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업체, 스마트폰 생태계로 확장한다

 PC업체의 스마트폰 시장 진출이 이전에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요즘들어 부쩍 관심을 받는 듯하다. PC업체인 델(DELL)의 스마트폰 진출 소식에 이어 에이서가 제품 출시를 암시하는 티저 광고를 내보내고, 여기에 레노버의 가세로 스마트폰 시장에 참여하는 PC업체의 움직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화제의 중심에 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 현상을 논하기에 앞서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PC업체의 스마트폰 참여는 요 근래에 갑자기 일어난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HP, 델, 에이서, 레노버, 도시바 등 세계 5대 PC 업체 중 세 업체는 이미 스마트폰을 출시했거나 출시를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델의 스마트폰 진출, 2년 전부터 기획된 것


HP는 이 중에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 온 업체다. HP는 몇년 전부터 꾸준히 스마트폰 시장을 두드려왔다. 종전 PDA를 제조했던 경험을 살려 아이팩 브랜드의 다양한 스마트폰을 매년 내놓고 있다. 다만 PC시장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가진 1위 기업으로 군림해 온 것과 달리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기는 하다.


TOSHIBA 역시 역시 여러 형태의 스마트폰을 찾아볼 수 있다. 도시바는 포테제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다. 작은 액정에 쿼티 자판이 붙은 전형적인 스타일의 스마트폰은 물론 WVGA 해상도에 터치에 자판까지 모두 포함한 고성능 스마트폰까지 이미 선보인 상황이다.


DELL은 요즘에야 화제로 떠올랐지만, 그들의 스마트폰 시장 참여는 오늘 불쏙 튀어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미 2007년 4월에 올린 글을 통해 델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당시 델은 전 모토롤라 휴대폰 부문 대표를 지낸 Ron Garriques를 영입하고 그에게 컨수머 사업 부문을 이끌도록 했다. 전형적인 PDA 브랜드인 액심(AXXIM)을 포기하는 대신 콴타 컴퓨터를 통해 FLY라는 PDA 폰 또는 스마트폰을 생산할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면서 시장 참여가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FLY는 실제 생산되지 않았고, 델은 한동안 잠잠하게 지냈다.


 분업화로 성장한 PC 생태계


어찌됐든 최근 여러 외신을 통해 델의 스마트폰 진출 소식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데다, 갑작스레 레노버가 안드로이드 폰을, 에이서가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소식까지 순식간에 더해져 PC업체의 스마트폰 사업 진출이 더 부풀려진 면도 없진 않다. 그렇더라도 분명 PC업체의 스마트폰 시장 진출은 눈여겨 볼만한 여지가 매우 많다. 이는 단순히 아이폰이 얻어낸 모종의 성취를 따라가려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스마트폰 생태계의 움직임과 연관지어서 봐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PC생태계는 철저한 분업화로 성장했다. 핵심 부품을 만드는 칩셋 제조사와 운영체제/소프트웨어 제조사, 그리고 이를 통합해 설계하는 PC업체가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상호 보완된 관계 속에서 발전을 이끌어 왔었다. 칩셋 업체는 프로세서의 성능 향상과 대량 생산만 집중함으로써 핵심 부품을 더 값싸게 공급하고, 운영체제 제조사는 수많은 PC에서 같은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통일된 환경을 구축하고, PC업체는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최종 소비자를 겨냥해 PC를 디자인해 생산하고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특정 프로세서와 운영체제의 독점 환경이 구축된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역할 분업 속에서 수많은 PC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성장의 기회를 얻었고, PC를 쓰는 이들도 급속도로 늘었다. 결국 세계에서 쓰고 있는 대다수의 PC에서 같은(또는 호환되는) 코드를 가진 프로세서와 운영체제를 쓰는 환경의 구축을 통해 가장 크고 광범위한 시장이 만들어냈고 이를 발판으로 PC 생태계는 더욱 확고해졌다.


 분업화되는 스마트폰 생태계 주목해야


문제는 더 이상 PC생태계 안에서 확장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분명 PC시장은 꾸준히 성장함에도 이러한 구도에 큰 변화가 오지도 않거니와 몇몇 기업의 지배력만 강화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던 것이다. 분업화는 PC시장 성장에 매우 큰 일익을 담당했지만, 성장의 한계를 가져와 그 효과를 더 이상 누리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어느 한 부분이 다른 영역을 침범해 그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프로세서 제조사가 운영 체제 제조사와 손을 잡고 직접 하드웨어를 만든다던지, 운영체제 제조사가 PC업체와 손잡는 일이 쉽게 생기지 않는 것이다. 칩셋, 운영체제, 완성품 업체의 삼각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결코 득이 될 이유가 없는 탓에 어느 업체도 반란을 꿈꾸지 못하고 있다.(물론 애플은 예외지만.)


