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까운 극장에 가면 쿵후 팬더의 간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391명의 제작자가 2003년 가을부터 2008년 봄까지 4년 반 동안 매달려 완성한 드림웍스 SKG의 최신 애니메이션이지요. 아직 영화를 보진 못해 내용도 잘 모르고 재미 여부를 말하긴 어렵지만, 수많은 인력과 시간, 장비가 투입된 대작이기에 숨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를 테면 한 신을 완성했을 때 쿵후 팬더 제작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포춘 쿠키를 1개씩 받았다더군요. ^^ 포춘 쿠키 이야기는 사실이지만, 그런 뒷 얘기들을 풀어 놓으려는 것은 아니고요. 쿵후 팬더를 만들 때 쓴 모니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애니메이션이나 3D 영상, 그래픽, 사진 처럼 색을 다루는 작업을 할 때 원하는 색을 제대로 표시하는 모니터를 써야 합니다. 우리 눈에는 거기서 거기처럼 보여도 실제 작업하는 이들에게 풍부한 깊이의 색 없이 결과물의 품질을 올릴 수 없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습니다. 문제는 LCD 모니터로는 그 색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많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LCD 모니터들도 정작 스튜디오에서 퇴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드림웍스 SKG도 LCD 모니터를 도입했다가 다시 CRT로 옮겨 갔던 적이 있습니다. 슈렉을 만들 때 LCD 모니터를 쓰던 도중 컬러 랜더링 뒤의 결과물에서 색깔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시 CRT로 돌아갔다더군요. 훨씬 많은 컬러 효과를 쓰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3D 애니메이션하면 그 세밀함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만 초점을 맞추던 것과 달리 이처럼 색깔에 민감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색이 필요하기에 CRT로 돌아간 것일까요? 대부분의 LCD 모니터들이 24비트, 그러니까 1천670만 개 색을 표현한다고 자랑하지만, 스튜디오에서는 그것 갖고는 어림없다는 투입니다. 더 많은 색, 모든 영역을 덮을 수 있는 색을 요구한 것이지요. 전문적인 산업 표준을 수용할 수 있는 모니터를 원했는데, 드림웍스의 요구, 아니 협력에 따라 하나의 LCD 모니터를 HP가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HP의 드림컬러 LP2480zx지요.
HP와 드림웍스가 2년 동안 진행했던 협업 프로그램(드림 컬러 기술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이 61cm(24인치) 모니터가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은 모두 10억 개. 정말 상상이 안되는 숫자입니다. 10억 개나 되는 색을 우리 눈이 다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욱 깊이 있는 색을 고를 수 있도록 함으로써 품질이 다른 결과물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좀더 정확한 색을 쓸 수 있도록 드림 컬러 엔진 소프트웨어와 정밀도 교정에 쓰는 드림 컬러 교정 키트도 넣어 준다더군요.
드림컬러 LP2480zx는 24비트가 아닌 30비트 S-IPS 패널로 어느 각도에서나 또렷하게 볼 수 있고 RGB LED 백라이트로 화이트 포인트를 잡아낼 뿐만 아니라 sRGB, 어도비 RGB, Rec. 601, Rec. 709, DCI-P3 에뮬레이션 같은 산업 표준 모드로 모니터 세팅을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HDMI 1.3과 디스플레이 포트 1.1, DVI-I, 아날로그, 컴포넌트, S-비디오, 컴포지트 단자를 갖췄고, 4개의 USB 단자도 넣었고요. HDCP도 포함했고요. 1,920×1,200 해상도에 1,000:1의 명암비, 250cd/㎡, 12ms의 응답 속도의 스펙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24인치와 비교했을 때 앞쪽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옆에서 보면 좀 두껍습니다.
일반 소비자 기준에서 보면 값은 비쌉니다. 보급형은 아니니까요. 3,499달러에 내놓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색을 표현하는 다른 모니터에 비하면 1/4 수준이라더군요. 다른 전문가용 제품과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싸다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드림웍스 SKG나 HP의 이야기처럼 애니메이션이나 3D 모델링,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들에게 경제적이면서 만족스러운 모니터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덧붙임 #
1. 그러고보면 세계 모니터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에서 이 같은 플래그십 모니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왠지 아쉽네요. HP는 이 모니터 하나 때문에 모니터 라인업을 새로 갖추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한답니다만.
2. 쿵후 팬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어딘지 짐작하시나요? 바로 포의 목젖이었다네요. ^^;
3. 쿵푸 팬더를 3D 입체 영상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날 드림웍스의 발표 현장에서 스테레오스코프를 이용한 쿵푸 팬터 3D 입체영상을 상영했는데요. 처음은 좀 어질어질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니 볼만하더군요.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서 좀 아쉽군요.
금요일에 시차적응도 안된 상황에서 저는 바로 이 쿵푸팬더 보러 갔답니다 ㅎㅎ
잘만들었더군요.
모니터 하나에 무슨 가격이.. 하다가도 이정도 작품을 만들려면 싼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
대부분의 평이 좋더라고요. 저도 보러 갈까 생각 중입니다. ^^
저는 올여름에 출시한다는 700년동안 노가다했다는 꼴통로봇을 구경하러 갈겁니다
아.. 생각보다 귀여운 로봇이던데요? ^^
CRT하고 한번 비교해 봤으면 좋겠군요..
저도 비교해봤으면 싶지만, LCD나 CRT나 아무래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요. ^^
생각해보면 HP의 이번 모니터 뿐만 아니라 Eizo라던지 Apple의 Cinema Display같이 프리미엄 모니터는 나오지 않는게 참 슬프군요 ㅎ 상당수 패널은 한국산일텐데 말이죠
네. 대부분의 패널은 역시 마데 인 코리아지요. ^^ 그나저나 에이조나 시네마디스플레이도 스튜디오 작업에서 쓸만한 색을 표현하려면 좀더 업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지요. 물론 이 정도 수준의 고급 모니터라도 만들면 좋겠지만요.
소니의 유기 EL 텔레비전 사이트를 보니 이 색상의 놀라움을 웹사이트에서 소개해드리지 못해서 유감입니다. 전시장을 소개하고 있으니 직접 두눈으로 확인해주십시오. 라고 써놨더라구요. 으음 이제 슬슬 13인치대까지 EL 디스플레이가 쳐 올라오는데… 과연 LCD의 미래는 어떨런지 궁금해집니다. 칫솔님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