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더 이상한 데이터 중심 요금제

스마트폰에 의해 바뀐 산업 지형이 한둘이 아니라지만,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이통시장은 그 진화의 속도가 가장 느린 곳 중 하나다. 음성 중심에서 이용 환경이 데이터로 넘어간지 오래된 마당에 이통 시장의 권력자들은 그 중심을 데이터로 옮기는 데 매우 인색하게 굴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미 음성과 문자로 돈을 버는 약발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던 터라 데이터 중심의 과금체계로 돌아서야 할 타이밍을 노리던 상황에서 그 첫번째 신호탄을 5월 7일 KT가 쏘았다. 아마 이 신호탄을 본 다른 이통사업자들도 머지 않아 비슷한 요금제를 들고 뛰어들 것이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라고 말하는 정확한 명칭은 ‘데이터 선택 요금제’다. 이용자가 쓸 무선 데이터 이용량을 정한 만큼 추가 요금을 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필요한 만큼 데이터 비용을 냈던 종전 방식과 뭐가 다르냐 할 수도 있다. 이런 질문에 이통사는 음성과 문자 이용에 대한 부담 없이 무선 데이터의 용량만 생각하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음성과 문자는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많은 매체들은 음성과 문자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고 필요한 만큼 데이터를 쓰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 시대를 열었다’며 호들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음성과 문자를 무제한으로 쓰는 점에서 환호를 보내야 마땅하다 싶은데, 이번 요금제를 들여다보면 데이터 중심 요금제라면서도 그 옵션과 요금을 대비해보면 결코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데이터를 쓰는 이용자보다 데이터를 안 쓰는 이용자에게 더 유리해 보인다. 그렇다고 데이터를 안 쓰는 이용자에게 무조건 유리하다고 하기에도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너무 뻔한 이통사의 노림수가 숨어 있다.

일단 데이터 선택 요금제가 필요한 만큼 데이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기본 요금을 올리려는 의도가 너무 짙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기본료 폐지에 대한 논의가 오간 데는 이용자에게 아무런 혜택이 없는 기본료를 통한 망 유지 및 투자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하게 막아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통 업계는 기본료의 폐지를 분명하게 거부하는 대신 이번 요금제처럼 혜택을 더 넣고 기본료를 올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용자에게 아무 것도 주는 게 없으니 없애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무제한 통화와 문자 같은 혜택을 넣은 만큼 그만큼 더 받는 쪽으로 요금제를 개편해 버린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아무것도 없는 기본료를 내는 것보다 통화 요금을 더 지출하지 않는 이쪽을 더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료를 무려 2만원 더 올리는 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요금제는 기본료를 올리는 그 시작점으로 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데이터 선택 요금제라는 표현을 통해 마치 데이터에 초점을 맞춘 요금제처럼 보이는데도 데이터를 전혀 싸게 쓸 수 없는 함정이 있다. 데이터 중심의 요금 체계는 데이터 용량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데, 2만9천900원의 기본료의 데이터는 고작 300MB다. 300MB의 데이터를 쓸 이용자가 이 요금제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5천원을 더 내면 기본에 700MB를 더한 1GB의 데이터를 쓸 수 있지만,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면 역시 이 요금제로 선택하기 어렵다. 아무리 다음 달 데이터를 당겨 쓰고 남은 데이터를 밀어내도 쌓을 수 있는 용향은 너무 적다. 데이터 용량 관점으로 보면 같은 가격에 6GB의 데이터를 주는 알뜰폰의 반값 유심이 더 효율적이다. 데이터 선택 요금제에서 제대로 된 혜택의 시작은 10GB 기본 용량과 매일 2GB의 추가 데이터, LTE 안심 옵션이 포함된 5만9천900원부터다. 비슷한 조건을 가진 무한 요금제보다 2만 원 정도 싸지만, 그 이하 요금제는 데이터 용량 대비 가격 관점으로 볼 때 비효율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무제한 음성과 문자라는 문구를 감춘 채 데이터 용량부터 먼저 보면 이용자가 선택할 요금 구간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높은 기본료에도 데이터는 쥐꼬리인데, 그나마 쓸만한 데이터 옵션은 확실히 비싼 쪽에 있으니 말이다. 물론 다량의 데이터 이용자에게는 이전보다 혜택이 좋아진 점이 있긴 하나 무제한 음성과 문자를 거의 쓰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데이터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선택할 옵션은 실제로 많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데이터 선택 요금제가 데이터를 쓰는 만큼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두더라도 이용자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둘로 나뉜다. 기본 요금제에선 통화 요금을 더 내지 않는 것에 끌리는 이용자를, 고가에서는 데이터를 많이 쓰는 이용자를 잡는 것이다. 그 중간의 데이터 구간은 너무나 애매해서 이를 선택할 이용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더 비싼 기본료와 더 비싼 요금제의 선택을 유도해 그 소비를 부추기고 있지만 이를 지적하는 곳이 없다는 것. 데이터 소비를 중심에 둔 요금제로 개편은 불가피한데, 데이터를 기본으로 삼아 기본료를 정하진 않는 것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데이터를 더 소비하는 이용자에게 방점을 찍은 데이터 중심 요금제라는 진정한 의미와 너무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통사들도 같은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이용자의 요구와 상관 없이…

PHIL CHiTSOL CHOI Written by:

Be First to Comment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