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과소비 시대

PC 주변은 늘 지저분하다. 온갖 문서와 갖가지 PC용 액세서리, 디스크 등이 널부러져 있기 일쑤다. 산만한 분위기 탓에 정신을 모으기가 어려울 때면 어쩌다 한 번씩 치우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치우지 않는다. 나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수고와 노력, 시간의 투자 대신 그 환경에 적응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치운다는 것은 원래 가져왔던 자리로 돌려 놓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PC 주변을 치우는 것은 정말 귀찮다. 이제는 돌려놔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어디에 돌려놔야 할지 원래 두었던 자리를 까먹기도 했다. 치운 물건을 둘 새 자리를 찾아내는 것마저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미 방안은 포화 상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정리했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며칠 전에 한 곳에 모은 게 있다. 메모리 카드 류다. 각종 메모리 카드와 USB 메모리, 메모리 카드 어댑터 등을 모두 찾아냈다. 그리고 4개의 칸막이가 있는 작은 작은 수납함을 사다가 분류별로 넣었다. 수납함 하나에 모은 메모리 류를 보니 의문만 쌓인다. 언제 이렇게 많은 메모리를 샀을까?


책상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때는 몰랐는데, 정말 많긴 하다. 지금 쓰는 여러 장치에 들어 있는 메모리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모은 메모리 중에도 지금 쓸 만한 것이 꽤 있다. 메모리를 쓸 수 있는 장치가 없거나, 용량이 너무 적거나, 고장난 것이 조금 있지만, 대부분은 쌩쌩하게 돌아갈 것이다.


이 많은 메모리 관련 물품이 모인 이유는 네 가지. 첫 째는 빠르게 발전하는 메모리 저장 기술에 비해 메모리 관련 제품 가격은 반대로 빠르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더 많은 용량을 가진 메모리로 손쉽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신형 메모리가 들어오면 구형은 잊혀졌고, 또 다른 신형들이 줄기차게 자리를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더 이상 쓰이지 않아 쓸모 없어진 메모리들도 그대로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더 이상 쓰지 않는 메모리 카드들
둘 째는 일부 메모리 카드나 관련 제품을 샀을 때 함께 주는 부속들이다. 대부분이 메모리 카드 어댑터다. 마이크로 SD나 RS-MMC, 메모리 스틱 듀오처럼 일부 카드 리더를 위한 어댑터가 따라 왔다. 허나 메모리 카드 리더의 발전으로 쓸일이 없어진 것은 안봐도 비디오다.


셋 째는 제품에 기본 포함된 번들 메모리다. 요즘은 수GB 크기의 메모리 카드나 USB 메모리를 주지만, 예전에는 고작 수십 MB에 불과했다. 많아봐야 128MB나 됐던가? 결국 더 큰 용량의 메모리 제품을 사는 순간 이 번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넷 째가 가장 큰 이유다. 한마디로 ‘귀찮음’이다. 업그레이드하고 남은 메모리, 어댑터, 번들 메모리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않았다. 남은 메모리는 중고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었고, 어댑터는 쓸 것만 남기고 버리면 되었고, 번들 메모리 역시 없앨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은 메모리를 처분하기 위해 백업하고 처분하는 과정이 싫었다. 귀찮았다. 예전 메모리에 있던 데이터는 새 메모리로 옮겨졌지만, 그럼에도 이전 메모리에 있던 것을 삭제하지 않았다.


귀찮음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다시 첫 째 이유로 돌아간다. 대용량의 고속 메모리가 지름의 과녁 안으로 들어오면 가차 없이 질러댄다. 싸게 사서 바꾸면 될 일을 두고 다시 쓰기 위해 백업하는 일들이 귀찮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메모리와 관련된 것들이 한 자리에 수북히 쌓였다.
또한 새 메모리를 두고 이전 메모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늘 쓰는 것만 쓰려 하지 굳이 이전의 것을 일부러 활용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쉽게 버릴 수도 없다. 메모리에 들어 있는 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버릴 수는 없지만, 쓰지는 않으니 모든 메모리는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돌아보니 나는 분명 메모리를 과소비했다. 메모리를 소비하는 습관이 문제인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습관을 고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이기도 하지만)메모리를 쓰는 더 많은 장치가 나올 테고, 더 많은 메모리를 쉽게 소비하는 환경은 이어질 테니 말이다.


이는 단순히 나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메모리를 과소비하고 있을지 모르고, 또한 그 시대를 맞이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메모리는 싸지고, 업그레이드는 손쉽고, 방치는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란 그 누구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46 Comments

  1. 2009년 1월 19일
    Reply

    저도 여러므로 과소비를 하는 편인것 같아 이 글을 통해 돌아보게 되네요.

    제 경우는 메모리 뿐 아니라 하드디스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정말 용량도 많이 늘어났고 그 반면 써야하는 파일 용량도 덩달아 늘어나고..

