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세밀하게 감별하는 능력은 턱없이 모자라지만, 어떤 소리의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내게 잘 맞는가를 찾아야 할 땐 조금 예민지려고 노력한다. 그래봐야 결국 가격대비 후회없는 제품을 고르는 게 고작이고, 그런 점에서 후회하게 만드는 제품도 있고 만족을 주는 제품도 있기 마련이다. 젠하이저는 그래도 즐겨 쓰고 있는 젠하이저는 IE8은 소리의 질에서, MM550은 노이즈 캔슬링 성능에서 만족을 주는 제품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이 두 제품에서 느껴지는 젠하이저는 꽤 고루하다. 젠하이저의 로고가 낯설거나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드는 것은 둘 째 치고 참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도 소리의 질적인 측면이나 노이즈 감쇄 효과의 능력만 믿고 써서 불만이 없을 뿐이지 사실 젠하이저의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누군가에게 선뜻 소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하이파이 시장에서 알아서 구매하는 층이 많다는 건 다행이지만, 젠하이저를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하기는 참 난감하다.
그런 이미지의 문제는 젠하이저도 모르는 바가 아닌 듯하다. 최근 들어 독일산 제품의 투박함을 벗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걸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최근 출시하고 있는 젠하이저의 주력 제품이나 마케팅 활동을 보면 좀더 젊은 층에게 어울리려는 노력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깨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 보인다.
모멘텀에 이어 지난 7월 29일에 발표한 모멘텀 온이어는 사실 종전의 젠하이저 제품군과 다른 이미지를 풍긴다. 하우징과 이어 패드에 다양한 색상과 거친 느낌이면서도 실제로는 부드러운 알칸테라 재질을 쓰고 하우징의 위치를 조절하는 헤어 밴드 슬라이더는 스테인리스 질감을 그대로 노출하는 등 기계적인 느낌보다 좀더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귀 전체를 덮는 이어패드를 가진 모멘텀과 달리 모멘텀 온이어는 귀 위에 걸치는 제품이지만, 그리 강하지 않은 헤어밴드와 부드러운 이어패드의 질감 덕분에 편하게 쓸 수 있다. 더구나 이날 발표도 성능을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패션에도 잘 어울리는 헤드폰이라는 컨셉을 강조하고자 패션쇼 형태로 진행하는 등 독특하게 구성했다.
제품만 젊은 감각을 갖추려 한 것은 아니다. 좀더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마케팅도 시작했다. 젠하이저 코리아가 지난 7월 26일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입구에 개장한 젠하이저 뮤직 카페는 외부에서 보면 프랜차이즈 커피샵이지만, 안쪽에 젠하이저 헤드폰과 이어폰을 골라서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청음 시설을 갖추었다. 많은 젊은 이들이 오고가는 대학로 부근에 하이브리드 매장을 연 것 역시 젊어지고픈 젠하이저의 시도다.
하지만 젊어진 제품 발표나 젊어지려는 마케팅에서 아쉬운 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젠하이저의 강점은 역시 좋은 소리를 듣는 경험에 있지만, 모멘텀 온이어 제품 발표회는 소리를 듣는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젠하이저 모멘텀 온이어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선 주변 소리를 되도록 차단해야 했지만, 쿵쾅거리는 파티 음악으로 인해 헤드폰의 소리를 듣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반대로 카페는 청음 시설을 갖추면서 좋은 소리를 들려주려는 시도는 좋으나 제품을 배치한 장식은 과거 젠하이저 매장처럼 딱딱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어 친근함이 덜하다.
분명 젊어지려는 젠하이저의 시도는 미래의 고객을 겨냥한 좋은 접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냥 젊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유지하며 젊어지는 것이다. 모멘텀과 모멘텀 온이어의 패션 감각만 강조하는 것보다는 품질을, 품질만 강조하는 것보다 젊은 층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감각적인 전시 기법이 좀더 조화를 이뤄야 할 듯하다. 지금의 변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젠하이저가 가진 가치를 심는 일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실력 있는 젊은 젠하이저를 만나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지만, 가치를 잃은 젠하이저는 의미없는 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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