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팔 것을 아는 아마존과 애플의 태블릿 전략‘이란 글을 통해 아마존과 애플은 어떻게 태블릿 사업을 통해 어떻게 수익을 얻으려는지 간단히 정리했다. 이에 비해 경쟁 상대 중 하나인 안드로이드 진영-아마존도 안드로이드 OS를 쓰지만 독자적인 것으로 분류하겠음-의 태블릿은 이들에 비해 그다지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 ‘경쟁자’라고 불렀지만 실지 시장의 결과가 너무나 민망해 경쟁자라는 호칭이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태블릿이 왜 시장에서 힘겨운지 그 이유를 정리한다.
같은 개방형 생태계와 분업화의 불협화음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것은 개방형 생태계라는 장점이 발휘된 덕분이다. 어느 한 집단이 그 생태계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자기가 맡은 역할에 집중해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진화의 속도를 앞당기는 장점이 작용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의 핵심 코어 설계와 개발 자원을 지원하고, 제조사는 다양한 단말기 제조에 집중하며, 이통사는 망 서비스 상품과 단말기의 유통을, 개발자는 생태계를 살찌우는 앱을 만드는 데에만 그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분업화를 이뤘고 각 분업 개체간 어느 정도 다툼은 있었어도 상당히 좋은 호흡을 보였다. 지난 몇 년간 안드로이드는 이러한 분업화를 통해 매우 빠른 발전을 보였고 시장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냈다.
그러나 태블릿 시장은 스마트폰만큼의 분업화가 자리잡기 힘든 이유가 있다. 태블릿 시장에서는 이통사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다. 통신 서비스를 판매해 이익을 얻는 수익 구조와 맞물려 있는 터라 이통사는 스마트폰의 판매와 유통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반면, 일부 제품을 빼고 통화 기능이 거의 없는 태블릿은 기본적으로 이통 서비스와 밀착력이 떨어진다. 이동 중 데이터 소비가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통 서비스와 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처럼 이통사를 통해 서비스와 함께 사야 하는 제품으로 인식하지 않으므로 이통사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통’이란 문제에 직면한 제조사들
이통사가 안드로이드 태블릿 생태계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하드웨어 제조사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통사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망을 서비스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지만, 가입자 유치와 효율적인 소비에 필요한 단말을 제조사로부터 받아 시장에 공급하던 유통자로서 역할도 분명했던 터라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이통사에게 상당부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제조사들은 제품을 이통사에 납품하는 것으로 재고와 물류, 유통 그밖의 사후서비스와 관련된 상당한 비용을 이통사에게 맡겨 절감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태블릿 생태계에서 이통사의 몫이 줄어들면서 결과적으로 유통 방법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던 스마트폰 사업보다 더 많은 부담을 제조사가 안게 된 것이다. 자체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태블릿 제조사에게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했고, 직접 판매를 하거나 제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다른 판매 채널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물류와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 같은 비용을 제품에 포함시키면서 제조사들은 더 복잡한 계산을 해야만 했다.
제품 단가 상승에 무감각한 현실
이러한 비용 증가는 하드웨어 판매로 이익을 얻어야 할 제조 업체에게 독으로 작용한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경쟁 업체보다 더 좋은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했던 스마트폰과 다르게 이제는 정해진 단가 이내에서 제품을 개발해야만 시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악조건으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한 결론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데다 안드로이드 태블릿을 만드는 제조사에게 모두 적용되는 문제였다. 안드로이드가 개방형 생태계다보니 여러 제조사가 참여할 수 있는데 모든 제조사에게 동일하게 비용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용 증가는 하드웨어 판매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얻기 힘든 안드로이드 태블릿 제조사들이 섣불리 제품 단가를 낮출 수 없도록 만드는 한 요인이 된다.
물론 제품의 단가가 이런 유통과 관련된 각종 비용 때문 만으로 무조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애플처럼 대량의 부품 구매 협상을 통해 제조 단가를 낮추는 것도 대당 마진을 높이는 방법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다수의 제조사가 존재하는 안드로이드 태블릿에서 특정 제조사 홀로 위험 부담이 큰 대량 생산 방식을 실행하기란 매우 힘들다.
넥서스7과 구글의 생색내기
하지만 누군가는 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흥미롭게도 도박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구글이다. 구글이 넥서스7이라는 자체 상표의 태블릿을 199달러(쿼드코어, 8GB 플래시 메모리, 부가세 제외)에 내놓은 것이다. 일단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점은 다행이지만, 어쩌면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에 울리는 경고음을 조금 낮추기 위한 제스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걱정이다. 안드로이드 태블릿 생태계에 남아 있는 다른 제조사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구글이 이통사의 일부 짐을 대신 짊어지기로 한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에이수스(ASUS)가 제조를 맡고 마케팅은 구글과 에이수스가 공동으로 진행하며 판매와 유통은 구글을 통해서 이뤄진다. 몇몇 시장에서만 이 모델을 통해 판매되지만, 에이수스가 직접 판매를 하지 않아 비용의 상당부분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넥서스7은 스마트폰과 아주 흡사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셈이다.