이 생태계의 틀은 공교롭게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러 PC업체의 스마트폰 참여 소식은 그들의 능력만으로는 절대 이뤄낼 수 없는 일이어서다. 분명 PC와 스마트폰이 동일한 것은 아니므로 PC업체의 이러한 도전을 무모하게 볼 수도 있고, 이미 스마트폰을 제조한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거나 필요한 인력을 영입해 준비해온 기업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이 모든 것을 홀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PC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태계 구축을 갈망하는 업체들이 분업에 대한 이해를 맞춰 가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PC용 칩셋을 만들던 업체는 어느덧 스마트폰을 위한 초저전력 프로세서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운영체제 업체는 차세대 PC 운영체제와 완벽한 궁합을 보일 모바일 운영체제를 머지 않아 발표한 뒤, 이미 만들어진 수만 개의 소프트웨어를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의 구축과 확산에 주력하고 싶어 한다. 수많은 PC 제조사도 솜씨를 발휘해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으로 사업 확장과 성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욕구를 채우려 한다. 이러한 이해 관계를 보면 분명 스마트폰 생태계의 분업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전 PC시장의 생태계를 가꿔오면서 함께 했던 호흡이다. 기존 시장에서 함께 성장한 각 구성 요소들은 서로 소통하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PC업체들의 스마트폰 시장 참여는 단순하게 보면 그 업체의 수익과 연관된 이야기지만, 전체를 조망하면 기존 관계에 의한 질서를 유지하면서 스마트폰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RIM이나 팜, 아이폰처럼 독자적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로 자기 중심적이면서 외부의 참여를 허용치 않는 폐쇄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실정이다. 이것과 다르게 기존 PC 생태계 방식과 같은 분업화 모델은 수많은 기업과 사용자에게 참여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시장을 확장하고 질서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분업화 모델이 꼭 좋은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참여를 이끌어내는 점에서 눈여겨 볼 이유는 충분하다. 생태계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강자가 되기 위해 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보자. 분업화되고 균형을 갖춘 이 스마트폰 생태계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줄 지도 모르니까.


덧붙임 #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될 지 한 번 지켜보자.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던 1980년 대의 애플 컴퓨터의 흥망, 아이폰도?’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20 Comments

  1. 2009년 2월 3일
    Reply

    조립 스마트폰이라는 시장이 나타나면 재미있겠군요..

    • 칫솔
      2009년 2월 3일
      Reply

      조립은 아니고요. 제품과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훨씬 다양해지겠지요. ^^

  2. 세계 최대의 PC 업체 중의 하나인 델(Dell)의 스마트 폰 사업 진출은 지난 해부터 꾸준히 나오던 루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실체가 점점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월 3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온라인 판에 그 내용이 소개되었기에, 그동안 온라인 상에 나타났던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서 델의 스마트 폰에 대한 정보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일단 1월 30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원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Dell Prepare..

  3. 2009년 2월 3일
    Reply

    국내 이통사들의 공언 중 하나가 2009년을 스마트폰 시대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라인업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외산 스마트폰을 들여오겠다는 전제 조건까지 달면서 말이다. 헌데 이런 방향성이 국내에 한정될 것 같지는 않다. 전통의 강자 Palm, 신흥 강자 Apple이 암울했던 스마트폰 시장을 불황기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신동력원이자 아직 성장 가능성이 높은 황금알로 탈바꿈 시켰기 때문이다. 뒤늦게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국내 업체들도 스마..

  4. 2009년 2월 3일
    Reply

    세계 4위 PC업체인 에이서(acer)가 내년 1분기에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에이서는 내년 노트북 생산이 15~20% 증가할 것이며 전체적인 매출이 25~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에이서는 스마트폰 내년 시장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최초의 에이서 브랜드를 단 스마트폰을 내년 1/4분기에 출시하기로 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에이서의 스마트폰 개발은 올해초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E-Ten 정보 시스템”을..

