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거의 모든 매체가 2007년 전망을 합니다.
저 역시 제가 맡은 한 두가지 분야에 대한 전망을 했지만, 무엇보다 기대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태블릿 PC입니다.
작년에는 새 달력을 걸자마자 오리가미와 UMPC가 불쑥 튀어 나와 모바일 PC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면, 올해는 UMPC의 약진보다 태블릿 PC의 명예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대를 걸게 된 큰 계기는 없었지만 작은 조짐들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몇몇 노트북 업체들이 값을 낮춘 새 태블릿 PC들을 내놓았거나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후지쯔 P1510, 연말에 LG 전자의 C1, 곧 발표될 hp TX1000 등을 볼 수 있거나 보게 될 것입니다. 또 맥을 개조해 파는 OWC에서 자체 제작한 맥 태블릿도 얼마전 MWSF에 나타나 관심을 끌기도 했고요.
사실 태블릿 PC가 본격적으로 시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윈도 XP 태블릿 에디션을 넣은 hp TC 1000과 에이서 트레블메이트 C1000이 태블릿 PC 시장을 여는 첫 모델들이었지요.
그 뒤에도 태블릿 PC는 드문드문 나왔지만 대부분은 비즈니스 시장에 맞춘 모델이 많았습니다. 키보드 대신 펜으로 써서 기록하는 특수 시장, 예를 들어 병원이나 학교, 건축 사업장 등에서 수요는 있었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노트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기도 했고, 굳이 펜으로 쓸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이처럼 일반 소비자의 선택을 바라지 않아 고사 직전에 있던 태블릿 PC들이 마른 땅 위에 새싹이 피듯 조용히 나오고 있습니다.(LG만 참 시끌벅적하죠 ^^;;)
그런데 태블릿 PC를 내놓은 업체를 보니 눈에 띄는 게 하나가 있네요. 거의 모두 UMPC를 만들지 않는 업체라는 점입니다. LG전자, 후지쯔, hp, 도시바, 파나소닉, 아수스, 레노버 중에 아수스를 빼면 모두 UMPC와는 거리가 먼 업체들입니다.
이 업체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UMPC로 가지 않은 이유가 비슷비슷합니다. UMPC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들이랄까요. 가볍고 작아서 들고다니기 좋을지는 모르지만 어중간한 덩치의 본체, 작은 화면에 낮은 표시 크기, 불편한 입력기 탓에 업무나 학업에서 활용도가 떨어진다고들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들도 고민은 있습니다.
노트북이 잘 나간다고 해도 다른 시장을 겨냥한 새제품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돈들여 UMPC를 만들 생각은 없지만, UMPC가 나오면서 달라진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노트북을 만들 필요성은 생겼습니다. 비록 큰 시장은 아니더라도 색다른 방향으로 이용자들을 이끌 그런 제품 말입니다.
또한 PC처럼 공통된 플랫폼에 기반해 디자인이 좌우하는 노트북 비즈니스의 생리만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다. UMPC처럼 아주 다르게 생긴 제품이라면 그게 성공을 했든 안했든 제조업체의 클래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지만, 노트북만 만드는 업체들에게는 그 ‘하나’가 없습니다. 그냥 노트북 업체인 것이지요.
여기에 UMPC가 가져온 영향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만은 아닙니다. 앞서 펜을 쓸 이유가 없는 게 컨슈머 태블릿 PC의 구매력을 떨어뜨린 거라면 UMPC는 펜을 써야 할 이유, 아니 화면을 왜 만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줬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고 손가락이나 펜으로 쓰는 것에서 느끼는 감성,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등은 종전 모바일 컴퓨팅의 패턴을 살짝 틀었다고나 할까요.
여기에 휴대가 쉬운 크기와 무게, 자유로운 입력 같은 UMPC의 특징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에다 노트북의 장점을 더한 제품을 만들어야 했던 노트북 업체들에게 태블릿 PC는 그 조건에 딱 들어 맞는 해결사와 같습니다.
화면을 돌려 접어 손글씨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노트북처럼 입력과 활용도 할 수 있으니까요. 따로 예산을 잡아 UMPC를 개발하지 않아도 노트북 플랫폼을 쓰면서 색다른 시장으로 넓힐 수 있으니 개발 부담도 적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고 값은 UMPC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비즈니스 태블릿처럼 수요가 정해진 것은 구매자의 환경에 맞는 여러 요소를 갖춰야 하지만 컨슈머 태블릿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고급 부품보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기만 하면 되니까요.
가장 큰 변화는 전자식 대신 압력식 태블릿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전자식 태블릿은 모두 와콤으로부터 공급받는데, 제조 단가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참고로 와콤은 전자식 태블릿 특허권자로 세계 태블릿 시장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압력식 단가가 매우 낮습니다. 터치 화면을 바꾸고 컨슈머 시장에서 불필요한 보안 기능을 제거해버리면 일반 노트북 값 정도로 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컨슈머 태블릿 PC는 UMPC와 같은 휴대성과 재미, 노트북의 활용도를 모두 살리면서 값은 일반 노트북과 같거나 조금 비싼 정도라 접근성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업체가 올해 신형 태블릿 PC를 낼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새해부터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태블릿 PC 소식들이 올해 그 활약을 기대하게 합니다.
(아.. 펜컴퓨팅 개념에서 2002년 태블릿 PC가 최초는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9년 그리드패드나 1991년 펜포인트, 1992년 펜컴퓨팅용 MS 윈도, 펜서비스 기능을 넣은 윈도 95 등 펜컴퓨팅용 소프트웨어는 나왔습니다. 일부는 PDA에 적용되기도 했지만, 들고 다니면서 쓰는 펜 PC에 적용되기에는 하드웨어 환경이 받쳐주질 못했습니다. 2002년 태블릿 PC가 두 가지가 결합해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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