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열리는 중국 인텔 개발자 포럼(이하 IDF)은 지금까지 베이징(북경)에서 열렸지만,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장소를 선전(심천)으로 옮겨서 진행했다. 조금은 낯선 풍경이기는 해도 이미 세계의 IT 공장이면서 혁신의 가속도가 붙은 선전에서 열리는 IDF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인텔 입장에서 PC를 납품하는 OEM 기업이 밀집한 선전은 IDF를 열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을 법하다. PC와 모바일, 사물 인터넷과 데이터 센터, 그리고 인텔이 생각하지 못했던 제품들이 생산되는 선전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 러브콜을 보내기엔 너무 이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해도 지난 4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열린 중국 IDF에서 인텔이 중국에 대한 예찬만 늘여놓은 것은 아니다. 사실 선전 IDF 2014에서 인텔은 제법 흥미로운 소식을 여럿 쏟아냈다. 단지 몇년 전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관련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IDF가 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행사가 아닌 관심 밖의 사안이 된 탓이다. 그 배경에는 인텔이 모바일 부문이나 사물 인터넷, 인지 컴퓨팅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비중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강했지만 부진한 PC 부문 때문일 것이다. 인텔은 여전히 PC용 프로세서를 만드는 실리콘 기업의 이미지가 강하니까.
사실 선전 IDF 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IDF와 컴퓨텍스에서 인텔은 PC 부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는 않았다. 단지 PC 부문과 관련한 메시지들은 좀 고루하고 답답한 면이 있었고, 발표의 우선 순위에서 점점 밀린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나마 선전 IDF에서 한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인텔이 자신들의 가치에 대한 설명이다.
그 중에 대중화된 모든 운영체제에 대응하는 프로세서 기업이라는 점도 들어 있다. 윈도와 크롬, 맥OS X와 안드로이드, 그리고 그밖의 모든 운영체제에 대응하는 프로세서라는 점을 좀더 명확하게 밝힌 점이다. 그 이전까지 인텔은 윈도와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만 이야기했다. 다른 운영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나설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IDF에서는 잠깐이나마 이야기한 이 점은 인상적이다. 비록 안드로이드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으나 꾸준히 시도를 하는 중이고 나머지 영역에선 여전히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흥미로운 점은 크롬OS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크롬OS는 구글의 클라우드 운영체제다. 인텔은 크롬OS의 초기 시절 넷북 수준의 레퍼런스로 함께 참여한 업체였다. 크롬OS는 싼 가격과 관리의 효율성 덕분에 교육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구글에서 안드로이드와 크롬을 함께 관장하고 있는 순다 피차이 수석 부사장은 지난 해 10월까지 5000 곳 이상의 미국 학교에서 크롬북을 학습용으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고, NPD는 2013년 1월부터 11월까지 커머셜(기업 및 교육) PC 판매량 중 9.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크롬OS의 성장에 따라 인텔도 좀더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크롬OS와 같은 저가 입문용(Entry-level) PC를 위한 또다른 프로세서, ‘브라스웰'(Braswell)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텔에게 저가 PC용 프로세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베이 트레일은 저가 태블릿에 맞춰져 있어 다른 시장에 적합한 프로세서를 내놓는 것이다. 아직 브라스웰의 정확한 제원이나 성능은 공개되지 않았고 단지 선전 IDF에서14nm 공정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만 밝혔을 뿐 언제 이 칩을 출시할 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미세 공정으로 인한 생산 원가의 절감과 팬 같은 부품을 쓰지 않는데 따르는 비용 감소로 더 값싼 크롬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될 뿐이다.
브라스웰의 등장은 인텔이 PC 부문을 장치의 이용 환경 별로 세분화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지금 인텔 저가 프로세서는 베이트레일 계열 아톰 프로세서와 셀러론이 맡고 있지만,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세분화한다는 뜻이다. 즉, 베이트레일 아톰 프로세서는 계속 저가 태블릿용으로 남겨두고 향후 14nm 공정의 체리트레일은 고성능 고가 태블릿을 겨냥하며, 고성능의 중고가 노트북과 PC는 계속 코어 프로세서 계열로 이끌고, 저가 PC 시장은 브라스웰에 맡기는 형태다.
브라스웰이 저가 PC 시장용이라지만 선전 IDF에서 밝힌 것처럼 사실상 크롬OS용으로 나올 듯하다. 윈도와 접목보다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라서다. 윈도 역시 저가 시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윈도는 저가 태블릿에 더 관심을 두고 있고 저가 PC에 맞는 운영체제 라이센스 전략이 없는 상태다. 때문에 브라스웰과 베이트레일은 운영체제의 다른 성격만큼 일부 구조나 기능이 다를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모든 운영체제에 최적화된 프로세서를 내놓는다는 게 인텔의 전략이라면 브라스웰은 크롬OS 시장도 놓치지 않게 할 인텔의 새 무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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