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의 프린트 사업 부문인 IPG(image and print group)가 가을부터 줄기차게 내보내는 메시지가 ‘프린트 2.0’이다. HP가 앞으로 나아갈 프린트 비즈니스를 압축한 키워드이자 성장 동력이기에 HP는 프린트 2.0이 가진 뜻을 좀더 정확히 전달하고자 많은 비용을 쏟고 있다.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관련 매체의 기자나 블로거를 대상으로 자리를 마련해 왔고, 바로 며칠 전에도 용산 CGV 골드 클래스에서 관련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프린트 2.0의 ‘2.0’만 떼고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지는 안봐도 척이다. 그렇다. 웹 2.0에서 차용한 것이다. 물론 웹 2.0에서 접근을 하겠다는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웹 2.0처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웹 2.0을 보는 시각마다 이에 대한 이해와 정의가 다른 데 프린트 2.0이 웹 2.0처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 수도 있다. HP가 프린트 2.0에 대해서 웹 2.0에 빗대어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지만, 웹 2.0에 대한 해석이 다른 상황에서 프린트 2.0을 끼워 맞추다 보니 ‘프린트 2.0이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만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HP는 웹 2.0 월드에 대해 정의했다. 이렇게.
▲ 인터넷으로 전 세계 연결 가능
▲ 모든 컨텐츠 생성의 디지털 화
▲ 소비자가 컨텐츠 생산의 주체.
여기에 프린트 2.0의 개념으로 다음을 추가했다.
▲ 웹 애플리케이션상의 프린팅 환경 구축 미비
▲ 디지털 켄텐츠의 생성, 판매, 소비를 위해 설득력 있고 간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구축
나는 HP 내에서 웹 2.0 세계을 이 같이 정의한 이가 누군지 자못 궁금하다. 웹 2.0을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핵심을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쳐서다. 적어도 ‘개방과 소통’으로 압축하는 데 이견이 없을 웹 2.0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웹 2.0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 웹 2.0으로 말미암아 시스템에 종속적이고 피동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좀더 능동적이고 열린 세계를 통해 적극적인 소통이 이뤄지고 또 다른 소통에 적극 나서는 그 변화를 압축해 말했어야 했다.
프린트 2.0에 개방과 소통이라는 핵심적 요소만 있다면 웹 2.0의 차용은 어쩌면 성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프린트 2.0은 웹 2.0과 논점이 다른 기업 비즈니스다. 소통은 가능할 지 모르나 개방은 어려운 프린트 비즈니스인 것이다. HP를 중심으로 비즈니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프린팅 솔루션 기업과 인터넷 기업의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움직이는 개념이니까. HP가 프린터나 복합기 같은 하드웨어 공급자가 되어 이를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인쇄 솔루션과 인터넷 기업을 프린트 2.0이라는 이름 아래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일 뿐 결국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뿐이다. 시간이 지나 프린트 2.0에 동조하고 참여하는 기업이 늘어도 결과적으로 울타리만 커질 뿐 울타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웹 2.0과 달리 더 포괄적인 소통이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인쇄를 통해서나 인쇄를 하기 위해 컨텐츠를 주고받는 행위 등을 통해서 사람 사이의 소통이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뤄 내느냐는 점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장치, 컨텐츠 전달 매체와 보관 장소, 인쇄하는 곳 등 프린트 2.0에서 따져봐야 할 조건이 수십가지가 넘는다. 온라인에서 소비하는 웹 2.0과 달리 프린트 2.0은 오프라인을 아울러야 하기 때문에 이 복잡한 관계를 얼마나 짧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 장치, 서비스, 컨텐츠 유통, 장소 등으로 세분화해 소통의 방법을 말한다면 프린트 2.0은 너무 복잡한 개념이 된다. 이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이런게 아닐까? 나를 포함한 어떤 이라도 어디에 가더라도 자신이 뽑고자 하는 것을 다양한 인쇄 매체에 원하는 형태로 프린트할 수 있는 것. 지금처럼 집이나 사무실이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PC에 물린 프린터를 통해서 용지에만 인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PC 없는 독립된 인쇄 장치에서 인터넷에 올려둔 컨텐츠를 다양한 형태로 출력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쇄된 결과물이나 인쇄할 컨텐츠를 전달하는 것을 통해 사람 사이의 소통이 이뤄지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되고, 거꾸로 인쇄 장치를 통해 컨텐츠를 보관하거나 전달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개념을 완성하기에는 사람과 장치, 서비스, 장소 등 해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이 개념을 받아들일 이해가 부족한 상태고, 장치는 이 개념을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서비스는 사람과 장치에 연동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앞서 말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장소를 거론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 행사에서 HP가 프린트 2.0의 첫 삽을 뜨기 위해 내놓은 프린터와 복합기 등 이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버튼을 없애 다루기는 편할지언정 아직 프린트 2.0의 혁신을 느낄 만한 요소와 비전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너무 방대한 개념의 프린트 2.0을 제품 하나로 실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 개념을 잡는 것 조차 벅차 보인다.
프린트 2.0은 2015년까지 끌고 나갈 HP의 장기 비전이다. HP 역시 프린트 2.0이 매우 어려운 비즈니스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싶다. 하지만 프린트 2.0을 통한 손쉬운 소통의 방법을 연구하는 것 한편으로 웹 2.0에서 차용한 전략임을 계속 말하려면 개방적 비즈니스로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단순히 인터넷과 연동해 HP 서비스로 프린트하는 소박한 프린트 2.0의 메시지는 세계 프린팅 업계를 선도하는 거대 기업의 이미지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프린트 2.0 이라….음..그렇다면, 앱손,제록스와 대선 후보들 처럼 손잡고 포즈라두 취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ㅎㅎㅎ 개방과 개혁을 혼자만 먹으려는 HP 그대는 욕심쟁이 우후훗~!!! ^L^
도전중님도 ‘한 센스’ 하시는데요? ^^
굳이 생각해보더라도 보안적인 문제가 장난 아닐듯
아주 중요한 지적입니다. 다음에 이 부분에 대한 질의도 해봐야겠군요. ^^
2.0 이라는 단어만 봐도.. 벌써 두드러기가 날려고 합니다..ㅜㅜ..
(회사에서 내년도 업무계획을 발표하라는 이야기를.. 업무 2.0 을 만들어 오라는 말로 지시를 하더군요..–;;; … 너무 막 사용되는 2.0 … )
정말 2.0 울렁증 시대가 왔군요.. 그나저나 업무 2.0이면 굳이 회사 출근 안해도 되는 시스템이 아닌가요? ^^
칫솔님의 해당 포스트가 12/17일 버즈블로그 메인 헤드라인으로 링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