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가 뉴스가 되는 오늘이 어이없다

며칠 전에 우연히 주니캡님 블로그에 찾아갔다가 이런 댓글을 보았다.


“보도자료 릴리스를 하면서 ‘이런건 오히려 기자가 고마워 해야 하는데’ 라는 푸념을 한적이 있었는데…”

앞뒤 자르고 이 부분만 가져온 것에 대해 그 댓글을 단 블로거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 한 줄은 전체 글의 극히 일부분일 뿐더러 댓글을 달았던 그이가 말하려던 내용의 본질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한 줄을 가져올 수밖에 없던 것은, 보도자료가 곧 뉴스가 되는 어이없는 현실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보도자료가 팩트를 가진 자료가 아닌 그 이상으로 쓰이고 있는 얼토당토 않는 현상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너무 작게 들리고 있다.


보도 자료란 것이 팩트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내는 측의 일방적 데이터다. 보도자료의 팩트는 보내는 이의 주관에 따라 해석되어 날아온다. 객관성을 주장하기 위해 인용하는 데이터도 보도자료를 보내는 이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보내는 것이다. 전문성이 결여된 내용도 많다. 보도 자료를 쓰는 이들 대부분이 기술, 제품, 관련 시장 등을 100% 이해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알아들 수 있는 정도의 내용만 담을 뿐 세밀함은 많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보도자료를 보내는 측이 아니라 기자와 매체다. 기자와 매체의 존속의 이유는 팩트에 대해 끝없이 검증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독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특종을 위한 탐사 취재나 많은 분량을 채워야 할 기획이 아니라도, 팩트에 대한 검증과 보충은 기자의 업무 속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본 소양이 아니냐는 ㄴ말이다. 그러나 거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의 상업주의와 물질주의가 매체에 침투하면서 독자를 상대로한 질높은 기사의 양산보다도 하루치 광고 수익에 목을 매는 지금, 보도자료를 재해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기자는 점점 더 설자리를 잃고 독자들은 떠나고 있다. 내 스스로 이런 말을 꺼내는 건 ‘누워서 침뱉기’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의 매체가 신뢰를 잃고 기자란 직업의 명분이 땅으로 추락한 지금에 이른 상황을 돌이켜 보라. 휘황찬란한 문체로 보기 좋게 쓴 보도자료는 분명 하루분의 기사를 송고해야 할 기자들의 일은 덜었을 지언정 정작 팩트 확인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매체와 기자가 가졌다는 힘의 원천은 독자 한 명 한 명이다.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재주? ‘그 까이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독자 없는 기사와 매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말하지 말고, 팩트를 검증하고 채운 올바른 정보를 담은 기사가 아니면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자. 독자는 그 노력을 분명히 알아준다.


보도자료를 릴리즈해주면 기자가 좋아해야 할까? PR인들이 그런 생각까지 갖게 만든 현실이 되었다는 게 난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8 Comments

  1. 2007년 4월 5일
    Reply

    자꾸 독자의 지적능력과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기사가 늘어 슬프답니다.

    • 2007년 4월 5일
      Reply

      네.. SuJae님이 기사를 읽고 슬퍼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2007년 4월 5일
      Reply

      칫솔님 기자세요? >_<

    • 2007년 4월 5일
      Reply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만, PC사랑에 근무중입니다.

  2. 2007년 4월 5일
    Reply

    서울시 무능 공무원만 퇴출할 것이라 아니라 기자들도 능력 없는 양반들 골라내서 퇴출시켜야 됩니다. 😛

    • 2007년 4월 5일
      Reply

      굳이 강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의 거부 알레르기로 인한 자연스러운 퇴출이나 매장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

  3. 2007년 4월 6일
    Reply

    헐;;; 이네요. 보도자료는 이것 좀 관심갖고 보도해주면 감사요. 인 “광고에 해당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자가 고마워 해야 할 정도라고 생각하다니.

    하긴 아직도 과도기라 그럴까요. 함량미달, 교양미달의 기자들도 많은 현실이다보니 저런 진풍경도 나오는 것이겠지만
    일종의 광고를 두고 나오는 이야기로는….. 신문의 광고지면에 싣는 대신 공짜로 기자들에게 생색 내 가면서 소개하는 것이라는 식의 개념이라…… 그야말로 정보과잉 사회의 웃기는 모습 하나를 본 것 같아서 아침부터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올블에서 보고 들어왔습니다)

    • 2007년 4월 6일
      Reply

      해명태자님. 반갑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일 것 같습니다만, 기자라는 직업 앞에 이름을 붙여 자기 기사로 내보내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해명태자님 말씀대로 엄청나게 늘어난 자료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체가 그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매일 수십꼭지의 기사를 뱉어내라고 강요하는 것도 원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도자료는 기사를 쓰기 위한 좋은 재료인 것은 맞지만, 그 뒤의 검증을 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문제라 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아침부터 쓴 웃음짓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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