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텍스가 대만 PC 기업들이나 부품 제조사 중심의 전시회였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지만, 콧대 높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 앉았다. 대만 PC 업체들로만 꾸려도 넘쳤던 전시회의 활기는 올해에 더 느낄 수 없게 됐고, 자국 업체 중심으로만 이뤄진 전시회의 폐쇄성 탓에 오래 전부터 외국 기업들은 참여를 꺼려하고 있다. PC 산업의 중심이었던 전시회의 체질을 바꿔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듯하다.
지난 몇년 동안 컴퓨텍스를 지켜봤지만 현실적으로 PC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마 인텔일 것이다. 거꾸로 가는 시장의 성적표가 아니라 시장의 움직임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겠지만, 그들은 어쩐지 시간을 늦추려고만 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PC 시장을 주도해온 인텔은 그 정의를 남들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것 같진 않다. PC 시장의 성장 곡선을 꺾고 있는 경쟁 플랫폼의 선전과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아직 아직 PC 시대의 종말을 고하긴 이르다고 말한다. 수많은 PC 업체들이 컴퓨텍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번 컴퓨텍스에서 다시 한번 그 역설을 주장했지만, 어쩐지 더 이상 굳게 믿을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인텔의 시도는 이번 컴퓨텍스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인텔은 지난 몇년 동안 애써왔던 울트라북에 대한 메시지를 단 하나도 이번 컴퓨텍스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지난 해부터 쓰기 시작한 투인원(2-in-1) 폼팩터에 대한 메시지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투인원은 두 가지 기능을 하나에 담은 PC로 필요에 따라 태블릿이나 노트북으로 변형해서 쓸 수 있는 폼팩터를 가리킨다.
인텔이 이번 컴퓨텍스에서 내놓은 새로운 투인원 레퍼런스 디자인과 에이수스도 첫 상용 제품인 트랜스포머 북 T300 치(Transformer book T300 Chi)는 앞서 나온 제품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12인치 화면에 태블릿과 키보드를 뗐다 붙였다할 수 있는 점에선 그렇다. 하지만 두 제품은 이전 세대의 것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훨씬 얇고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강력한 PC성능과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은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훨씬 손쉽게 들고다닐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더 눈에 띄는 대목은 단지 가볍고 얇아졌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팬이 없어도 작동하는 코어 M의 능력과 별개로 인텔은 이번 레퍼런스에서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없앴다. 바로 대형 단자들이다. USB나 외부 디스플레이 연결을 위한 HDMI 등 PC의 연결성을 강화했던 거의 모든 단자를 레퍼런스 디자인에서 제외했다. 마이크로 USB와 같은 초소형 단자만 선택적으로 포함하면서 외형적인 변화도 함께 준 것. MS 서피스 프로처럼 대형 USB 단자를 없애지 않아도 얇게 만들 수 있지만, 인텔의 레퍼런스 디자인에서 큰 단자를 없애 큰 단자를 넣으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번 레퍼런스의 등장은 PC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데 중요한 예가 되겠지만, 애석하게도 확실하게 달라진 투인원 폼팩터는 지난 해 그 첫 메시지를 내놨어야 옳았다. 기존을 틀을 벗어나 좀더 일찍 업계에 달라져야 할 이유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지금 레퍼런스를 등장시킨 것은 진입이 늦어 고전하고 있는 모바일 부분만 아니라 이용 경험의 진화를 예상하고 PC의 변화를 이끄는 속도도 많이 늦어지고 있다는 해석도 될 수 있다. 모바일과 PC를 모두 잡고 싶은 전략을 이끌어가는 인텔이지만, 그 누구보다 빠른 기술적 리더십을 업계에 던져왔던 그들의 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방증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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