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서가 몇 주 전 뉴욕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진행했는데, 안방을 놔두고 뉴욕에서 이런 행사를 열었다는 것도 색다른 이야기에 들지만, 그보다 여기에서 공개된 신제품 가운데 흥미를 끄는 PC가 하나 있었다. 에이서 아스파이어 R7이다. 이 제품이 흥미로운 것은 성능 때문이 아니다. 독특한 경첩 구조를 갖고 있어서다.
대부분의 노트북은 화면의 아래 부분을 본체의 뒤쪽에 연결하는 경첩 구조로 되어 있다. 노트북에 따라 경첩 모양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아주 흔한 구조다. 이렇게 조개처럼 열고 닫는 열고 닫는 구조의 노트북을 가리켜 클램쉘이라 하는데 아스파이어 R7도 덮개를 닫는 모양만 보면 이전의 노트북과 비슷하게 보여도 전형적인 클램쉘형 노트북이라 말할 수 없는 이중 경첩 구조를 갖고 있다. 에이서는 이를 이젤(Ezel) 경첩으로 부른다.
아스파이어 R7의 경첩은 화면 아래가 아니라 화면 가운데 뒤쪽이다. 이렇게 경첩을 덮개 가운데까지 끌어올리는 경우는 흔하진 않지만 장점은 있다. 이런 경첩 구조는 덮개를 여는 일반 경첩과 다르게 화면을 이용자 앞까지 끌고 올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각도 조절이 좀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복잡한 경첩 구조인데다 화면 뒤 덮개 부분이 밖으로 튀어 나올 수 있어서 휴대할 때 불편한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일반적인 구조는 아니어서 제조비 상승도 고민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경첩 구조는 아스파이어 R7에 처음 쓰인 게 아니다. 이미 ‘드래곤’이라는 별명을 가진 HP HDX에도 한번 적용된 적이 있던 터라 에이서 R7이 아주 새롭게 보인 것은 아니다. HP HDX는 2007년 공개된 노트북으로 데스크탑을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으로 에이서 R7처럼 화면을 앞으로 끌어올 수 있는 구조를 채택했다. 워낙 큰 화면이었던 터라 이 화면을 키보드 앞으로 끌어 당겨서 보면 24인치 모니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는데, 키보드 대신 리모컨으로 미디어 제어를 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아스파이어 R7은 경첩에 의해 화면을 수평으로 눕혀 테이블처럼 쓸 수도 있고 거의 태블릿처럼 접을 수도 있다. 터치스크린에 윈도8을 운영체제로 쓰고 있어서 화면을 눕혀 접은 상황에서도 키보드나 트랙패드 없이 조작할 수 있다. 또한 화면을 그대로 뒤집어서 세우면 화면 뒤쪽에 있는 사람이 그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데, 작업자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화면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경첩 자체가 앞쪽으로 구부러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까닭에 화면을 앞으로 당겨서 볼 수 있는데 이 때 키보드 작업을 하기 편하도록 아래쪽의 트랙패드를 위로 옮기고 대신 키보드를 아래쪽으로 더 끌어내렸다. 덕분에 비행기처럼 받침이 좁은 곳에서도 쓸 수 있다.
HP HDX 이후 비슷한 경첩을 가진 에이서 아스파이어 R7이 부활하기까지 무려 6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형태는 비슷해도 목적성과 사용성의 변화는 크다. HP HDX가 데스크탑을 대신하는 멀티미디어 노트북을 위해 큰 덩치와 리모컨 같은 편의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터치스크린도 없고 태블릿에 대한 관점도 없었다. 오직 PC의 관점만 있었을 뿐이다. 이와 달리 아스파이어 R7은 휴대성을 강화하면서 좁은 공간에서 노트북을 쓸 수 있는 효율성을 더하고 터치스크린 환경까지 최적화하면서 좀더 넓은 이용 환경을 아우르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경첩을 쓰고 있다. PC가 잘나가던 때는 PC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PC만으로는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HP HDX는 1년 만에 단종되었고 에이서 아스파이어 R7은 이제 평가를 지켜봐야 시기다. PC만이 필요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장치의 다양성을 아울러야 할 만큼 시대의 요구 자체가 변한 때문에 에이서 아스파이어 R7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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