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각으로 9월 5일, IFA 개막일 아침에 나는 메세 베를린으로 가는 전철을 타는 대신 쿠담 거리에 있는 소피텔 호텔의 한 세미나실에 들어가야 했다. 제품을 보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할 IFA의 행사장의 분위과 완전히 반대인, 검은색 천을 덮은 책상만이 줄지어 늘어놓은 이곳에서 중요한 브리핑이 있어서였다. 여러 테크 미디어를 대상으로 퀄컴을 포함한 20여 개 기업이 1년 전에 모여 논의했던 올신 얼라이언스(AllSeen Alliance)에 대한 경과 보고가 이날 있었던 것이다.
올신 얼라이언스는 2013년 12월에 출범한 개방형 IoT 연합체. 이 지구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 달라 소통할 수 없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로의 언어를 배우거나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언어를 쓰는 것처럼, 인터넷에 연결되는 수많은 장치끼리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공유하기 위해서 만든 산업간 연합체다.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가 달라도, 하드웨어나 운영체제 또는 소프트웨어마저 제각각이어도 올신 얼라이언스에 가입되어 있는 제조사들이 만든 IoT 제품들은 서로 소통에 필요한 기본 코드를 담고 있어 손쉽게 연동된다. 떠힌 올신 얼라이언스 회원사와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수많은 프로그램 코드를 공유해 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올신 얼라이언스는 IoT 표준을 세우기 위한 목적의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리눅스 재단 산하에 조직된 올신 얼라이언스는 개방형 기술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자동차, 홈, 건강, 주방, 오디오, 모바일, 가전 장치끼리 인터넷을 통해 대화가 가능한 여러 영역의 IoT 제품들을 곧바로 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관련 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지리한 논의와 문서 작업 끝에 표준을 도출하는 시간적 낭비를 없애는 대신 곧바로 이용자가 쓸 수 있는 IoT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좀더 현실적인 기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표준과 비표준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다수의 개방성과 호환성을 지닌 제품이 표준이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접근 방식이 더 빠르게 산업적 진전을 이룰 수도 있다. 리앗 벤저 올신 얼라이언스 회장은 “70여개 회원사들은 이름만 걸지 않고 활발하게 코드를 공유하고 있으며, 벌써 출시된 상용 제품들이 서로 연결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연합체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이날 올신 얼라이언스의 경과와 성과에 관한 짧은 브리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뒤쪽에 마련된 또 다른 방에선 IFA의 전시 부스에서도 볼 수 있는 올신 얼라이언스 제품들이 어떻게 연동해 보여주는지 시연을 진행했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으로 문을 열고 나가거나 들어올 때 각 가전 제품들이 알아서 에어컨이나 전등 스위치를 조작하고 스마트 시계에선 각 장치의 작동 상태를 표시한다. 빨래를 마치면 TV에서 끝마쳤다는 메시지를, 스피커는 빨래가 끝났다고 말해준다. 이 모든 상황은 앞으로 나올 미래의 제품이 아니라 지금 나와 있는 제품들 만으로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올신 얼라이언스의 업체들이 빠르게 IoT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배경에는 퀄컴이 올조인(AllJoyn)을 개방한 때문이다. 올조인은 하드웨어나 운영체제, 심지어 퀄컴의 수익원이 되는 칩셋마저 얽매이지 않고 서로 다른 성격를 가진 장치와 장치에서도 데이터를 손쉽게 주고 받기 위해서 고안된 개방형 소프트웨어 기술이다. 올조인 프레임워크를 올린 장치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검색하기 쉽고 필요한 메시지나 기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지난 해 퀄컴은 올신 얼라이언스를 통해 모든 제조사들이 해당 기술을 아무런 조건없이 쓸 수 있도록 허용한 상태다.
하지만 올신의 기초가 된 퀄컴의 올조인이 처음부터 IoT 기술로 각광받은 것은 아니다. 3년 전 퀄컴 산하 QuIC(Qualcomm Inovation Center)의 임원들은 올조인을 알리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를 뛰어다녔다. 우리나라도 그 해 겨울에 들러 올조인을 여러 테크 미디어와 블로그들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올조인을 처음 접했을 때 ‘저 기술이 지금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부터 든 것이 함정이었다. 영상이나 음악 컨텐츠를 다양한 장치에서 손쉽게 주고 받는 활용사례는 앞서 DLNA와 같은 합의된 업계 표준에 의해 이미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조인을 알리기 위해 발품을 팔던 퀄컴이 이 기술의 방향을 살짝 튼 건 지난 해 초. 종전의 이용 경험을 대체하는 것보다 앞으로 성장할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시장에 올조인을 적용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해 가을 IFA가 열리고 있던 베를린에서 퀄컴은 20개 가전 및 IT 업체와 함께 사물인터넷제품에 올조인을 적용하기 위한 연합체의 출범을 협의했고 결국 그해 말 올신(AllSeen) 연합체를 구축하면서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올신 얼라이언스에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참여를 꺼리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비록 올신 얼라이언스가 개방형이라고 해도 그 기술적 권리를 갖고 있는 퀄컴이 훗날 변심할 지로 모른다며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이에 대해 퀄컴의 입장은 단호하다. 퀄컴 코리아 박문서 부사장은 “퀄컴이 올조인 프레임워크에 대한 기술적 권리는 갖고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곳은 올신 얼라이언스 이사회이므로 퀄컴이 올조인의 권리를 마음대로 휘두를 방법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퀄컴 단독으로 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고 올신 얼라이언스를 통해 선언한 터라 그런 논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IoT 업계의 표준 경쟁에 나선 곳은 삼성, 인텔을 중심으로 구성된 OIC(Open Interconnect Consortium)도 있다. 개방성을 비롯해 프레임워크 기반으로 기술을 구현하는 방식에선 올신 얼라이언스와 큰 차이는 없지만, 참여하고 있는 기업이나 접근 방식은 달라 보인다. 올신 얼라이언스는 모든 코드를 개방한 채 더 많은 개발자들의 참여를 독려 중이다. 또한 올신 회원사가 아니더라도 관련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인증 제도까지 개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올신 얼라이언스는 LG, 소니, 하이얼, 파나소닉, 일렉트로룩스, 샤프, 마이크로소프트 등 70여개 업체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번 IFA에서 이미 올신 관련 제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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