    더군다나 요즘은 메모리 카드는 사은품 형태로 많이 지급되기도 하고요.^^;

    • 2009년 1월 19일
      Reply

      요즘은 1TB HDD 도 싸졌습니다. 그래서 1TB HDD
      한대 사서 꼳아서 사용하는 것도 좋지요 ㅎㅎ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정말 요즘은 거의 모든 사은품이 메모리가 기본인 시대인 듯. 이제는 다른 것으로 바꿔줬으면 싶어요~

  2. 2009년 1월 19일
    Reply

    장탄수 부족이 저의 지름신을 막아 주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겨 집니다.
    매번 지름신 목록은 길어만 지는데 말이죠 ^^;

    저의 경우에는 고장나기 전까지 부족해서 쓰는 편이라서 그렇게 메모리 과소비는 큰편은 아니지만
    3기가 메모리 꼽으려면 메인보드가 AM2보드인데 뱅크4개를 다 꼽으면 켜지지 않아서 못쓰고 있는 1기가가 아쉽기만 하네요 ^^;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좋은 습관이시네요. 저는 일단 현재를 채우고 사는 데 급급해서.. ㅜ.ㅜ
      (그나저나 램뱅크 2개만 듀얼 채널로 쓰는 게 나을 듯 싶은데요)

    • 2009년 1월 20일
      Reply

      1G x 2, 512M x 2 총 4개인데
      무슨 쏘를 해도 AM2 보드 특성상(nForce2) 모든 뱅크가 다 차면 오작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ㅠ.ㅠ
      그래서 1기가가 놀고 있답니다. 에효.. 저도 3기가로 가고 싶은데 1,2,4,8의 2^n이 아니면 아름답지 않게 느껴져서 말이죠 ㅋㅋ

  3. 2009년 1월 19일
    Reply

    자자 쓸데없는 메모리는 저한테 넘기시면 되는 겁니다. 제 연락처 아시죠?

    • 2009년 1월 19일
      Reply

      제가 먼저임 왜이럼?ㅋㅋㅋㅋ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쓸데 없는 메모리는… 없겠죠. ^^;

  4. 2009년 1월 19일
    Reply

    저는 그 구석에 있는 MYSSD가 끌리네요…
    사긴 사야하는데 도저히 살가격을 못잡겠다는…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플래시 값이 좀 떨어져야 MYSSD도 가격이 내려갈텐데 말이죠.

  5. 2009년 1월 19일
    Reply

    아 진짜 메모리 값이 싸질수록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젠장 그때 사지 말고 오늘 살껄)
    이런 후회감 시대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원래 물건이라는 건 일찍 사도 후회, 늦게 사도 후회하는 법이에요~ ^^;

  6. 2009년 1월 19일
    Reply

    남아있는 메모리… 용량이 너무 작아 주변에 주기도 그렇고 버리기에는 아깝고… 과감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정리하려고 하면 ㅋㅋ 역시 4번째 귀차니즘 때문에…
    공감가는 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귀차니즘을 타파할 좋은 방법 없을까요? ㅋㅋ

  7. 2009년 1월 19일
    Reply

    한가지 의문이 드는건 진짜 셀수없을정도로 많아지는 메모리 규격인겁니다…
    하나로 진짜 하나로 통합하면 관리 하기 정말 편할텐데요…
    뭐 예를 들자면 DSLR이나 백업용 메모리 스토리지용 규격이나.
    소형가전기기에 쓰이는 메모리 이런식으로 용도에 맞는용류가 딱 맞춰서 나온다면 여러가지를 구입할필요도 없고 말이죠 이런 규격의 공개나 통합화를 통하면 편할텐데요…

  8. 2009년 1월 19일
    Reply

    저도 메모리 많이 있어서 몇개는 주변에 필요하신 분들한테 주고..분해도 해보고..
    어떻게 해서든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해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위에분 말씀처럼 메모리 규격이 통일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저도 분해를 해봤지만 결국 두어개 하고 나면 할만한 가치가 없더라구요.. ㅜ.ㅜ

  9. 2009년 1월 19일
    Reply

    홍보물 등 너무 흔해진 것도 한 가지 원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도 따로 담아두는 곳이 있을 정도로 많은 메모리..확실히 과소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용량 외장하드 구매를 고려중이라는…_-;
    잘 보고 갑니다.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그렇죠. 많은 메모리를 쓰면서도 하드디스크처럼 더 많은 공간을 가진 것을 찾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냥 사람 욕심이라서 그런 걸까요? ^^

  10. 칫솔에놀러온방문자
    2009년 1월 19일
    Reply

    저런 메모리들을 초고성능 메모리로 재활용 할수 있는 기술이 나오면 때돈 벌겠군…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메모리만 따로 모을 수만 있다면야…

  11. 좀 생뚱맞지만
    2009년 1월 19일
    Reply

    전세계에서 버려지는 전자제품의 상당량이 중국의 외진 마을들에 모여서 재활용되는데 그곳 마을사람들은 보호장구도 없이 유독물질에 노출된 채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죄없는 아이들도 여기저기서 태우는 유독물질들을 마시면서 장애를 겪기도 하고 기형아가 태어나기도 하고.. 그냥 요즘의 끊임없는 전자제품들의 출시나 기술경쟁 뒤에는 이런 애달픈 단면도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음 해서요. 재활용을 자동화하던지 어떻게 해야될텐데 뒷짐지고 중국에다 맡기는 선진국들을 비롯한 나라들이나 국민을 국민으로 안보는 듯한 중국 정부나 안습이네요.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네.. 언제나 사후 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썼으면 해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말이죠.

