 적어도 이 제품들만큼 ‘혁신’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는 모바일 PC가 적다는 점이다. 현 시점의 이용 환경과 비교하면 이 제품들도 장난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이 제품들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정점에 다다른 PC들도 수많은 혁신을 거치며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이 제품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임 #
여러분이 알고 있는 혁신적인 모바일PC는 무엇이 있는가?
소니의 저런 제품은 지금쯤 제대로 다시 나와야 하는데 말이죠 ㅠ_ㅠ
이제는 그 자리를 스마트폰이 대신할 거 같네요. 아무래도 지금은 창의력 돋는 제품보다 많이 파는 제품부터 내놔야 하기에…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랫만에 보는 녀석들이 좀 보이는군요 ^^
오랫만이라 하심은… 흐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난 어려서 이런 거 본 적 없음.
늑돌이님은 항상 농담이 지나치세요. ㅋㅋㅋ 올해도 젊게 사시길~ ^^
저 제품 가운데 리브레또30과 TC1000, 바이오UX는 제 손을 거쳐간 기기로군요. UX 후에 저는 라온디지털의 베가 로 옮겨갔죠. 그리고나서 아이패드1 -> 맥북에어의 태크트리를 밟았네요^^
사실 베가도 요즘 세대 제품이나 다름 없죠.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그래도 뭐니뭐니해도…ibm의 충격적인 일명 ‘버터플라이’ 라 불렸던 TP-701이 정말 획기적이었죠. LCD를 들어올리면 본체에서 키보드가 펼쳐지면서 나왔던..
정말 좋았는데..
사실 701도 올릴까 하다가 아는 분들 많을 거 같아서 참았는데… 올릴 걸 그랬네요. 확실히 대단한 제품인 것은 분명했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 사이에 있던 모디아, 조나다, 시그마리온이 없어서 아숩네요.ㅎㅎ”
저 역시 문화컬쳐는 버터플라이인 701을 뽑겠습니다. 🙂
역시.. 701을 뺀 건 실수였나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아요~ ^^
연륜이 느껴지는 포스팅이네요 ㅋㅋ
저도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는 제품들 뿐이라는
아.. 염치도 없으셔라~ 그래요. 올해는 더 어려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모디아가 없어서 조금 아쉽네요 ㅋ
군대에 있을때 외부업체 사람이 들고온거 보고 뻑갔는데 말이죠 ㅋㅋ
그나저나.. 이제야 win8 태블릿 노트북이 나왔으니 TC-1000/1100이 얼마나 앞서갔던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S펜이라고 하는게 참.. 마음에 안들어요 ㅠ.ㅠ
와콤 타블렛을 그렇게 까지 고유명칭화 시키는게 말이죠.
그곳에 모디아가 없었으니까요. ^^
TC1000은 많이 앞서 나갔지만, 역시 더 혁신이 필요한 제품이기도 한 거였죠. 성능이나 가격으로나.. ㅎㅎ
저는 셀빅 XG로 PDA의 세계에 들어온 이래, 약 6종의 PDA를 거쳐서 아이폰에 정착했습니다.
컴팩이나 HP 등등도 많이 써봤지만, 기억에 남는 건 셀빅에서 XG이후에 야심차게 내놓은 셀빅 큐브입니다. 당시에는 정말 엄청난 성능의 기기였는데, 국내 통신시장의 벽을 뚫지 못해서 회사까지 날아가버린 비운의 케이스였지요.
지금도 이 기기들은 돌아가기는 하는데, 오늘날의 iOS나 Android에 비하면 Windows CE는 정말 몹쓸 운영체제다 보니 꺼내어들지는 못하겠네요.
셀빅은 이곳에 없었는데, 참 한 획을 그은 기기인 것은 맞지요. 팜 파일럿을 밀어낸 능력도 인정. 그런데 그 회사 날아간 건 통신 시장의 벽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
보도자료에서만 봤던 소니 제품도 있네요!! ㅎㅎ
재밌게 보고 갑니다.
보도자료도 재미있었을 거에요. 제품이 재미있었으니까요. ^^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
Sony Vaio pcg-u1 을 약 7년 전에 중고로 구입하고 사용했었습니다. 지금은 고장나서 이것 저것 분해
해보고 빈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할 때 며칠 사용하고 나면 항상 부팅시 먹통이 되어
며칠에 한번씩은 윈도우 시스템복원을 했던 기억이… 6.4 인치,winxp,800g 이 가능 했던 디바이스..
오~ U1이면 트랜스메타 프로세서를 쓴 건가요. 그것도 들고다니긴 편한 크기였는데 말입니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니 아쉬움이.. 아무튼 시간도, 기술도 빨리 변하는 세상인 듯 합니다. ^^
라온IT에 가셨군요 저번에 SSD 교체했었습니다.
200LX는 제가 가진것 외에는 거기서 처음 봤었구요
신기한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많은 PC를 모아서 그곳에 전시한 열정 넘치는 지인 덕분에 초기에 몇번 갔었습니다. 신기한 제품이 계속 추가될 테니 자주 들러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