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면 쓰려고 했는데, 왠지 소식이 감감하네요. 때문에 오늘은 공정위 자료를 근거로 주절주절 해보렵니다.
그제 인텔이 260억 원의 과징금을 맞은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공정위가 인텔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260억 원이라는 과징금을 물린 것이다. 이제까지 인텔이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면서 과징금을 물었던 선례가 없었기에-혹시 아시는 분 댓글 좀- 이번 결정은 상당히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정말 제대로 크게 걸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http://ftc.korea.kr/ftc/jsp/ftc1_branch.jsp?_action=news_view&_property=p_sec_2&_id=155299057
분명 공정위의 발표만 놓고 보면 인텔의 행위는 큰 문제임이 틀림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쟁 업체의 CPU를 구매하지 않는 조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는 것 자체는 이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아니 분명 저해하는 조건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헌데 인텔이 이번 결정을 그냥 따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식 입장은 없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공정위 결정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을 것이며, 행정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텔과 공정위는 리베이트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공정위는 경쟁사 CPU를 구매하지 않거나 정해진 비율 만큼 인텔 CPU를 넣은 PC를 생산하는 대가를 훗날 보상해 준 것으로 판단했다. 즉 경쟁 업체의 CPU 구매를 막으면서 자사 제품을 구매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의 리베이트로 본 것이다. 그 설명대로 보면 분명 리베이트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인텔이 반발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인텔은 제품 판매에 대한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텔이 준 돈의 명목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PC 업체를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의 마케팅 지원금이라는 주장이다.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은 인텔 CPU를 넣어 만든 PC를 광고하거나 홍보할 때 앞뒤에 붙은 인텔 인사이드 로고나 지면 광고에 포함된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인텔의 기준에 맞춰 방영 또는 게재를 할 경우에 한해 인텔에서 광고 비용의 일부를 보전해 주는 공식 프로그램이다. 즉, 제품을 팔아서 준 리베이트가 아니라 해당 업체가 인텔과 함께 마케팅을 했기 때문에 훗날 보조금 형태로 보전해 주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혹시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지금 인텔이 자체적인 광고를 만들어 내보내는 일은 거의 찾아 보기 어렵다.)
이는 이미 줬다 안줬다의 문제를 떠났다. 그저 인텔이 업체에 준 돈의 성격이 문제인 것이다. 한쪽은 리베이트, 다른 한쪽은 세금까지 내는 정당한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보는 데서 생긴 차이다. 그 간격이 너무 넓다. 지금까지 상황을 분석하고 보니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본 공정위는 무거운 과징금을 매긴 것이고, 260억 원이라는 과징금 처분을 받은 인텔 코리아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투다. 앞서 말한 대로 인텔 코리아는 여러 매체를 통해 법으로 이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제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게 됐다.
법정으로 넘어 가면 관전 포인트는 뻔하다. 공정위는 인텔 인사이드라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CPU 구매 압력의 수단이자 리베이트로 활용되었음을 증명해야 하고, 인텔은 반대로 해당 마케팅 프로그램이 절대 리베이트로 쓰인 적이 없고 AMD 구매 압력의 수단으로 쓰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공정위가 발표한 문서를 보면 그 쟁점을 좀더 좁힐 수 있다. 공정위는 “경쟁사업자의 CPU를 구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공한 것이므로 대량 할인이 아니고, 구매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경쟁사업자 CPU를 조금이라도 구매하는 경우에는 리베이트가 지급되지 않거나 삭감되었고, 반대로 구매수량이 적더라도 경쟁사업자 CPU를 전혀 구매하지 않으면 리베이트가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이 단순한 마케팅 프로그램의 차원을 벗어나 압력으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를 입증하고 재판부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준다면 인텔 코리아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말해도 더 이상 불공정 행위를 안 했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반대로 공정위 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마케팅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은 CPU 구매 여부와 관계 없이 모두 정해진 원칙에 따라 장려금을 받았음을 증명한다면 이번 문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법 앞에서 어느 쪽의 논리가 더 우세한지 지금 판가름할 수는 없습지만,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를 가진 인텔 코리아로선 설명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이고 결코 유지한 고지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 어떤 결론이 날지 기다려지긴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그 결과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소송은 꽤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오래 전부터 봐 왔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결론이 나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임 #
1. 비록 2005년까지 데이터이기는 해도 인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공식적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이에 따르면 지금 90%가 넘었는지 모르지만, 2001년 이후 인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계속 하락세입니다. 2001년 96%의 점유율-이건 뭐 거의 인텔 천하였군요-을 보이다가 2005년에는 86.9%까지 떨어졌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치지요. 인텔은 10%를 까먹은 반면 AMD는 10% 이상 점유율을 가져왔으니 말입니다. 허나 공정위는 직판 판매(대형 PC 제조사)가 아닌 일반 대리점 시장(소매 판매, 중소 업체)에서 AMD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난 것으로 보더군요. 대규모 판매가 일어나는 직판 시장에서 인텔의 압력 여부가 쟁점인 만큼 공정위나 인텔 뿐만 아니라 PC업체들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2. 공정위와 인텔 코리아가 벌이는 이 심리에 참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요.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니까요.
3. 어인 일인지 AMD가 너무 조용하네요. 요전 같으면 공정위의 판결을 환영한다는 메시지 정도는 냈을 텐데… ^^;
4. 그나저나 공정위는 이번 시정 조치로 CPU 시장 경쟁 촉진과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보던데, 인텔의 반발로 인해 당장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삼보는 인텔 CPU가 들어간 노트북을 홈쇼핑을 통해 팔고 있던데 말이죠.
5 미국도 연방거래위원회(FTC)에서 인텔 반독점법 위반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현재 인텔과 AMD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반독점법 소송과 또 다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텔에 대한 압박이 거세네요.
아무래도 AMD 밥벌이 안되는데.. 지못미 AMD
이제 밥벌이는 되지 싶은데요. ^^
요새 공정위 행보를 보면 참 눈부시죠.
감사원 보다 더 믿을만한 곳이랄까요.. (?)
네. 지금처럼 꾸준히 공정하기를 바라야죠. 권력의 입김이 불어도 꿋꿋이 공정할 수 있기를.. ^^
인텔이 저런 치졸한 방법을 써서라도 amd 를 죽이려는 것은 독점의 꿀(?)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이면 누구나 더 오랫동안 꿀맛을 독점하고 싶은 여왕벌이 되려 하지요. ^^
언제부터인가 공정위가 정말 공정하다는 생각이 마구들더라고요
그러게요. 공정위에 꽃 배달이라도..? ^^
인텔의 마케팅 보조금 행위가 결국 ‘리베이트’라는 결론이 났군요. 향후 인텔의 반응이 있겠지만 이번 조사가 꽤 오랜 기간 동안 조사돼왔고 단순히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인텔코..
인텔이 경쟁사인 AMD를 고사시키기 위해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 등 국내 PC 시장 1, 2위 업체에 제공한 검은 거래 내역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공정위는 지난 4일 전원회의..