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구글은 넥서스 이벤트에서 픽셀 C(PIXEL C)라는 태블릿을 공개했고, 12월 8일(미국 시각) 구글 플레이에 정식 상품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생산성에 중심을 둔 고성능 태블릿인 픽셀 C는 출시 이후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있다. 픽셀 C의 성능과 기능, 그 이용성과 관련한 수많은 리뷰에서 나온 여러 평가 때문이 아니라 픽셀 C를 출시하기까지 구글 내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감춰진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아마도 몇몇은 구글이 픽셀 C라는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출시할 때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왜냐하면 픽셀(PIXEL)은 이전까지 크롬 OS 기반의 컴퓨팅 장치를 일컫는 제품 이름이었는데, 안드로이드 기반 장치의 이름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구글은 종전까지 안드로이드를 운영체제로 쓰는 레퍼런스 태블릿도 넥서스 브랜드를 붙여왔던 터라 픽셀 브랜드로 내놓은 건 분명 이상한 모양새다. 이런 이상한 상황을 의아하게 여긴 아스테크니카가 픽셀 C의 과거를 캤고, 감춰진 지난 줄거리를 공개했다.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픽셀 C는 안드로이드 기반 장치가 아니었다고 한다. 원래 크롬 OS를 기반으로 하는 장치였다는 주장이다. 예정대로라면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아닌 최초의 크롬 태블릿이 될 판이었다. 그렇잖아도 지난 해 크롬 태블릿과 관련된 소문이 돌기는 했으나 실제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2014년 7월, 크롬 OS 오픈 소스 코드에서 가칭 ‘류’(Ryu) 보드가 노출됐다. 빌드 프로파일에서 확인된 류 보드는 구글이 크롬 OS 환경에서 개발하던 메인 보드로 엔비디아 테그라 프로세서에 USB 타입 C와 무선 충전을 갖췄다. 이 가운데 무선 충전을 빼면 지금 나온 픽셀 C의 기본 메인 보드의 구성과 비슷하다.
문제는 크롬 OS다. 원래 크롬 OS가 터치에 대응하는 운영체제가 아니었는데, 태블릿은 터치에 대응해야 하는 터라 변화가 불가능했다. 이에 지난 해 구글은 ‘프로젝트 아테나’(Project Athena)라는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개발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터치 스크린 환경에 대응하는 가상 키보드를 비롯해 빠른 조작을 위한 제스처와 작업 창의 전환을 위한 윈도 스위처(Windows Switcher) 등 크롬 OS에 도입하고 류 보드를 프로젝트 아테나의 첫 레퍼런스로 삼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실제로 완료했는지 확인되지 않은 채 2014년 12월에 취소되었다.
그 뒤 구글은 또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류 보드를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보에‘프랑켄보드’(Frankenboard)라 부르는 것을 추가했다. 10인치 터치스크린과 마우스 중심의 크롬 OS를 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코드가 함께 포함된 하이브리드 장치 프로젝트였다.
안드로이드 코드는 왜 추가 됐을까? 크롬 OS는 마우스 없이 다룰 수 없는 구조였던 터라 구글의 선택은 크롬 OS와 안드로이드의 듀얼 부팅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디지타임즈는 지난 2월 구글이 두 운영체제를 쓰는 투인원 크롬북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알렸지만, 결국 프로젝트 아테나처럼 5개월 뒤인 지난 7월 이 프랑켄보드도 포기했다.
듀얼 부트 계획이 중단된 지 불과 두 달 뒤 구글의 픽셀팀은 안드로이드를 올린 픽셀 C를 내놨다. 당시 선보인 픽셀 C는 겨우 2개뿐. 30~40여개 제품이 준비된 넥서스 5X와 6P와 비교해 이 제품이 얼마나 급하게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몇 주 지나 넥서스 5X와 6P를 출시한 데 비해 12월 8일 픽셀 C를 출시할 때까지 2달이나 더 걸렸다. 무엇보다 넥서스와 달리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는 생산성을 보완한 태블릿에 창 분할이나 음성 인식 등 여러 문제를 노출하면서 픽셀 팀은 레딧의 게시판 Q&A를 통해 이에 대한 보완을 약속해야만 했다.
만약 아스테크니카의 주장이 사실이면 픽셀 C는 매우 계획적으로 나온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아니다. 크롬 OS를 위한 하드웨어에 안드로이드를 올려 출시한 것이 불과해서다. 애초에 크롬 OS를 위한 플래그십 태블릿 대신 고급형 안드로이드 태블릿으로 둔갑한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크롬 OS를 쓰는 가장 큰 고객, 특히 학교와 사업장에서 요구하게 될 이용자 경험을 대비하고 제품을 준비했던 점에서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예상 밖의 답안지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크롬과 안드로이드의 현격한 차이를 통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지금 업계가 내다보고 있는 크롬 OS와 안드로이드의 통합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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