  5. 2009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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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에이서가 스마트폰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PC업체들도 뛰어드는것 아닌가 했는데 현실화되는군요. 앞으로 스마트폰과 넷북의 싸움도 볼만하겠네요. 🙂

    • 칫솔
      2009년 2월 3일
      Reply

      네, 스마트폰과 넷북, MID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그 변화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

  6. 2009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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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Dell), 에이서(Acer). 이 두 PC업체는 최근 스마트폰을 출시한다고 알려진 업체다. 에이서의 경우 2월에 Mobile World Congress(MWC)에서 스마트폰을 공개할 것이라고 알려져있고 델 역시 조만간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PC 제조업체에서 스마트폰을 내놓을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출시되고 있는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으로부터 시작하여 HTC의 터치 시리즈, 림의 블랙베리..

  7. 2009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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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키아가 빨리 미니북을 만들어야 된다니까요.. ^^

    • 칫솔
      2009년 2월 3일
      Reply

      노키아의 미니북이라.. 완성도는 높을 텐데 유럽 제품은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

  8. 칫솔에놀러온방문자
    2009년 2월 3일
    Reply

    전에 인텔하고 삼성하고(틀리면 OTL) 짝짜꿍 하다가 료열티 대소동을 일으켰던일이 생각나네요.

    • 칫솔
      2009년 2월 3일
      Reply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좋을 듯. ^^

    • 칫솔
      2009년 2월 3일
      Reply

      최후의 승자란 없지요. 여러 생태계가 존재할 것이고, 그 생태계 안에서 약육강식이 벌어질 것인… ^^

  9. 2009년 2월 3일
    Reply

    제가 예전에 읽은 것중에 재미있던것이 휴대용 게임기로 즐기는 장소 1위가 바로 집이더라구요. 그걸 보니깐.. 스마트폰의 가능성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도 더 우리의 생활을 더욱 바꿀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읽을텐고..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할것이라는거죠.^^;; 결국 스마트폰이 나의 또다른 분신이 될텐고 이로 인해서 만들어낼수 있는 무궁무진한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이 될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손안의 컴퓨터 혁명은 휴대폰 업체보다 PC업체가 더 유리하지 않나 그런 생각에 확신이 드네요.^^;;

    • 칫솔
      2009년 2월 3일
      Reply

      생활이 바뀐다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해요. 사실 휴대폰이 중심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있잖아요? 사람의 경험이 진화하면서 이에 따라 휴대폰도 진화할 수록 그 삶의 방법도 상향 조정될테니까요.
      이러한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그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겠지요. 결국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생태계가 무엇이냐는 점에서 보면 이미 그런 생태계를 만들었던 경험을 가진 PC업체, 아니 그 업계가 유리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

  10. 2009년 2월 3일
    Reply

    본 포스팅은, 칫솔님의 PC업체, 스마트폰 생태계로 확장한다의 트랙백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한손에 잡히는 나를 위한 세상” 일본의 IT업계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에게 얻은 조언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는 모바일기기를 선호하는 일본인에 대한 조언입니다. 초기에는 일본인 고유의 특징에 의한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조사를 거듭하면서 얻게된 결론은, 소비자라 불리는 이용자의 메인 디바이스는 이미 모바일 디바이스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급..

  11. 2009년 2월 5일
    Reply

    예전에도 그 비슷했던 경험을 한 것 같은데요. Windows Mobile 계열과 Palm 계열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Sony의 Clie가 있기는 했었지만요.
    개인적으로 아직 많이 접하지 못한 Palm Pre에 거는 기대가 크기는 하지만, 역시나 결론은 다 써봐야 알 것 같습니다.

    또한, 저 하나의 의견이 많은 의견을 대표하지 못하듯….. 얼마나 많은 사용자가 해당 OS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시장의 승패가 결정 나겠지요. 저는 소수의 편을 들어볼 예정입니다. ^^

    • 칫솔
      2009년 2월 6일
      Reply

      다 써보면 좋겠지만, 주머니 사정도 고려를 해야겠죠?
      그나저나 시장에서 소수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투자를 할 수 있는 집단을 뜻할 수도 있는데요. ^^;
      아, 오늘 이와 관련해 글 하나를 더 올렸는데, 그것도 읽어주세용~ ^^

  12. 2009년 2월 5일
    Reply

    EDITOR’S COMMENT 1. 요 근래 크게 심각한건 아닌데 다사다난한 사고가 연일 일어나는군요. 심지어 백업해놨던 디비디가 안읽히는 그런 개인적으론 중대한 사고까지…지쟈쓰!!!!!!! 2. 글 쓰고 싶은 주제는 무자게 늘어나는데 처음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진 설렁설렁 잇힝~ 하는 마음이었는데 쓰고 싶은 주제가 늘어나면서도 시간 없어서 잠시 대기~ 이러다보니 한 10개는 쟁여두고 있는거 같습니다. 헐… 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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