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된 제61회 MPSE 골든 릴 어워드(MPSE Golden Reel Awards)에서 뜻깊은 특별 공로상이 시상되었다. 영화와 TV 산업에서 활동하는 전문적인 음향 및 음악 편집기사로 구성된 음향편집기사 조합(Motion Picture Sound Editors)은 지난 해 9월에 타계한 레이 돌비(Dr. Ray Dolby) 박사를 기리며, 영상 음향 기술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해 특별 공로상을 수여한 것이다. 이 상을 수상한 고 레이 돌비 박사가 바로 돌비 사운드를 만든 주역이다.
많은 음향 전문가들이 레이 돌비 박사의 공헌을 인정하는 것은 그만큼 돌비 사운드가 영상 음향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와 더불어 다양한 영상물의 각 장면 하나하나의 영상미도 중요하지만, 이 영상미를 보완하는 현장감 또는 현장감에 맞먹는 소리를 더함으로써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두 가지의 조화를 통해 창작자들이 표현하려는 바를 더 정확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돌비 사운드는 우리 일상에서도 그 표시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DVD 플레이어나 콘솔 게임기, 리시버 등 수많은 음향 기기에서 돌비 마크를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심지어 스마트폰에도 돌비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돌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반면, 그로 인한 음향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아마도 이용자들은 돌비 기술이 적용된 영화 같은 영상물을 계속 보기만 할 뿐 그것이 실제로 영향을 어떻게 미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돌비 사운드를 실제 체감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를 가진 영상을 비교 체험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일상에서 이러한 비교 체험을 일부러 할 시청자는 거의 없다.
때문에 돌비 음향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다양한 마케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돌비는 마케팅에 매우 인색하다. 지난 해 작고한 레이 돌비 박사가 마케팅보다 기술에 더욱 집중했던 연구자의 철학을 강하게 갖고 있어서다. 경쟁 관계의 음향 기술들이 마케팅을 통해 돌비보다 더 나은 이미지를 쌓으려는 노력과 다르게 마케팅에 많은 비용을 쏟기 보다 오로지 음향 기술 향상을 위한 기술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돌비는 극장용 음향 기술을 진화시킨 돌비 애트모스와 아울러 모바일 쪽에도 많은 신경을 써왔다. 몇년 전 공개했던 돌비 모바일을 진화시켜 모바일 환경에서도 7.1채널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기술인 돌비 디지털 플러스를 내놓은 것이다. 모바일 환경에서 7.1채널 구현은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하나는 두 개로 쪼개진 이어폰만으로 소리를 나눠서 들려줘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모바일 장치의 특성상 용량이 적은 모바일 컨텐츠 환경에 맞춘 소리 신호를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가 다른 음향 압축 알고리즘과 다른 점은 초당 전송하는 소리의 정보량(비트레이트)를 늘려 오디오 품질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대역폭을 더 넓히지 않으면서 원래 창작자가 담고자 했던 소리를 넣는다는 것이다. 즉, 적은 용량으로도 품질 저하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압축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돌비 디지털 플러스로 영상 컨텐츠를 즐기려면 몇 박자가 더 맞아야 한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가 적용된 하드웨어가 있어야 하고, 그 소리를 담고 있는 컨텐츠가 있어야 하며 전용 플레이어로 재생해야 한다. 아직 하드웨어와 컨텐츠가 많은 상황은 아니다. 지금 돌비 디지털 플러스가 구현된 모바일 장치는 LG G2와 팬택 베가 NO 6, 삼성 갤럭시탭 3 정도다. 돌비로부터 관련 인증을 받은 이런 장치가 있어야 모바일 환경에서도 돌비 디지털 플러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만약 영상 컨텐츠가 아닌 음악에 공간감을 더해서 들으려면 돌비 디지털 플러스를 지원하는 헤드폰과 전용 플레이어를 이용해도 된다. 자브라의 레보 시리즈처럼 돌비 디지털 플러스를 지원하는 헤드폰이나 이어폰, 블루투스 스피커와 전용 음악 플레이어를 이 기술이 녹아 있지 않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도 음장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다만 기본 음악 플레이어로는 불가능하고 자브라에서 제공하는 전용 플레이어를 이용해야만 돌비 디지털 플러스의 공간감 있는 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하지만 돌비 디지털 플러스 헤드폰과 음악 재생 프로그램이 있어도 영화를 볼 수 없다. 음악과 영화 재생에 필요한 돌비의 라이센스는 다르기 때문에 둘을 한꺼번에 지원하지 않는 탓이다.)
돌비 디지털 플러스 컨텐츠도 넉넉하다고 보긴 힘들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컨텐츠를 그리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돌비 디지털 플러스를 처음 시도하는 국가중 하나라는 점이 위안이지만, 이제 막 첫 시도를 한 상황이다보니 많은 컨텐츠와 유통자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돌비 디지털 플러스 컨텐츠는 티스토어에 있는 영화 <광해>와 <도둑들>의 초고화질 버전(1.7~1.8GB)이다. 이 두 가지 상품 페이지에는 다른 영화 페이지와 달리 돌비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를 내려받아 티스토어 무비라는 전용 플레이어에서 재생해야만 돌비 디지털 플러스 옵션을 켜고 끌 수 있다.
그러면 모바일에서 듣는 돌비 사운드는 만족스러울까? 여기에는 컨텐츠와 청취자에 따라 조금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창작자의 의도가 100 % 반영되더라도 청취자가 그것에 100% 동의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돌비가 만들어 배포 중인 자체 샘플을 들어보면 듣는 사람들응 돌비 기술의 의도를 100%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이지만, 상업용 컨텐츠의 평가는 조금 갈릴 수 있다.
얼마 전 돌비 연구소에서 준비한 아이스 에이지를 비롯한 다수의 돌비 디지털 플러스 영화 샘플을 봤을 때 각 상황에서 들려줘야 할 소리를 명확하게 들려주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 수많은 청새치가 날아오를 때의 소리가 때론 날카롭게, 때론 박력있게 귀를 자극한다. 물론 이 영상들은 모두 비공개 샘플이었고 앞으로 외부에 공개될 지 여부는 지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모바일의 돌비 음향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것은 돌비 연구진들이 각 상황에 따라 어떤 소리를 표현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반영해 그 소리를 넣은 샘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 버전의 상업 영화를 볼 때 돌비 연구진의 의도가 아닌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되는데 연구진의 샘플과 거리를 좁히는 소리를 들려주지 못했다. 돌비 옵션을 켰을 때 ‘웅웅~’거리는 공간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오히려 소리의 전달력을 방해하는 듯했다. 이것은 돌비 사운드의 입체감과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를 읽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돌비가 이러한 상업 영화까지 일일이 검수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효과의 품질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돌비의 자체 샘플에서는 충분히 공감을 얻는 것과 달리 하드웨어와 재생 장치 갖춘 환경에서 보는 상업 영화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창작자의 이해 부족이거나 돌비의 관리 범위 밖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라는 데 있을 것이다. 돌비 효과를 통한 일관된 소리를 듣는 것. 돌비 연구소의 컨텐츠와 격차가 나지 않는 상업용 컨텐츠여야 돌비 디지털 플러스의 가치를 더 우선 순위에 놓지 않을까? 모바일 환경에서 영상의 의미를 시청자에게 더 진하게 전달하려는 돌비 디지털 플러스 연구진들의 노력이 단순히 연구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업용 기술로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지 않는 한 시청자들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릴 지도 모른다.
Be First to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