  12. 2009년 1월 19일
    Reply

    이 포스팅보니까… 제가 예전에 SD 메모리 1기가짜리(방수가 되는 것)이 최초로 나왔을 때 16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던 게 기억나네요.

    이런 메모리 문제에 대해서 전 적어도 반년동안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3년 전에 나왔던 4기가짜리 0.85인치 USB 미니하드를 8900원 주고 샀다는 것!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정감가는 진짜 하드(hard) 웨어라는 점에서 나름 종착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ㅅ’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당시 용량대비 가격으로 따지면 헉 소리 날만한 조건으로 사셨는데요. 저도 그런 종착점을 찾아야 할텐데요. 이 끝없는 욕심은 정말… ㅜ.ㅜ

  13. 2009년 1월 19일
    Reply

    아……. 이거 완전 동감입니다. 집에 안쓰고 방치되는 메모리가 너무 많네요 -_-;

  14. 2009년 1월 20일
    Reply

    미니sd를 며칠전에 구매했었는데..칫솔님에게 달라고 할껄 그랬군요..사진보니 정말 넘쳐남.. ㅎㅎㅎ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흐흐.. 미니 SD 요즘 많이 싸졌더라구요.
      그나저나 나중에 백미러님께 남는 차 한 대만 달라고 구걸해야겠군요. ^^

    • 칫솔
      2009년 1월 20일
      Reply

      뭘 자꾸 넘기라 그러삼? ㅋㅋㅋ

  15. 2009년 1월 20일
    Reply

    일단 여친을 만듭니다
    그런후 애매한 메모리를 음악앨범으로 만든다
    쓰던 메모리 티안나게 정성껏 데코레이션해서 선물하시란 !!

    • 칫솔
      2009년 1월 21일
      Reply

      브루스님께서 언제 소개팅 자리를 마련하시나 기대하고 있는뎁쇼?

  16. 2009년 1월 20일
    Reply

    웹오피스 같은걸 사용해서 USB 사용 빈도를 줄이는 것도 좋겠지요.^^

    • 칫솔
      2009년 1월 21일
      Reply

      웹오피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워낙 여러 데이터가 뒤죽박죽.. 아무튼 노력은 해봐야죠. ^^

  17. 2009년 1월 22일
    Reply

    와.. 정말 어마어마 하군요;;
    요즘은 길가다가도 홍보용으로 usb메모리를 주는 실정이니…
    어쩔수 없는것 같네요.
    필요하면 지르는데. 이미 쓰던놈들은 퇴물이 되고 애물단지가 되버리니…

    아무래도 제조사측에서 재생이 가능하여
    회수해서 사용하면 좋을텐데..
    말은 쉽지만 그렇게는 안되겠지요?

    • 칫솔
      2009년 1월 23일
      Reply

      아마도요. 지금도 메모리 팔아서 남는 게 없는 업체들이 재활용에 신경쓰기는 어렵겠죠. ^^

  18. Loveisanswer
    2009년 2월 2일
    Reply

    사진에 맥스드라이브로 추정되는것이… 플스유저시군요 ㅋ

    • 칫솔
      2009년 2월 2일
      Reply

      오.. 그걸 알아보시다니요~ 맞습니다. 플스 유저 ^^;

  19. 2009년 2월 5일
    Reply

    헐… 정말 많으시군요.
    저 하나만 주시면 안될까요??ㅋㅋㅋ
    저는 주변기기는 별로 없어서 ㅎㅎ 어디서 공짜로 주지도 않고, 사지도 않고
    저는 디자인 이쁜거만 골라 골라 사는 체질이라서용~ㅎㅎ

    • 칫솔
      2009년 2월 6일
      Reply

      헉.. 예쁜 거만 골라 산다는 말에 혹시 하이디님이 아닌가 착각했다는.. ^^

  20. wwwwwwwwwwwwwwwww
    2009년 8월 11일
    Reply

    ww
    r4가 있네여

    • 칫솔
      2009년 8월 13일
      Reply

      R4요? 아.. 빈케이스일 뿐입니다. ^^

  21. 2009년 8월 11일
    Reply

    메모리는 종이에 비하면 양호한편 아닐까요? 종이는 이미 수백년간 낭비되고 있죠. 매년 방청소라도 한번 하면 박스로 버리는게 책과 문서니.. 결국은 스토리지는 가상화해서 온라인으로 다 보내버려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 칫솔
      2009년 8월 13일
      Reply

      종이는 재활용이라도 하잖아요~ 메모리는.. 잘못 버리는 날이면 정말 낭패일 듯 싶더군요. ㅜ.ㅜ
      온라인 스토리지.. 결국 클라우드 컴퓨팅이 아닐까요?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