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구글이 안드로이드 5.0 롤리팝을 먹인 넥서스6와 넥서스9, 그리고 넥서스 플레이어라는 세 가지 레퍼런스 제품을 출시한다고 했을 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엇부터 사는 게 좋을 것인지 머리를 굴려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다. 그 중 두 가지는 국내 출시가 물 건너 갔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를 긁을 수 있는 제품은 단 하나, 넥서스9 뿐이었다. 지금도 넥서스9만이 유일하게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상품임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넥서스를 모은 레퍼런스 수집가 입장에서 보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사는 것을 막아 돈을 아낄 수 있어 좋은 면도 있는 듯하고, 모든 레퍼런스를 다 모으지 못해 아쉬운 감정으로 조금은 복잡해서다. 어쨌거나 안드로이드 5.0 롤리팝을 좀더 일찍 접하기 위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상황이기는 해도 레퍼런스 수집가의 입장에서 넥서스9의 선택이 무조건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물론 수집가의 입장을 버리고 그냥 안드로이드 제품 리뷰어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넥서스9은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넥서스 9을 접하면서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했던 것은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넥서스9은 첫 64비트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장치이기 때문이다. 64비트 엔비디아 테그라 K1(이하 TK1) 덴버에 아트(ART)라 부르는 새로운 실행 엔진과 64비트 메모리 관리 기능을 덧댄 안드로이드 5.0을 올렸으니 그 궁합이 궁금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솔직히 처음 넥서스9을 받아 몇 개의 앱을 다운로드해 설치했을 때 쓴 맛을 맛봐야 했다. 비록 아주 많은 응용 프로그램을 돌려본 것은 아니지만, 쉽게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힘든 지경이었던 것이다. 특히 몇몇 게임은 실행을 하자마자 튕겨 나가거나 실행한 뒤에 글자가 나오지 않는 등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모든 앱이 곧바로 안드로이드 5.0의 새 실행 엔진에 적응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한달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문제의 앱을 점검했을 때 대부분은 안드로이드 5.0에 맞춰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물론 여전히 실행이 되지 않거나 실행 중 튕겨나가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상태는 아니지만, 처음 같은 난감함은 많이 줄어들긴 했다. 앱 호환성은 시간과 여유를 두고 꾸준히 견뎌내야 할 문제다.
사실 64비트 안드로이드의 호환성 못지 않게 레퍼런스 장치에 처음 도입된 64비트 듀얼 코어 프로세서의 안정성도 무척 궁금한 부분이다. 지금 대부분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쿼드 코어를 넘어 옥타 코어(4+4)를 담아내며 성능 경쟁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이 넥서스9을 위해 고른 듀얼 코어 엔비디아 TK1 덴버는 조금은 모험이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지난 한달 내내 이 태블릿을 쓰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점 중 하나는 처리 장치의 성능에 대해 잊고 지냈다는 점이다. 물론 앱의 실행 속도에서 약간 느린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화면의 반응이나 페이지를 넘기는 애니메이션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진 덕분에 굳이 처리 장치의 성능에 신경을 쓸 이유는 없던 것이다.
그렇다해도 넥서스9은 엔비디아 TK1 덴버에 담은 모든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다 누리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구글이 비록 그래픽 성능이 뛰어난 엔비디아 TK1 덴버를 선택하기는 했어도 엔비디아의 게이밍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담은 앱을 설치해 쓸 수 없으니 말이다. TK1 덴버가 넥서스의 처리 장치를 위해 공급된 것이다보니 엔비디아가 자사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방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쉴드의 이용 경험 탓에 같은 하드웨어 플랫폼을 가진 제품에서 그 모든 것을 쓸 수 없는 것이 마치 반쪽 짜리 같은 느낌이다.
성능이나 기능을 떠나 만듦새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넥서스7처럼 뒤판에 미끄러지지 않은 우레탄 처리를 한 점은 인상적이지만, 지문이 너무 쉽게 남아 지저분하고 손에 잡았을 땐 조금은 두터운 기분이다. 옆 테두리에 약간의 머릿결 질감을 넣은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 밋밋하다. 그리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는 그저 그런 무게다. 전면의 스테레오 스피커의 울림은 의외로 쓸만하고 G3의 노크온처럼 꺼진 화면을 두번 두들기면 장치가 켜진다.
그럼에도 넥서스9을 항상 곁에 두고 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배터리의 대기 시간이 놀라울 만큼 늘어났고 가독성이 좋아진 때문이다. 종전 안드로이드 태블릿들이 배터리 용량이 많아도 대기 시간이 짧아 며칠만 놔두면 방전되어 버리지만, 넥서스 9은 2주 이상을 너끈히 버틴다. 평소 받을 데이터 다 받는 데도 대기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 인터넷 위주 작업을 할 때는 배터리 충전을 자주하지 않아도 된다. 가독성이 좋아진 이유는 안드로이드 5.0 롤리팝에 포함한 본고딕과 넥서스9의 4대 3화면 해상도(2,048×1,560)의 궁합이 잘 맞아서다. 다른 레퍼런스에 올린 것보다 넥서스9에서 글자가 좀더 또렷해 보이는 데 SNS나 메일, 문서 같은 글자 위주 작업은 넥서스9이 좀더 유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넥서스9은 여느 태블릿과 같은 관점으로 비교하면 그저 그런 태블릿 중 하나다. 비슷한 가격의 아이패드와 비교할 때 사실 경쟁자가 될 수 있느냐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단지 넥서스 라인의 관점으로 좁혀 보면 모험심 강했던 초기 레퍼런스 같은 실험작에 가까워진 것은 마음에 든다. 위험 부담은 따르지만 64비트 AP와 운영체제를 얹어 그 성능과 호환성을 경험하게 만든 레퍼런스의 잃어버린 의무를 되살린 기분이다.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태블릿으로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한 것, 그게 넥서스9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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