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무엇인가를 만들 때, 심지어 잠시 쉴 때까지도 우리는 책상에 앉거나 그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낸다. 그저 평평한 판을 앉아서, 또는 서서 작업하기 좋은 위치에 올려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앞에서 소비되는 우리의 인생은 적지 않다. 때문에 무슨 일이든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까닭에 수많은 이들은 책상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책상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아래 동영상 속 책상은 그냥 평범하고 깨끗해 보인다. 겉보기에는 조명등 같은 장치가 책상을 비추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상 위에 물건을 올려 놓자, 마치 그 물건을 알아보기라도 하듯 책상 위에 정보를 표시한다. 자세히 보니 그 정보는 이 물건의 두께와 넓이다. 혹시나 싶어 여러 손가락을 올렸는데,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과 각도가 표시된다.
그뿐만 아니다. 옆에 있던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펼쳐 올려 놓으니 흑백 잉크로 인쇄된 그림에 색이 입혀지고, 마치 컬러 동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색을 입힌 그림들을 손가락으로 눌러 테이블 밖으로 끌고 나오니 그림들이 책에서 분리된다. 책밖으로 꺼낸 앨리스를 손가락으로 옮기면 마치 앨리스가 걸어가는 듯한 발자욱을 남긴다. 글자로만 읽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 테이블 위에서 인터랙티브 소설처럼 변한 것이다.
지금 소개한 이야기는 상상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이번 IFA 2016의 소니 부스에서 구경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프로토타입 T(Protype T)라고 부르는 이 프로젝트는 소니 퓨처랩 프로그램(Futurelab)을 통해서 나왔다. 소니 퓨처랩은 이용자의 미래 생활환경을 연구하고 이에 따른 기반 제품을 개발하는 소니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상상에 기반해 시나리오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제품을 현실에 내놓을 수 있도록 가능한 기술을 적용해 이용자 경험을 개선하거나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IFA2016에서 공개한 프로토타입 T는 지난 3월 공개했던 프로젝트 N에 이어 두번째 퓨처랩 시제품이다(알파벳 별칭을 쓴 것을 보면 24개가 진행 중인 듯하다). 프로토타입 T는 사실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영사하는 프로젝터와 비슷하지만, 단순한 영상만 표시하는 프로젝터와 달리 공간과 사물을 인지하고 터치 센서처럼 입력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프로토타입 T의 하드웨어는 프로젝션 부분과 아울러 3D 카메라, 레이저 센서, 동작 인식 센서 등 사물 인지와 공간 측정에 필요한 센서를 갖고 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사물을 3D 카메라로 읽어 그에 맞는 컨텐츠를 표시하면 사물의 높낮이나 손의 움직임을 레이저 센서로 추적해 정확하게 조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프로토타입 T는 결코 기술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 기술로 책상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슨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실험적으로 보여줄 뿐, 하드웨어 자체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앞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일반 동화책을 인터랙티브 컨텐츠로 바꾸거나 건축 도면을 실제 모형에 맞춰 표시하는 것처럼 이 기술이 쓰일 수 있는 가능성에 도 무게를 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앨리스가 책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는 그에 맞는 컨텐츠를 넣은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라 해도 책 속 사물을 알아채 색을 입히고 객체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책 속의 앨리스와 카드 병사를 알아챈 뒤 이를 손으로 다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 하드웨어에서 실행할 수 있을 뿐, 결국 프로토타입 T에서 수행할 수 있는 컨텐츠를 사람의 손을 거쳐 준비해야 한다. 때문에 소니는 프로토타입 T를 상용화한다면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도 함께 내놓고 많은 개발자가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지금은 이것이 현실로 나온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프로토타입 N이 실제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닌 상황이다.
그런데 프로토타입 T에 넣은 기술이 소니만 갖고 있는 독보적인 것도 아니고 비슷한 기술을 가진 제품은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 T만큼 책상의 변화를 기분좋게 기다리게 하는 즐거운 경험을 가진 제품은 거의 없었기에 프로토타입 T가 그만큼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이다. 소니가 프로토타입 T를 실제 제품으로 양산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 없다. 단지 우리 일상, 특히 책상 앞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있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을 마음에 심은 것이 무섭다. 내일은 더 즐거울 수 있는 책상의 미래가 프로토타입 T인 것이다. 이러한 프로토타입 T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 퓨처랩 프로그램을 시작한 소니는 분명 다시 봐야 할 존재다.
덧붙임 #
T는 어떤 의미일까? 테이블(Table)일까?
Tabletop display라 T로 붙인듯 합니다. 개념 자체는 나온지 오래되었고 2007년에 MS에서 나왔던 서피스가 비슷한 예인데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터라… 소니에서도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는 듯 한데 사업화까지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피스 테이블은 UX 연구용이나 B2B 데모 시장에서는 제법 쓰였습니다. 단지 당시에는 개발자에게 개방형 정책이 없었고 가격이 워낙 비싸 쓰임새가 제한적이었지요.지금은 그 때와 모든 게 달라졌으니 좀더 지켜보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