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그러니까 10월 9일이군요. LCD 모니터와 TV의 패널 보증 기간을 2년으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재경부 고시가 나왔습니다. 이는 LCD 모니터의 품질 보증 기간이 1년이라도 LCD 패널만은 2년의 품질 보증 기간을 갖는다고 지정한 겁니다. 예를 들어 모니터를 켰는데 잔상이 남거나 떨림이 생긴다.. 이런 문제들이 2년 안에 발생하면 고쳐줘라 이런 얘깁니다.
늦기는 했지만, 일단 LCD 패널에 대한 품질 보증 기간을 정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종전에는 규정이 없어서 모니터 품질 보증 기간이 끝나면 패널은 제 돈 주고 갈아야 했기 때문이죠. 앞으로 모니터 사는 사람들은 안심하고 쓸 수 있게 된 것 같긴 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번 보증 기간 규정은 상당한 맹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LCD 모니터에 대한 패널 보증 기간과 보증 시간의 합리성 결여와 발표 이전 모니터에 대한 품질 보증 확대 누락, 노트북 LCD의 제외,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이번 발표가 권고 사항이라는 점입니다.
이날 확정된 LCD 모니터 패널 품질 보증 기간은 2년에 5천 시간입니다. CRT보다 기간과 시간이 절반으로 깎였습니다. 종전에 CRT(CDT) 모니터도 모니터 품질 보증 기간과 별도로 CRT에 대해서만 따로 품질 보증 기간을 뒀습니다. CRT는 4년, 1만 시간의 품질 보증 기간을 뒀던 것이죠. 하지만 LCD 모니터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뿌려지는 동안에도 LCD 패널의 품질 보증 기간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재경부가 소비자 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이제야 확정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왜 CRT와 LCD의 규정을 다르게 정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소비자 정책심의 위원회에서는 LCD 패널이 CRT와 구동 방식이 달라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는 처음 분쟁 때 소보원 분쟁 위원회가 내린 의견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모든 LCD 패널의 수명은 대개 5만 시간을 넘기고 있습니다. CRT 역시 수명은 5만 시간이었습니다. 수명은 같은 상황에서 단지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핵심 부품의 품질 보증 기간을 줄인 것은 누가 납득을 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이번 발표에서는 BLU(백라이트 유닉)에 대한 보증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는데요. BLU 역시 LCD 모니터의 핵심 부품입니다. 만약 1년이 지난 뒤 LCD 모니터에서 빛 샘 현상이 생기거나 밝기의 차이가 생긴다면 이에 대한 AS를 거부하더라도 해도 할말이 없게 됩니다. 이에 대한 문제가 생긴 이들은 귀찮더라도 소보원 등을 통해 분쟁 조정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5천 시간이면 아마 하루 종일 PC 앞에 작업하거나 늘 모니터를 켜두는 사람, 그리고 TV와 사랑에 빠진 이들은 1년도 안돼 품질 보증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니터를 매일 6.85시간씩 2년 동안 켜두면 딱 5천 시간입니다. 13.7시간씩 켜두면 1년이고요. 오전 9시에 출근해 모니터를 켜고 저녁 6시에 퇴근할 때 모니터를 끈다면 5천 시간을 채우는 데 555.6일이 걸립니다. 2년도 채 가지 않는 것이지요. 하루 종일 켜둔다면 208일 밖에 안됩니다. 1년도 안돼 모니터 보증 기간이 끝나게 됩니다. 1만 시간이라면 그나마 낫습니다. 앞에서 계산한 날자보다 딱 2배씩 늘테니까요.
어째서 1년도 됐는데 모니터와 TV의 보증 기간이 끝나냐고 궁금해 하실 분들이 계실겁니다. 그 이유는 이날 발표한 부칙 중에 ‘단, 소비자가 확인 가능한 타이머가 부착된 제품으로 5,000시간을 초과한 경우에는 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함’이라는 단서가 붙은 탓입니다. 1년 이내라도 보증 시간을 넘겼으면 모니터든 TV든 더 이상 보증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타이머가 달린 TV나 모니터에 한해서입니다. 10월9일 이후에 나온 타이머 없는 모니터나 TV를 샀다가 2년 안에 패널 문제로 수리를 맡기려 할 때는 절대로 하루에 6시간 이상 썼다고 하시면 안됩니다.
이 발표에 신난 건 모니터와 TV 업체뿐입니다. 거의 모든 업체가 혜택을 보는 것이기에 가타부타 말들이 없는 법입니다. 더구나 권고 사항이니 따를 의무도 없습니다. 대기업은 따른다지만… 글쎄요.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보낸 대형 모니터, TV 제조 업체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중소 기업 중에는 얼마전 유니텍이 앞으로 자신들이 팔 모니터는 보증 기간을 3년으로 한다고 발표했을 뿐 역시 감감 무소식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날 발표 이전의 LCD 패널 무상 보증 기간은 어떻게 되느냐 입니다. 이는 잠정적으로 소비자 보호원의 지침을 따르면 되지만, 이 역시 강제적 사항은 아니니 참고 바랍니다. 이번 판결이 있기전 소비자 보호원 분쟁 위원회에서는 LCD 패널의 보증 기간을 2년으로 하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바가 있습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2년 이내에 제품을 샀는데 LCD 패널에 문제가 있다면 소보원에 가서 조정 사례를 찾아보시고 업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보원의 조정을 받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어떤 모니터 업체든 2년 동안 예비 LCD 패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즉, 모니터가 단종되고 새 모니터를 출시하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패널을 보유할 뿐이어서 단종 뒤 2년 안에 패널 AS는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특히 특수 크기, 예를 들어 22인치 이상 모니터들은 더더욱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17, 19인치 모니터와 달리 22인치 와이드 모니터들은 특수한 시장을 겨냥한만큼 재고의 여유분을 두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른 업체는 모르겠습니다만, 1년 4개월 전에 산 23인치 LG 모니터에 잔상이 남고 화면이 떨리는 현상이 생겨 LCD 패널 교환을 요청했더니 여유 패널의 재고가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물론 구하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이번 LCD 패널 보증 기간 설정은 눈가리고 아웅식, 탁상 행정의 또다른 예가 될지도 모릅니다. 패널의 수명이라는 상식에서 풀었으면 될 일을 2004년에 내렸던 소비자 분쟁 위원회의 결정 사례를 그대로 따른 것은 시대 착오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사이 LCD 패널 수명이 몰라보게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업체의 자세입니다. 업체들은 알면 해주고 모르면 안해주는데 이번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x10) 높습니다. 또한 패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AS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보증 기간에 대한 뉴스 자체가 크게 나온 것이 아닌데다 권고 사항이므로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모니터 업체들도 재고 부담이나 AS 비용에 대한 이런저런 이유를 달지만, 그걸 모르고 장사하겠습니까. 마치 선심쓰는 것처럼 AS 기간이 지났지만 그냥 해주겠다는 식으로 자기 관리 들어가는 몹쓸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지금 LCD 모니터나 TV를 보시는 분들이나 앞으로 살 계획이 있는 분들은 보증 기간 꼼꼼히 확인하시고 사야만 혈압 오르는 일이 없을 것 같네요.
모니터 중고로 좀 팔려고 했더니 다들 사용시간 물어보는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5천시간 다 채워도 실 수명의 반도 안 쓴 경우일텐데 그딴 기준은 누가 정한건지….
암튼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