넥서스7이 단기간 인기를 얻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구글이 특정 업체의 제품을 떠안고 판매하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에는 상당히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제조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안드로이드 태블릿 업체의 제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고, 이것은 곧바로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 가장 큰 매력인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의 강점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잘한다는 칭찬이 들어 기분 좋을 지 몰라도 지속 가능한 안드로이드 태블릿 생태계를 꿈꿔야 할 구글이 해야 할 일은 분명 아니다.
다양성 속에 개성마저 사라지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쯤에서 안드로이드 태블릿의 강점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개방형을 지향하고 있고 여러 제조사의 참여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다양한 제원과 성능, 외형의 제품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고 이용자는 취향에 따라 제품을 고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안드로이드 태블릿 전체를 놓고 볼 때의 강점일 뿐 개별 제품의 강점이 되기는 힘들다. 점점 제조사에게 안아야 할 부담이 커지고 가격의 이점을 살리기 힘들어지는 제조 여건에서는 제조사 고유의 강점을 살릴 여력은 줄어든다. 특히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용자가 굳이 한 제품을 오래 쓰거나 한 업체의 제품을 연속적으로 이용할 의무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앱스토어처럼 구글 플레이가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두는 효과는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 그것이 특정 제품 안에 이용자를 가두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므로 제조사들이 구글 플레이 같은 서비스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기를 꺼려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파편화를 막기 위해 구글이 적극적인 통제에 나서면서 점점 안드로이드 장치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사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이용자 경험을 담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구글 방식을 이용토록 해 이제는 어떤 안드로이드 태블릿이라도 비슷하게 보이는 지경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제품 차별화가 없다면 당연히 가장 값싼 제품을 사는 것이 이치이고, 그것이 지금 안드로이드 태블릿에서 이용자들이 바라는 유일한 결론으로 다가서고 있다.
안드로이드 태블릿 생태계에서 다양성이 실종되는 것은 결국 생존력을 잃는다는 이야기다. 훌륭하게 스마트폰 생태계를 구축한 안드로이드지만, 태블릿은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문제는 그 중심을 잡아야 할 구글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조율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잘못된 처방으로 생태계를 위험에 몰아 넣고 있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태블릿 제조 업체들은 팔아야 할 것이 없고,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모르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지만, 구글은 정답을 찾는 수식을 쓰지 않고 엉뚱한 답만 제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덧붙임 #
1. 안드로이드 태블릿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유도했을 때 가장 활발하게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을 꼽으라면 소니와 삼성이 아닐까?
2. 안드로이드 태블릿 시장이 죽지도 않을 테고 꾸준하게 성장은 하겠지만, 스마트폰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상 제조 업체들의 어려움은 장기화될 수도 있다.
3. 이 글을 쓰면서 애플의 리셀러 유통 정책은 참으로 탁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제품을 비싸게 팔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잘 팔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저는 안드로이드가 태블릿에서 힘을 못쓰는건 파편화와 그에 따른 컨텐츠 부족이라고 봅니다. 태블릿은 본격적인 컨텐츠 소비 제품인데 해상도, OS가 너무 다양하니 그에 맞춰 컨텐츠를 제작하기에 수지가 안맞습니다. 저라도 iOS용은 컨텐츠를 만들 의향이 있지만 안드로이드용은 제가 개인적으로 쓸거 아니면 만들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호환성 맞추려면 머리 아파요.
앱 개발자 입장에서 파편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결과적으로 파편화의 질서가 잡히면 개발자의 선택은 오히려 간단해 집니다. 충분히 사업성을 가진 태블릿을 우선적으로 눈여겨보면 되니까요.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초기에 어떤 제품을 중심으로 개발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지금은 어떤 제품부터 지원해야 하는지 답은 뻔히 나와 있지 않은가요? 태블릿에 사용할만한 앱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전에 하드웨어 보급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게 더 필요한 상황이고 이 글은 그런 환경의 구축이 왜 힘든지 지적한 것입니다. ^^
앞으로 파이가 커질것이 분명하기에.. 놓치면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은 매우 힘든지라…. 태블릿 시장에서 현재 웃고 있는 회사는 애플과 아마존 밖에 없는 듯 합니다…
당분간은 두 회사가 가장 크게 웃을 것 같긴 합니다. 어쨌거나 안드로이드도 너무 뒤에 따라가는 일이 없기를…
다양한 해상도와 너무 잦은 OS의 업데이트(기분탓이려나요?)
그리고 비표준(?) 안드로이드들로 인한 호환성 부재등..
여전히 안드로이드가 iOS를 따라가기에는 많이 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 문제가 되는데 320×240 정도 해상도에서 x2배 뻥튀기(아이패드 처럼)해서
비표준 해상도들을 하위호환해주는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뻥튀기 만으로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게 현실이지요. 결과적으로 많이 팔린 것이 대세가 되고 그 제품을 중심으로 파편화의 질서가 잡혀간다면 오히려 더 풍부하고 다양한 생태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PC사업부와 휴대폰 사업부가 다른 삼성은 태블릿을 잘 만들 필요가 없죠. 윈8에는 적극적일지 몰라도, 휴대폰 사업부는 태블릿에 관심이 없을겁니다. 스마트 TV는 더 먼동네.
모바일 사업부의 관심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B2B 시장 쪽은 그런대로 공략하고 있지만, 일반 컨슈머 시장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고민하고 답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