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히 생각해보니 PC를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생각을 머릿 속에서 지우고 산 지 꽤 지난 듯하다. 요즘 들어서 진지하게 데스크톱 PC의 업그레이드를 고민하게 된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계산해 봐야 할 정도니 말이다. 햇수로만 따지면 못해도 4년쯤 된 게 아닌가 싶다. 정확한 시점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지금 쓰는 PC의 부품 구성 중에 거의 5년 전에 선보인 린필드 계열 코어 i7 프로세서가 돌고 있는 걸 봐서는 대략 그 정도 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다.
물론 가격 폭락을 빌미로 램 용량을 조금 늘렸고 SSD로 저장 장치를 바꾸긴 했지만, 프로세서와 메인보드를 모두 바꾸는 대공사는 없었다.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이 데스크톱의 성능과 능력은 충분했다. 내가 해야 할 작업들의 처리 능력이나 지금까지 이용 환경을 감안하면 일부러 이유를 만들지 않는 한 굳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 필요성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그레이드를 고민하고 있다. 아니,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유는단순하다.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부족해서다. 새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부품을 쓸 수 없고, 그래서 원하는 실험을 하지 못하면서 생긴 고민이다. 인터페이스 규격이 달라 새 그래픽카드를 꽂지 못하고 더 넓은 전송 대역폭의 저장 장치를 쓰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부품을 써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4년 전에 담았던 이 데스크탑의 최신 기술들은 지금 시대에선 낡은 기술이 되어 버린 것은 분명하다. 낡은 기술이 무조건 불편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더 나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애물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지금 PC 업계가 처한 어려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지난 컴퓨텍스 때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PC 업계의 주도자들이 최신 운영체제와 고성능 PC를 써야 할 이유를 만들지 못하는 것을 PC 시장이 부진한 이유로 꼽았는데, 많은 이용자들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성능과 기술 만으로도 필요한 것을 충분히 얻고 있는 상태에서 굳이 이전과 똑같은 경험을 주는 장치에 또 투자할 이유가 없는 데 PC 업계는 오히려 그 소비 방식을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작 최신 기술을 PC에 통합하면서도 그 기술을 소비할 수 있도록 업계 안의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기업끼리 서로를 돕는 데는 매우 인색한 것이다.
이번 업그레이드에 대한 고민은 어찌보면 다른 목적으로써 PC가 필요한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다. 얼마 전 구입한 엔비디아의 쉴드라는 안드로이드 장치에는 PC 게임을 원격으로 즐길 수 있는 플레이피씨라는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에 필요한 그래픽 카드가 PCI 익스프레스 3.0에서 작동하는 바람에 5년 전 메인보드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하는 욕구만 없으면 업그레이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쨌거나 이 신기한 기능을 경험하고픈 욕구가 자꾸 업그레이드를 부추기는 것은 분명하다.
PC 자체의 사용성과 조금 거리가 느껴질 수 있지만, 쉴드의 플레이피씨처럼 PC의 성능과 관련 기술을 활용하는 다른 경험이 PC 업그레이드를 고민하게 만들었음을 PC 업계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다고는 해도 실제로 그것을 활용할 만한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어떤 동기를 부여할 수 없다면 PC에 대한 이용자의 투자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윈도8과 터치스크린으로 쓰기 편한 PC를 내놓는 것을 나무랄 수야 없지만, 그것보다 고성능 PC의 최신 기술을 써야만 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노력이 없으면 PC에 대한 관심도는 더 떨어질 것이다. 이용자에게 PC에 녹아 있는 기술을 이해시키려는 것보다 그 기술을 최대한 소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때 이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일 것이다. 쉴드의 플레이피씨는 PC를 써야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좋은 예다.
저도 PC 업그레드를 언제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네요. 여전히 잘 돌아가는 데스크탑, 가끔식 먼지 제거만 해 주고 있지요. 예전처럼 새로운 Windows 운영체제가 시장을 이끌던 모습이 정말 사라졌음을 공감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 먼지만 제거합니다. ^^; 이제는 PC도 가전제품화처럼 망가지지 않는 이상 새로 사거나 업그레이드 하는 일은 없을 것 같긴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