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 이하 IoT) 전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금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다른 시장 경쟁자 또는 동업자들이 뭉친 무리 안에 들어가거나 겨루려고 애쓰는 모습이 덜 보여서다. 지금 사물 인터넷을 둘러싼 산업 표준화를 위해 올신 얼라이언스(Allseen Alliance) 같은 연합체를 구성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인텔이 참여한 OIC 컨소시엄은 느림보 걸음이다. 한쪽에선 개방형 참여를 외치며 부지런히 뛰어 가는 모양새라 긴장할 법도 한데 인텔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밖이다. 인텔 코리아의 여러 관계자에게 OIC의 진행 상황을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텔의 IoT 전략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아서다.
최근 인텔의 주가가 35달러를 돌파했다. 10년 만에 최고치다. 그렇다고 수익원이 달라진 것은 없다. 인텔의 기본적인 전략은 고부가가치를 지닌 프로세서를 공급하는 환경의 구성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진 않다. 여전히 인텔은 프로세서를 팔아서 돈을 번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남기는 프로세서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PC용 프로세서를 많이 팔았다면 지금은 PC용 프로세서를 다른 분야에 활용하거나 더 비싼 서버용 프로세서의 공급이 늘었다. 과거 주력이었던 PC는 더 이상 영광을 누릴 수 없는데도 시장의 평가는 반대로 나타나는 이유다. 태블릿이 아닌 전통적인 PC 출하는 줄어들더라도 오히려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프로세서를 통해 인텔을 더 눈여겨 보게 만든 것이다.
그 배경에 쑥쑥 커가는 사물 인터넷을 빼놓을 수 없다. IoT가 인텔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세서 시장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인텔이 갖고 있던 기존 제품들의 수요를 더 늘리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PC 활황기에 PC용 프로세서를 많이 팔아야 했다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IoT 시대의 전략에서 무엇을 많이 팔아야 하는가의 관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수많은 센서와 처리 장치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하는 산업이 커지면서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와 데이터 센터의 증가가 인텔에게 더 큰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텔의 IoT 전략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아직 인텔 안에서 5개의 사업부가 제각각 IoT를 다루다보니 조직화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더 체계화된 모습을 볼 수는 있을 듯하다. 당장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각 사업부가 나눠 맡은 IoT 역량을 순서대로 배치해 효율적으로 돌아가게끔 하려는 것이다. 단말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는 IoT 솔루션 그룹, 단말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 활용을 지원하는 데이터 센터 그룹, IoT 장치와 데이터 센터 등에 필요한 여러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처리를 돕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그룹, 스마트 팔찌나 스마트 안경 같은 웨어러블을 다루는 뉴디바이스 그룹, IoT와 관련된 저전력 솔루션과 차세대 보안 등 기반 기술을 연구하는 인텔 랩의 역할을 좀더 분명하게 나눴다.
체제는 그대로지만 단말에서 클라우드까지 이어지는 IoT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일이 겹치지 않도록 역할을 명확히 나누지 않고는 인텔이 2015년에 본격적으로 펼칠 IoT 전략의 수행은 사실상 어렵다. 왜냐하면 인텔이 상대해야 할 협업자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종전 PC나 태블릿은 ODM와 OEM 등 소비재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기업이었다면 IoT 시대에 들어선 지금의 주요 파트너는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하는 산업에 접근하기 쉬운 컨설팅 기업이나 임베디드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는 대형 업체다. 액센츄어나 타타 컨설팅, IBM과 SAP 등을 거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4년은 IoT를 통해 사회적 비용 절감이 가져온 구체적인 결과를 얻는 것보다 레퍼런스를 선보이는 쪽에 집중했다. 인텔이 보유한 다양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자원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먼저 준비한 것이다. 멸종 동물의 위치와 이동 상황을 확인하는 라이노 트래킹이나 이용자 수를 집계해 공중화장실의 청소 여부를 알려주는 스마트 루스, 수질 상태를 점검하고 누수를 확인하는 워터 디스펜서, 트럭의 주행 거리와 위치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빅 리그 등 인텔은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DF에서 10대 IoT 레퍼런스를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레퍼런스 작업은 진행되어 왔다. 인텔 코리아가 12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IoT 레퍼런스는 음식물 쓰레기량을 측정하고 통이 모두 채워지면 관리자에게 알려 빈통으로 교체하는 음식물 쓰레기 진단 장치나 버스에 장착되어 요금 징수 및 버스 위치를 확인하는 교통 카드 시스템, 가정 내 가스 누출이나 외부 침입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시스템, 원격으로 무선 랜에 연결해 카메라가 달린 리모트카를 조종하는 RC 카 등이다. 비록 레퍼런스 수준이라고 말은 하나 사회적 비용의 절감을 뚜렷하게 예상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모델로선 아직 미진해 보이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 인텔이 선보인 IoT 레퍼런스만 놓고 보면 임베디드 시스템부터 클라우드까지 인텔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심기 위한 환경의 구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비록 IoT 시장에서 협업을 위한 사업자가 달라지기는 했으나 수익을 끌어내는 과거의 기본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환경만 구체적으로 구성한 것이라서다. 단지 인텔이 내년도 IoT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각 지역의 역할을 얼마나 강화할 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선 지역별 기반 산업에 대한 더 적극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력의 배치나 기술 지원이 준비되어야 하나 이에 대한 소식은 아직 나온 바가 없다. 국내 IoT 레퍼런스를 공개한 인텔 코리아라고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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